신작 '왜 분노해야 하는가' 펴낸 장하성 교수

2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 연구실에서 만난 장하성 교수는 “고용에 불과 4%만 기여하는 100대 기업이 전체 이익의 60%를 가져가는 현 구조는 어떤 합리적 경제이론으로도 설명이 불가하다”고 강조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급하게 쓸 책이 아니었는데 마음이 급했다. 이 한마디를 하기 위해 1년 내내 통계를 분석했다. 청년들아. 제발 아프지 마라. 아픈 건 당신들 탓도, 당연한 것도 아니다. 이 불평등을 야기한 세력에 분노하고 요구하라.”

행동하는 지성 장하성(62) 고려대 교수가 신작 ‘왜 분노해야 하는가’(헤이북스)를 내놨다. 고용, 분배, 임금 없는 공허한 성장을 위해 달려온 한국자본주의의 맨 얼굴을 드러낸 수작 ‘한국자본주의’에 이은 두 번째 저서다. 책은 경제서의 옷을 입었지만 마지막 장은 스스로 고백한 대로 콕 집어 청년세대에 바치는 헌사다. 구성에 5년, 집필에만 꼬박 3년을 쏟은 전작이 팩트로 무장하되 최대한 그래프를 배제하고 집요한 논증을 이어나갔다면, 이번에는 더 촘촘하게 통계와 그래프를 담는데 공을 들였다.

2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연구실에서 만난 장 교수는 “청년들이 한쪽에서는 아프다고 울고, 다른 쪽에서는 기득권 논리에 길들여져 불평등을 옹호하고, 예비 비정규직들이 뜬금없이 기업 걱정을 하고 있지 않냐”며 “앞에 놓인 현실이 얼마나, 왜 불평등한지를 집요하게 찾아 쓰느라 눈병이 다 났다”고 했다.

-제목이 강렬해졌다.

“그간 국내에서 불평등 논쟁이 많았는 데도, 사회 변화의 단초를 만들지 못하는 걸 보며 안타까웠다.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100만부씩 팔려나갈 만큼 사람들이 정의와 평등을 갈구하는데도 변화의 모멘텀이 없다. 가장 고통 받는 세대와 계층이 더 분노하는 수밖에 없다. 정말 얼만큼 불평등하고 왜 이런지 지루할 정도로 하나하나 구체적 통계와 수치로 증명하고 싶었다.”

-모멘텀이 왜 없었을까.

“그간 논쟁이 한국의 현실에 기반하지 않아서다. 진보세력은 지적 유희만 하고 있다. 불평등이 유발하는 삶의 아픔이 아니라 관념에 대해서만 말한다. 책임은 학자들에게도 있다. 신자유주의 혁파 운운할 때가 아니다. 당장 내 월급명세서 얘기가 절박한 거다.”

-전작에서부터 심각한 임금 불평등을 지적했는데.

“우리 불평등은 복지로 해결 불가능한 수준이다. 복지로 문제를 풀 국가적 역량도 안 된다. 복지예산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최하위지만 전체 예산의 30% 수준이고 복지예산 증가 속도도 빠르다. 그런데도 왜 삶이 개선되지 않는가. 재분배가 문제가 아니라 분배부터 싹 다 잘못됐다. 복지예산이 증가해도 임금의 불평등이 악화하며 이를 상쇄한다. 결과적으로 현상유지 아니면 불평등 심화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원청과 하청 여부에 따른 임금 격차가 상당한데.

“한국은행 자료 등을 분석해보면, 100대 기업은 전체 고용에 딱 4%만 기여한다. 중소기업은 70%다. 그런데 고용은 딱 4% 하는 자들이 전체 이익의 60%를 가져가는 구조다. 중소기업은 그 절반밖에 못 가진다. 임금 불평등은 고용 불평등에서 온다. 이 구조가 계속되면 평등하게 살 방법이 없다. 지금 한국에선 누구의 자산이 많고 적음이 결정적 문제가 아니다. 국민들의 절대다수는 힘들게 일하고도 임금이 안 늘어서 문제지, 배당을 못 받는 게 문제가 아니다.”

-성장을 향해 맹목적으로 달려왔지만 대기업 곳간만 채웠단 얘긴데.

“대기업도 아니고 초대기업 일부의 곳간이다.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1997년까진 불평등이 완화된 점이다. 보통 고속성장 할 때는 불평등이 심화하는데 우린 그렇진 않았다. 이 시기 중산층 소득증가율이 초고소득층보다 높았다. 그게 잘 알려지지 않은 또 하나의 기적이다. 그러다 외환위기 때 모든 게 반전됐다. 고용 유연화로 비정규직이 생겼고, 임금은 동결됐고, 30대 재벌 중 16개 군데가 망하고 나머지가 시장을 장악하며 대기업 집중은 심화했다. 초대기업과 나머지 하청기업들로 기업이 양분되고 소득구조가 이렇게 됐다.”

-노동법 개정안이 논란인데.

“불평등을 강화하는 법이다. 궁극적으로는 임금을 정하는데 정부가 개입해야 하는 상황까지 간다고 본다.”

-이렇게 심각한 임금격차는 어떤 이론으로도 설명 불가능하다고 썼는데.

“시장이 결정한 게 아니라 시장을 지배하는 갑이 만든 상황이다. 그런데도 심지어 어떤 진보세력은 재벌을 해외자본에 대한 대항마로 생각해 옹호한다. 재벌집착증을 버려야 산다. 우리사회에는 지난 20년 동안 성공신화가 없었다. 외환위기 이후 새 창업이 대기업 규모로 성장한 사례가 없다. 재벌이 성공하기 어려운 일부 IT 산업에서만 예외가 있다.”

-한국만 유독 심한가.

“미국 100대 부자 중 78명은 창업자다. 한국은 100명 중 84명이 상속 부자다. 미국처럼 잔인한 시장경제에서도, 자본주의ㆍ신자유주의를 가장 열심히 신봉한 미국에서도 새로운 창업자들이 계속 성공신화를 만드는데 한국은 그게 힘들다. 그러니까 금수저론이 나오는 거다. 당대 부자, 자수성가한 사람을 키우지 못하는 게 현 구조다.”

-세제를 통해 재분배가 안 되는 게 문제일까.

“시장 장악력 때문이다. 중소기업에게 세제혜택 조금 줘봐야 재벌이 동네빵집까지 장악하는데 무슨 수로 신화를 만드나. OECD 국가 중 한국에서 소수 재벌그룹의 시장 지배 정도가 최악이다. 이스라엘, 칠레, 한국 순이다. 이스라엘 재벌개혁에 대해서도 조언했는데, 거기도 저항이 심해 성공 못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공정거래위원회도, 법원도, 검찰은 말할 것도 없이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 마지막 보루인 법원조차 재벌 편을 들지 않았나. 재벌은 사면하고, 불공정행위를 하면 구조는 그대로 두고 벌금만 부과했다. 징벌적 보상제도만 했어도 달랐을 거다. 일감몰아주기로 계열사 광고, 부동산관리, 급식, 유니폼 제작 사업에 뛰어드니 중소기업이 뛰어들 틈이 있겠나.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또 개인소득으로 낙수가 이뤄져야 하는데 전혀 안됐다. 낙수효과는 허구가 됐다. 재벌이 나를 먹여 살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조치를 취해야 할 관료, 검찰, 판사들 다 재벌에 매여있다. 어떻게든 사회에서 한 자리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모두 그 구조 속에 들어가있다.”

장 교수는 “지금 청년세대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현재의 아픔이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세상의 탓이라는 것을 깨닫고, 기성세대를 향해 ‘당신들 책임이다. 그러니 바꾸자’고 요구하는 것”이라고 당부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헬조선 담론이 그래서 나온다.

“혁명적 변화 없이는 어렵다. 새로운 주체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 주체가 다음세대, 청년세대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고 봤다. 여야도 아니고, 486세대, 586세대 다 아니다. 20년 동안 한 게 없지 않나. 아무리 바꿔도 안 된다. 박근혜 대통령도 후보 때는 경제민주화를 얘기하지 않았나.”

-청년들을 향한 호소에 꽤 공들 들였는데.

“한국자본주의 강연을 하는데 상황의 암담함에 울었다는 반응들이 왔다. 도대체 뭔 난리인가 싶었다. 청년 관련 책을 다 사다 봤다. 삼포세대, N포세대의 절벽에 관한 이야기들을 정독했다. 자포자기, 연민, 무력감이 심했다. 그래서 마음이 급했다. 아프지 마라. 위로 받지 마라. 징징대지 마라. 그리고 분노하고 행동하라. ‘분노하고 행동하라’를 책 제목으로 하고 싶었는데 참았다.”

장 교수의 책장 한켠에 쌓인 책들. '88만원 세대', '아프니까 어쩌라고',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등이 눈에 띈다. 그는 "청년들의 목소리 중 솔직히 자기 연민에 빠져 징징대는 부분은 읽기 힘들고, 당당하게 '우리를 우습게 보지 말라. 왜 우리를 색칠을 하냐' 그런 말을 하는 글들이 마음에 들더라"고 말했다.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현실을 만든 것은 다른 세대인데, 바꾸는 건 왜 청년 몫인가. ‘청년들이 무슨 죄냐’는 반발이 나올 법하다.

“그래서 현실이 역설적이다. 이 책을 또 다른 꼰대의 얘기로 봐도 좋다. 미안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노동자 3분의 1의 월급이 100만원 미만, 최저생계비 미만이고 취업 준비생 포함 청년 100명 중 20명이 실업자다. 이런데도 청년들을 위해 싸워줄 사람은 없다. 비정규직 철폐하면 기업이 힘들고 나라가 망한다? 웃기지 마라. 예비 비정규직들이 맨날 기업 걱정하고 있다. 기성세대가 씌워놓은 그런 논리와 구조에서 빠져 나와라. 이 바늘 구멍을 적어도 나는 뚫을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하지 마라. 맹목적으로 앞 개미의 뒤꽁무니만 따라 다니는 개미방아(ants mill)에서 벗어나라. 구조를 바꾸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 마지막에 그런 얘기를 하기 위해 장황하게 불평등의 실체를 하나하나 입증한 거다. 청년펀드는 거의 코미디다. 정권 끝나면 누가 관심 있나.”

-선거를 통한 변화가 가능할까.

“청년세대가 자기들의 어젠다를 정치 어젠다로 만든다면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본다. 내년 총선이 그 출발이다. 반값 등록금 담론 수준의 연대만 있어도 충분하지 않나. 굳이 거대 담론일 필요도 없다. 시시콜콜한 문제들부터 평등을 요구하고 주장하고 여든 야든 거기에 귀 기울이는 쪽에 투표하라는 거다. 육아휴직 하는 젊은 남성들도 환영이다. 청년유니온, 알바노조 등의 움직임을 높이 산다. 같은 세대가 그런 활동들에 박수 치고 동시대의 영웅을 만들면 희망은 있다. 이단아들이 나와야 한다. 앞 세대도 파편화돼 있고 연대는 어려웠지만 이단아들이 세상을 끌고 간 거다. 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재벌 개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나.

“아무리 생각해도 정책은 얼마든지 있다. 남은 문제는 누가 할거냐는 거다. 동료 학자들이 책을 보고 사회학자 다됐냐고 하더라. 경제 문제로 시작했지만 어떻게 풀지를 말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정말 바라건대 ‘아프니까 청춘이다’처럼 많이 읽혔으면, 그리고 분노했으면 좋겠다.”

-결국 책은 청년에게 바치는 헌사인가.

“맞다. 극히 일부라도 내용에 동감하고 행동하는 청년들이 있다면 나는 적극 나서 도울 것이다. 어떤 형태가 될 진 모르겠지만 실질적인 힘을 보탤 생각이다. 이게 담론이 되면 기성세대도 같이 가지 않겠나. 심판투표가 계속되면 정당과 정치인을 바뀔 수 밖에 없다.”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박규희 인턴기자(성신여대 국어국문학 4년)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api_db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문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