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ㆍ패션의류 등 한정판 제품
싹쓸이 한 후 비싸게 다시 팔아
소비자들 “웃돈 주고 살 수밖에”
일부는 자동구매 프로그램 동원
중고 매물 가격 담합 조종하기도
5일 오전 서울 중구 H&M 명동 눈스퀘어점에서 고객들이 SPA 브랜드 H&M이 패션 브랜드 발망과 협업해 만든 한정판 발망 X H&M 컬렉션 상품을 구입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연합뉴스

신발 마니아인 송모(25)씨는 지난달 한 중고거래 카페에 스포츠브랜드 아디다스의 신제품 운동화를 구매하겠다는 글을 올렸다. 이 제품의 발매가는 25만9,000원. 하지만 미국 팝스타 칸예 웨스트가 디자인해 프리미엄이 붙을 것이 예상되면서 발매 전부터 ‘리셀러(Reseller)’들의 표적이 됐던 제품이다. 리셀러는 되팔 목적으로 제품을 구입하는 사람을 부르는 말이다. 송씨는 “글을 올리자마자 팔겠다는 리셀러들의 문자와 쪽지가 폭주했고 가격협상 끝에 90만원에 운동화를 구입했다”며 “정가의 4배 가까운 돈을 지불한 것이 아까웠지만 리셀러들이 물건을 휩쓸어가는 통에 이들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예 구매조차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현대판 허생’으로 등장한 리셀러들 때문에 애먼 소비자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한정판 제품을 한꺼번에 사들여 가격을 높이는 매점매석 행위가 잇따르면서 수집과 소장을 목적으로 하는 일부 마니아나 일반 소비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막대한 웃돈을 지불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리셀러들은 이런 판매 행위가 정당한 노동의 대가라고 항변한다. 한정판으로 유명한 나이키의 ‘조던’ 시리즈를 취급하는 리셀러 이모(34)씨는 “해당 제품의 출시 예정일을 미리 체크하고 며칠간 매장 앞에서 ‘캠핑’을 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며 “시간을 투자한 보상으로 2, 3배 가격에 파는 것은 자본주의의 당연한 논리”라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명품 브랜드 발망과 H&M이 협업해 만든 한정판 의류를 사기 위해 전문 리셀러와 마니아들이 5일 동안 서울 중구 명동 H&M매장 앞에서 노숙을 감행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전문 리셀러들은 한술 더 떠 컴퓨터 프로그램까지 동원해 제품을 선점하기도 한다. ‘봇(bot)’이라고 불리는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정해진 일시에 맞춰 자동으로 구매를 진행할 수 있다. ‘조던봇’ ‘슈프림봇’ 등 인기 품목에 맞춰 세분화돼 있으며 유명 판매사이트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경력 10년의 리셀러 김모(29)씨는 “봇을 돌리면 발매 시점에 아무리 많은 사람이 동시 접속해 사이트가 마비돼도 여유 있게 장바구니에 상품을 담을 수 있다”며 “프로그램 구입에 500만~1,000만원가량 들지만 이를 회수하는 데 1년도 채 걸리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일부 리셀러들은 가격 담합도 서슴지 않는다. 지난해 중고 조던 운동화를 판매하려던 A씨는 리셀러들로부터 날벼락을 맞았다. A씨는 “중고라 정가에 내놓는다는 글을 올렸더니 리셀러들로부터 ‘왜 시세를 낮춰 장사를 방해하느냐’는 협박성 쪽지 폭탄을 맞았다”고 말했다.

5일 오전 서울 중구 H&M 명동 눈스퀘어점에서 고객들이 SPA 브랜드 H&M이 패션 브랜드 발망과 협업해 만든 한정판 발망 X H&M 컬렉션 상품을 구입한 후 매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리셀러들로 인해 소비자 불만이 쏟아지자 판매업체들도 진화에 나서고 있다. 일명 ‘발망 대란’을 일으킨 H&M 관계자는 “일부 리셀러들은 짧은 시간에 매장 물건을 싹쓸이하느라 바닥에 물건을 늘어놓거나 이를 제지하는 직원과 언쟁을 벌이는 등 소동을 일으키기도 했다”며 “내년부터는 판매 매장 수나 품목제한 등의 방법을 동원해 문제점을 개선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이키는 최근 매장 앞 장사진을 친 구매 행렬을 막기 위해 아예 온라인 추첨제를 국내에 도입했다. 신규 조던 시리즈 출시를 앞둔 지난 12일 오전 11시부터 한 시간 동안만 온라인에서 1인당 한 켤레씩만 살 수 있는 응모권을 나눠 준 것이다.

문제는 리셀러들이 온라인 시장의 유통질서를 어지럽히고 있으나 딱히 제재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과세당국은 재판매 행위도 부가세 부과대상에 해당하지만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온라인을 통해 거래하는 리셀러의 속성상 적발이 어려워 사실상 과세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승신 건국대 소비자정보학과 교수는 “리셀러들은 정식 사업자가 아닌 탓에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판매업체가 애초에 한정 상품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구매를 제한하고 소비자 스스로 리셀러들의 터무니 없는 가격 요구를 외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정준호기자 junho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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