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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곳'이 찌른 우리사회 비정규직의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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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곳'이 찌른 우리사회 비정규직의 아픔

입력
2015.11.16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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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째 대형마트와 백화점, 아울렛 등을 오가며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정미옥(51·가명)씨는 최근 JTBC 드라마 '송곳'을 보다가 울음이 터졌다. 정씨의 눈물샘을 자극한 건 마트 직원들이 근무도중 대화를 나누는 지극히 일상적인 장면. 정씨는 "마트 매대에서 일할 때 내 꿈도 캐셔가 되고, 매니저가 되고, 정규직이 되는 거였다"며 "방광염 때문에 6년째 고생 중인데 수술하면 한동안 쉬어야 해 엄두를 못내고, 여전히 볼일을 봐도 찝찝해하는 내 처지가 처량하다"고 말했다.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JTBC 드라마 '송곳'이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다. 2003년 외국계 대형마트 까르푸의 노동조합 조직 과정과 파업 현장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는 작금의 현실과 놀랍도록 닮았다. 노동자 3명 중 1명이 비정규직인 2015년의 모습은 10여년 전과 비교해 얼마나 달라졌을까. '송곳'을 계기로 비정규직의 현실을 돌아봤다.

JTBC 주말극 '송곳'은 2000년대 초반 대형마트를 배경으로 한 노사문제를 다룬다. JTBC 제공
JTBC 주말극 '송곳'은 2000년대 초반 대형마트를 배경으로 한 노사문제를 다룬다. JTBC 제공

1. 비정규직 627만명… '사상 최대'

통계청이 지난 4일 발표한 '8월 경제활동인구 조사'에 따르면 비정규직은 627만1,000명으로 2003년 통계조사를 시작한 이래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공교롭게도 2003년은 '송곳'의 배경이 된 시기다. 늘어난 비정규직은 '60대 이상'과 '여성'이 많았다. 연령대별로 보면 10대(15~19세)가 3%, 20대가 17.8%, 30대가 16.2%, 40대가 20.4%, 50대가 21.5%, 60대 이상은 21.0%다. 고령화에 따라 50~60대 취업자가 늘고, 일자리의 조건을 따지지 않고 생활전선에 뛰어든 이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방증이다.

비정규직에 대한 처우는 지난해보다 후퇴했다. 비정규직의 월평균 임금은 146만7,000원으로 정규직의 269만6,000원보다 122만9,000원 더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규직 임금이 3.5% 오르는 동안 비정규직의 월급은 1% 상승에 그쳤다. 비정규직의 평균 근속기간도 2년6개월에서 2년4개월로 줄었다. 복지 수준도 뒷걸음질쳤다.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모두 가입율이 지난해에 비해 떨어졌다.

지난 4일 통계청이 발표한 '8월 경제활동인구 조사'. 통계청 제공
지난 4일 통계청이 발표한 '8월 경제활동인구 조사'. 통계청 제공

2. '정규직'은 하늘의 별 따기?

일자리의 질도 나빠졌다. 통계청의 '2015년 8월 경제활동인구 조사'에 따르면 비정규직 가운데서도 시간제, 즉 아르바이트 근로자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시간제 근로자는 223만6,000명으로 지난해에 비해 20만4,000명 증가했다. 시간제 근로자의 주당 평균 취업시간은 남성이 21.7시간, 여성이 19.4시간이었다. 월평균 임금은 남성이 79만3,000원, 여성이 66만6,000원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한시적노동자(계약직)와 용역·파견 등 비전형노동자도 각각 13만명과 9만4,000명 늘었는데, 이는 고용의 질이 안 좋은 저임금 일자리가 늘고 있다는 뜻이다.

'비정규직'의 희망을 '정규직 전환'으로 단정할 순 없지만, 질 좋은 일자리를 얻는 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성재민 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이 지난 달 30일 발표한 '한국노동패널조사에서 나타난 비정규직 현황과 추세' 논문에 따르면 2009년 비정규직이었던 사람들의 26.8%만이 5년 뒤인 2014년까지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응답자의 절반에 가까운 47.0%는 여전히 비정규직이었고, 7.1%는 창업을 선택했다. 아예 일자리를 잃어버린 사람도 19.2%나 됐다. 특히 비정규직으로 채용된 기업에서 ‘정규직 전환’이 이뤄진 비율은 11.5%에 불과했다. 이직을 통해 정규직으로 취업한 15.3%에 견줘 적은 수치다. (▶기사보기)

JTBC 주말극 '송곳'은 2000년대 초반 대형마트를 배경으로 한 노사문제를 다룬다. 사진은 극중 노동문제상담소장인 구고신 역을 맡은 배우 안내상이 강연을 하는 모습. JTBC 제공
JTBC 주말극 '송곳'은 2000년대 초반 대형마트를 배경으로 한 노사문제를 다룬다. 사진은 극중 노동문제상담소장인 구고신 역을 맡은 배우 안내상이 강연을 하는 모습. JTBC 제공

3. 눈물 어린 비정규직도 세습화?

"여러분들 일하는 거 자식들한테 보여줄 수 있어요? 자식들한테 여기서 일하라고 할 수 있어요? 싫죠? 왜 싫어? 일이 험해서? 월급이 적어서? 아니죠. 새파란 관리자가 반말을 하든, 욕을 하든, 진상이 뺨을 때리든, 침을 뱉든. 하루 종일 광대뼈 떨리도록 생글생글 웃고 있어야 되잖아. 이거 부끄럽잖아. 이거 자식들 볼까 봐 무섭잖아. 왜 정당하게 일하고 돈 받는 사람들이 부끄러워야해? 우리가 근로계약했지, 노예계약 한 거 아니잖아?" (JTBC '송곳' 6화 中 안내상(구고신역)의 대사)

'송곳'에 찔리듯 가슴을 후비는 드라마 대사처럼, 부모의 눈물이 어린 일자리를 자녀가 물려받는 일은 이제 현실이다. 성공회대대학원 사회복지학과 김연아 박사가 올 2월 발표한 '비정규직의 직업이동 연구'에 따르면 자녀가 노동시장에 진입할 때 비정규직일 가능성은 부모가 정규직일 경우(67.8%)보다 부모가 비정규직일 경우(77.8%)로 10%p 더 높았다. 반면 자녀가 정규직으로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비율은 부모가 정규직일 때 27.4%, 부모가 비정규직일 때 21.6%로 나타났다. 이는 2005년 이후 노동시장에 진입한 만 15세 이상 35세 미만인 사람 중 정규직, 비정규직으로 입사한 자녀와 부모 1,460쌍에 대한 분석이다. (▶기사보기)

16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관계자들이 비정규법 개악 논의를 규탄하는 내용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16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관계자들이 비정규법 개악 논의를 규탄하는 내용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4. 일상화된 차별… 해법은 어디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은 일상이다. 정규직 근로자에 비해 상여금이나 각종 수당을 덜 주거나, 아예 주지 않는 등의 차별적 대우가 대표적이다. 지난 2일 고용노동부는 전국 사업장 299곳을 대상으로 근로감독을 벌인 결과 28곳에서 차별적 처우를 확인하고 시정했다고 밝혔다. 적발된 28개 사업장 중 19곳은 상여금과 각종 수당 등을 지급하지 않거나 정규직과 차등을 둬 지급했다. 차별이 발생한 항목은 복지포인트, 부양가족수당, 자기개발비, 성과급, 보건수당 등으로 다양했다. (▶기사보기)

고착화된 비정규직 문제의 해답은 없는 걸까. '송곳'의 답은 이상적이다. "경쟁에서 졌다고 해서 벌 받기 위해 사는 게 아니다. 단지 평범한 것이다. 우리의 국가는, 우리의 정치 공동체는 평범함을 벌주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 노동상담소장 역인 구고신은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미루는 건 국가의 방기라고 말한다.

2015년, 현실의 국가도 노동시장 문제에 공감하지만 진영마다 내놓는 해법은 다르다. 1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노동개혁과 관련한 5개 법안이 상정됐다. 이는 정부 여당의 하반기 핵심 국정과제로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골자로 하는데, 여야의 입장은 극명히 갈린다. 비정규직 관련 쟁점으로 꼽혔던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 파견근로 허용업무 확대, 노조의 비정규직 차별시정 신청권 등은 끝내 노사정위원회에서 절충점을 찾지 못했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627만 비정규직에게 국가가 답해야 할 차례다.

김지현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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