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의 돔구장 ‘고척 스카이돔(이하 고척돔)’이 지난 4일~5일 열린 한국과 쿠바의 ‘2015 서울 슈퍼시리즈’를 통해 베일을 벗었습니다. (관련기사 ▶ 고척돔에 대한 오해와 진실 10)선수단은 물론 관중들로부터 수많은 보완점을 지적 받은 고척돔이지만 어찌됐든 내년부턴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의 홈 구장으로서 상시 가동 모드로 들어서게 됩니다. 밉든 곱든 함께 가게 될 야구장, 조금이라도 더 사랑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돔구장 역사가 앞선 일본 등의 사례를 살펴보며 경기장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들을 정리해 봤습니다.
● 경기장 가는 길 즐거웠으면 좋겠네
스포츠산업 전문가들은 “경기장은 팬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고 팀의 가치를 담을 수 있는 공간이 돼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경기장 내부에서만 이뤄지란 법은 없습니다.
지난 9월 기자가 방문한 일본 프로야구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홈구장 ‘후쿠오카 야후 오크돔’의 경우 지하철역에서 경기장으로 향하는 길에 ‘호크스타운 몰’을 설치했습니다. 이 곳의 기능은 다양합니다. 팬들이 태양 또는 비를 피해 경기장으로 이동할 수 있는 길이 됐고, 쇼핑 및 식사 공간으로도 활용됩니다. 경기장 앞마당은 그야말로 축제의 장입니다. 구단이 마련한 기념촬영 공간에는 수십 미터의 줄이 늘어섰고, 아이들은 경기장 앞 놀이 공간에서 경기 전부터 신이 난 모습이었습니다.
일본 프로축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기자가 가봤던 우라와 레즈의 홈구장 사이타마 스타디움이나 감바 오사카의 홈구장 엑스포 70 스타디움, 도쿄FC의 아지노모토 스타디움, 요코하마 마리노스의 닛산 스타디움 모두 전철역에서 경기장까지 가는 길이 꽤나 멀었지만 음식 판매대나 기념품 매장 등이 늘어서 있고, 지역 단체들의 공연 등이 이어져 지루할 틈 없이 없었습니다.
국내 사례도 있습니다. 올해 창단한 K리그 서울 이랜드FC는 2호선 잠실종합운동장 역부터 경기장까지 향하는 길에 다양한 입간판과 깃발을 설치했고 경기장 앞엔 구단 버스까지 전시해 팬들로부터 호평 받았습니다.
고척돔에서도 충분히 만들 수 있는 장면들입니다. 경기장 이동로가 될 고척교 등의 공간을 활용한다면 경기장 가는 길조차 하나의 콘텐츠가 될 수 있습니다.
● 경기장 자체가 콘텐츠였으면 좋겠네
야구팬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갈리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고척돔이 한국 야구계에 주어진 큰 자산이라는 점입니다. 더구나 한국 야구의 역사나 다름없는 동대문 야구장을 헐면서 얻어낸 자산입니다. 동대문 야구장의 역사와 정통성을 그대로 이어받긴 힘들겠지만 그 의미를 이어가기 위한 노력과 의지는 필요합니다.
1988년 개장한 일본 최초의 돔구장이자 현재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홈구장인 도쿄돔엔 일본 야구역사 130년을 고스란히 담은 야구체육박물관이 있습니다. 고척돔 한 켠에 비슷한 공간을 만들면 어떨까요. 아직 서울 땅엔 제대로 된 야구박물관 하나 없고, 동대문 야구장의 역사를 기억할 공간도 없습니다.
돔구장의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합니다. 많은 문제점이 지적됐지만 ‘실내 야구장’이란 사실만으로도 장점이 많음을 부정하긴 힘듭니다. 소프트뱅크 호크스는 경기에서 승리할 때마다 후쿠오카돔의 지붕을 열고 불꽃놀이를 펼칩니다. 지붕을 열고 닫는 데만 약 1,000만원의 비용이 들지만 일본 유일의 개폐식 돔구장이란 상징성을 잘 살려 경기장 자체를 하나의 콘텐츠로 만든 좋은 사례입니다. 물론 개폐식이 아닌 고척돔에선 실현 불가능한 일이지만, 이 같이 구장의 장점을 잘 살려 하나의 문화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필요하겠죠? 12개의 프로야구단 중 6개 팀의 홈구장이 돔구장인 일본에서만 볼 수 있는 ‘제트 풍선’응원이 하나의 재미있는 문화로 자리 잡은 사례도 아이디어로 참고할 만 한 사례입니다.
● 통로에 대한 발상, 바꿔보면 좋겠네
‘공간 활용 능력’은 경기에서만 필요한 게 아닙니다. 경기장은 스포츠라는 콘텐츠를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장소인 동시에 경기장 운영 주체에 입장권, 스폰서십, 식음료 판매 등의 다양한 수입을 가져다 주는 주요 거점이 될 수 있습니다. 화장실과 매점, 기념품 판매대 등이 위치한 경기장 내부 통로에 대한 발상을 바꾼다면 훨씬 더 팬 친화적인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방법도 어렵지 않습니다. 중계 모니터 몇 대, 테이블 몇 개만 가져다 놓아도 팬들의 또다른 경기 관람 장소가 됩니다. 팬들이 그 곳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매출도 자연히 오르겠죠. 팬들에겐 편의를, 경기장 입점업체엔 더 높은 수익을 줄 수 있는 아이디어입니다. 특히 관중석에 대한 민원이 많은 고척돔이라면 이런 공간이 더욱 필요합니다. 통로마저 펍(pub) 같은 경기장, 근사하지 않나요?
● 관중들의 지적, 귀담아 들었으면 좋겠네
경기장 건축 설계 전문가인 정성훈 로세티 이사는 올해 초 가진 인터뷰에서 “스포츠 경기장은 상당히 트렌디한 상품”이라고 말했습니다. 애초에 완벽한 경기장은 없으며, 활용 전략에 따라 꾸준히 리모델링 해 완성형 경기장에 가까워지도록 개선해 나가는 방향이 옳다는 겁니다.
이는 곧 고척돔의 미래도 충분히 만들어 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설계 단계부터 잘못돼 개선이 힘든 부분도 있지만, 팬들이 지적한 불편사항 중 상당수는 사후 개선이 가능한 부분들입니다. 크기가 작아 내용을 알아보기 힘든 전광판이나 한 줄에 31석이 붙어있어 관중의 이동이 힘든 ‘지옥 라인’, 불필요하게 높은 난간 등의 개선은 시급합니다.
물론 시간과 비용이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관중들의 내용을 귀담아들으며 하나 하나 개선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서울시가‘공무원이 만들면 안 봐도 비디오’라며 새 브랜드를 공모했던 그 마음처럼 말입니다.
고척돔은 명물이 될까요, 애물단지가 될까요? 운영 주체의 철학과 의지에 따라 운명은 충분히 바뀔 수 있습니다.
글·사진=김형준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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