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지 모르겠지만 한때 소설이 모든 예술을 대표하는 장르였던 적이 있었다. 보는 것이 영화로 기록되고, 듣는 것이 음악으로 녹음되기 이전의 일이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정말로 소설의 시대가 있었던 것이다. 박성원은 이제는 사라진 소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다. 비유하자면, 크로마뇽인과 같다. 크로마뇽인이 후기 구석기 문화를 발전시키고, 정밀한 석기를 제작해 알타미라 동굴과 라스코 동굴에서 발견된 것과 같은 뛰어난 수준의 벽화와 조각을 남겼던 것처럼, 박성원은 언어와 사유를 조탁하고 문장을 조합하여 주목할 만한 소설을 쓴다. 하지만 이제 크로마뇽인은 존재하지 않고, 더불어 소설을 얘기하던 친구들도 어디론가 가버렸다. 과장한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박성원의 감각 속에서 그는 종언하고 있는 예술 장르의 마지막 순간을 살고 있는 사람이다.
최후의 인간에게 남은 것은 한 시대의 결말을 자신의 손으로 마무리 짓고 싶은 죽음에 대한 욕구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아 어떻게든 존재를 이어가고 싶은 생존에 대한 본능일 것이다. 박성원의 여섯 번째 소설집 ‘고백’은 이러한 죽음과 생존 사이의 예술적 긴장을 감지할 때 좀더 의미 있게 읽어나갈 수 있다.
소설 속 남자 주인공들은 생존본능을 성적 욕망으로 착각해 여자들에게 접근하지만 대부분은 관계에 실패하거나 자신이 성적 불능의 상태임을 깨닫게 된다. 아이들은 죽고(‘심해어’ ‘더러운 네 인생’), 죽은 아내의 유령은 남편과 아이를 찾아 돌아오지만 쓰레기 분리수거 봉투에 담겨 다시 버려진다(‘몸’). 미래는 사라지고, 과거는 회귀하는 순간 폐기된다. 영원하고 고독한 현실에 남겨진 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을 분열하여 개체를 만들어 쓸쓸함을 달래고, 이를 환상적으로 조합시켜 과거와 미래를 만드는 일뿐이다. ‘고백’이나 ‘더러운 네 인생’에서 각기 ‘나’, ‘젖 나오는 남자’, 작가와 같은 이름을 가진 소설가 ‘박성원’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은 주인공의 분열된 자아이기에 이들이 함께 만들어낸 추억은 모두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정신분열의 에피소드적 재현에 불과하다. ‘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그의 고독이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소설은 고백”이며, “허구”는 최후의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우주의 중심”이다. 비록 그것이 크로마뇽인의 지독한 외로움이 만든 환상일지라도 그의 세계에서는 그렇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한때 소설이 모든 예술을 대표하는 장르였던 적이 있었다. 그 시절은 사라졌기에 박성원 소설의 인물들은 바에 앉아 오지 않는 친구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낸다. “나는 월리스 컬렉션의 ‘Daydream’을 신청하고는 술을 마셨다. 난 ‘젖 나오는 남자’에게 물었다. 이봐 대체 저 많은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라고. 그러자 박성원이 말했어. 글쎄, 하고 말이야.”(‘고백’)
서희원ㆍ문학평론가
◆작가 약력
1969년 대구에서 태어나 1994년 ‘문학과사회’에 단편 ‘유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으로 ‘이상異常, 이상李箱, 이상理想’ ‘나를 훔쳐라’ ‘우리는 달려간다’ ‘도시는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하루’ 등이 있다. 현재 계명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여섯 번째 소설집 ‘고백’은 소설가라는 고독한 길 위에서 써 내려간 자기 고백이다.
책 속 한 문장
너의 상상이 나의 현실이고, 나의 상상이 너의 현실이며, 나의 현실이 너에겐 한낱 꿈이며, 너의 꿈이 나에겐 지울 수 없는 현실이라는 걸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도대체 그 누가 그런 말을 믿어준단 말인가. 나는 땀을 닦으며 녀석에게 말했다.
오늘… 넌 죽을지도 몰라. 하지만 괜찮아. 나에겐 꿈일 뿐이니까. 그저… 꿈일 뿐이야. 그래, 그저 꿈이란다. 모든 게 소설일 뿐이야.
- ‘보너스 이야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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