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영화학교에 다니던 필립 그로닝(56)은 1982년 프랑스 남부 그랑드 샤르트뢰즈 수도원에 촬영 허가를 요청했다가 거절당한다. 그러나 속세와 단절된 삶을 사는 수사들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고 싶다는 그의 욕구는 식지 않았다. 끈질긴 구애 끝에 1999년 허가를 얻어낸다. 단 3가지 조건을 지켜야 했다. 인공조명 금지, 인공음향 금지, 감독 혼자 촬영…. 그로닝 감독은 2002년부터 수도원 독방에 혼자 머물며 수도원 구석구석을 카메라에 담았다. 2009년 국내 상영된 ‘위대한 침묵’이 그 결과물이다.
▦영화는 러닝타임 168분 동안 일체의 대사, 해설, 자막을 내보내지 않는다. 오직 수도원과 주변 풍경, 수사들의 일상, 그리고 침묵만을 보여준다. 수사복 끌리는 소리, 성경 넘기는 소리, 바람과 숲 소리…. 그런 평범한 소리조차 때론 거북하게 느껴질 정도다. 감독은 평생을 신과 수도원에 의탁한 수사들의 침묵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려 했을까. 속도와 경쟁의 시대, 독설과 욕설, 거짓과 교언(巧言)의 해악이 넘쳐나는 세상을 향해 간절함과 진정을 담은 침묵으로 스스로를 되돌아보라 권한 것은 아닐까.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하는 침묵의 힘에 대한 찬미는 동서양이 다르지 않다. ‘침묵의 세계’의 작가 막스 피카르트(1888~1965)는 “침묵으로부터 나온 말이 참된 말이며 말에서 나온 말은 잡음어다”고 했다. 명나라 문인 진계유(陳繼儒ㆍ1558~1639)는 시 ‘연후’(然後ㆍ뒤에야)에서 “침묵을 지킨 뒤에야 지난날의 언어가 소란스러웠음을 알았네”라고 읊었다. 민주화운동 당시 지식인 계층 등이 독재정권의 최루탄과 곤봉질에 맞서 침묵 시위로 역사의 물줄기를 바꿨음은 우리가 직접 목도한 사실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의원이 국정감사장에서 재벌 과세자료 미제출에 항의하며 최경환 부총리를 1분간 응시하는 일종의 침묵 시위를 벌인 동영상(▶ 관련영상)이 SNS에서 화제다. 정부의 과도한 재벌 감싸기를 꼬집은 박 의원의 침묵 시위는 백마디 질의보다 파급력이 훨씬 컸다. 소음과 침묵은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다. 소음이 클수록 침묵의 힘은 커지기 마련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등 과거로의 회귀를 갈구하는 퇴행적 목소리가 드높은 요즘, 말하지 않는 다수가 내년에 침묵의 힘을 통해 어떤 평가를 내릴지 궁금해진다.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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