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총회 의장까지 지낸 고위 관계자가 뇌물 수수 혐의로 체포된 데 이어, 미국 검찰이 다른 고위 간부에 대한 대대적인 추가 조사를 예고하면서 유엔의 신뢰도에 큰 타격을 입게 됐다. 이번 수뢰 사건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조직 개혁을 강조하는 기간 발생한 것이어서 직접 관련되지 않았더라도 경력에 오점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미 뉴욕검찰은 6일 아침 2013~2014년(68회) 유엔총회 의장이었으며 카리브해의 소국 앤티가 바부다의 전직 외교관 존 애쉬를 뉴욕 자택에서 체포했다. 애쉬 전 의장에게 130만달러 뇌물을 준 중국계 부동산업자 응랍셍(68)과 다른 유엔 간부 등 5명도 함께 기소했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애쉬 전 의장은 유엔 총회의장으로 활동하던 2013년 무렵 중국 마카오의 응랍셍 순키안입 그룹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았다. 애쉬 전 의장은 뇌물을 호화 가족여행이나 자택 사설 농구코드 건설 등에 사용했으며, 일부는 고급 승용차와 롤렉스 손목시계 구입에도 탕진했다. 뇌물 대가로 애쉬 전 의장은 마카오에 유엔이 후원하는 수십억 달러 규모 회의시설이 건립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의 건의서를 유엔 사무총장실에 제출하고, 일부 회원국으로부터는 지지까지 얻어낸 것으로 확인됐다.
뇌물 전달과정에는 응 회장의 부하직원 제프 인(29)과 유엔 주재 도미니카공화국 차석대사를 지낸 프란시스 로렌조(48)가 개입했다. 응 회장은 로렌조에게도 매월 2만달러를 월급 형식으로 지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애쉬 전 의장이 억울함을 주장하고 법원도 100만달러 보석금을 조건으로 일시 석방할 것으로 알려졌으나, 기소 내용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유엔 창설 70주년 이래 보기 드문 부패 사건으로 남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사건 수사를 주도하는 프릿 바라라 뉴욕 남부 연방지검 검사장은 “이미 많은 국가들을 감염시킨 부패라는 암(癌)이 유엔에도 퍼져 있음이 드러났다”며 “아직 수사 초기 단계이므로 추가로 더 많은 연루자가 드러나더라도 놀랍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엔 조직에 부패가 일상화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번 사건은 한국에서 차기 대선주자로 주목 받아 온 반 총장 이미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유엔 주변에서 시리아ㆍ우크라이나 등 국제 분쟁에서 유엔 역할이 과거보다 축소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마당에 조직 도덕성이 훼손되는 사건까지 터지면서 반 총장 위상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도 “과거 몇몇 추문 사건 이후 더 높은 투명성과 책임감을 강조해 온 유엔에게는 매우 당혹스런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사태의 심각을 감안해 반 총장 측도 이날 즉각 성명을 내놓았다. 스테판 두자릭 유엔 대변인은 “반 총장이 애쉬 전 의장에게 제기된 혐의들에 대해 충격을 받고 깊이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부패가 일상화됐다는 미 검찰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