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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순탁] 부산거리에서 ‘슈퍼밴드’를 느끼다

입력
2015.10.05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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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을 이용해 부산엘 다녀왔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해야 할 일이 있어서였다. 내 인생 최초의 영화제 구경. 그래서였을까. 괜히 마음이 들떠서는 가는 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나는 좀 이상한 습관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그것이 길든 짧든 여행이라면, 반드시 혼자 있는 시간을 확보한 뒤에 거리를 그냥 무작정 걸으면서 음악, 그것도 익숙한 것이 아닌 갓 발매된 신보들 중 하나를 골라서 듣는다. 이 순간 음악은 기억력을 높이는데 탁월한 효능을 발휘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음악을 사운드트랙 삼아 풍경 하나하나를 대뇌피질 어딘가에 있을 메모리에 저장해놓는 것이다. 물론 탁월한 고성능을 자랑하는 내 머릿속 지우개 덕에 얼마 지속되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칵스의 베이시스트 박선빈, 로로스의 기타리스트 진실과 드러머 임상욱 등 동갑내기 3명으로 이루어진 밴드 '라이프 앤 타임'
칵스의 베이시스트 박선빈, 로로스의 기타리스트 진실과 드러머 임상욱 등 동갑내기 3명으로 이루어진 밴드 '라이프 앤 타임'

고민이 많았다. 해운대를 산책하면서 어떤 곡을, 어떤 앨범을 들어야 최대한 그 기억이 오래 보존될 수 있을지, 선곡에 고심을 거듭했다. 그리하여 내가 고른 앨범은 라이프 앤 타임이라는 밴드의 ‘Land’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과연,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내가 느꼈던 것으로 기억한다).

통상 라이프 앤 타임은 한국 인디 신에서 배출한 슈퍼 밴드로 불린다. 로로스(Loro's)의 기타리스트 진실(기타, 보컬), 칵스(The Koxx)의 베이시스트 박선빈(베이스), 재즈 드러머로 활동하는 임상욱(드럼)이 함께 모여 결성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화제를 모았는데, 더욱 중요한 것은 그 화제성에 준하는 완성도 있는 음악으로 팬들을 매혹했다는 점에 있었다. 데뷔 EP였던 ‘The Great Deep’은 그에 대한 인상적인 증거물이었다. 앨범 제목처럼 호방한 스케일과 깊이 있는 연주가 공존하고 있던 이 음반에서는 ‘대양’, ‘호랑이’ 등이 격찬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누군가는 이들을 “한국판 러시(Rush)”라고 칭하면서, 그 치밀한 연주력에 경이를 표하기도 했다.

나는 이 점이 다시금 강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그들이 갓 내놓은 첫 정규작 ‘Land’에는 근자에 가장 압도적으로 프로페셔널한 연주가 담겨져 있다는 것이다. 아주 단순하게 구분하자면, 나는 펑크와 메탈 중 후자로부터 더 큰 음악적인 세례를 받고 자란 사람이다. 이게 뭔 뜻이냐 하면, 음악을 대하는 태도보다는, 뛰어난 악기 연주력에 마음을 쉽게 빼앗긴다는 의미다. 심지어 라이프 앤 타임의 음악에는 이 두 가지가 모두 들어있다. 그들은 진지한 태도로 음악을 대하고, 그것을 숙련된 연주를 통한 빼어난 음악으로 풀어내는데 능숙하다. 듣자마자 또 다시 그들의 음악에 반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다.

그래서 반드시, 시간을 내서라도, 그들의 라이브를 한번쯤은 볼 필요가 있다는 점을 더불어 강조하고 싶다. 그들의 라이브는 속된 말로 정말이지 ‘끝내준다.’ 이 음반의 수록곡 ‘Land’의 첫 싱글 ‘My Loving City’를 라이브로 들을 생각만 하면, 나는 벌써부터 기분이 확 좋아져버린다. 거기에 내가 못 다 이룬, ‘록 밴드’라는 꿈의 어떤 이상향이 머물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이 외에도 음반에는 몽롱한 서정미가 돋보이는 ‘숲’, 박력으로 넘치면서도 광대하고, 광대하면서도 섬세한 ‘급류’, 심플한 노랫말을 통한 묘사로 도리어 드라마틱한 전개를 부각한 타이틀 ‘Land’ 등, 강추하고 싶은 노래들이 무더기로 수록되어 있다. 해운대의 야경과 함께 한 이 음악들을 나는 한동안 잊지 못할 줄 알았는데, 실은 그날 밤 대취해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시 앨범을 들어보면서 그 순간의 감정들을 복각하려 애쓴 결과물이 바로 이 글인 셈이다.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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