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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이야" 연줄 내세워 한몫… 임기 말엔 시한폭탄으로

입력
2015.09.1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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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형 비위의 방정식

소통령·봉하대군·만사형통

최측근 넘어 사돈에 팔촌까지

집권 후반기 하나둘 수면 위로

결국은 급속한 레임덕 이어져

역대 정부마다 이어지는 잡음

"인맥은 통한다" 그릇된 맹신

인사·이권청탁 접촉시도 많아

후진·권력지향적 단면 여실히

“박지만 (EG그룹) 회장 부부가 나쁜 의도를 갖고 접근하는 사람들과 자꾸 만나길래 구두경고를 했지만 이를 듣지 않아 그런 인물들의 평판을 간략히 적은 쪽지를 박 회장 측에 건네 경고를 하고, 전화로 고함을 지르고 끊었다.”

지난달 18일 이른바 청와대 문서 유출사건과 관련해 조응천(53)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은 법원에 출석해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인 박 회장 주변 상황에 대해 이 같이 밝혔다. 조 전 비서관 진술대로라면 박 회장 주변에 이권이나 인사청탁 등을 위해 접촉하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박 회장은 이 사건과 관련해 지난해 참고인 신분이라고 하지만 집권 2년 차에 검찰 조사를 받은 전례 없는 ‘대통령 가족’으로 기록됐다. 그는 현직 대통령의 친동생으로 친인척 관리 업무를 맡고 있는 청와대 비서관으로부터 ‘비선 보고’를 받았다는 의혹을 샀다. 박근혜 대통령이 친인척 비리 근절 의지를 여러 차례 밝혔지만 아슬아슬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집권 후반기에 봇물 터져

역대 사례를 보면 대통령 형제나 자식들이 연루된 권력형 비리 대부분은 대통령의 힘이 강했던 정권 초ㆍ중반에 발생했다. 하지만 사건이 표면화하는 시기는 주로 정권 후반기나 퇴임 이후로 발생시점과 어느 정도 시차가 생긴다. 대통령 힘이 있을 때는 권력 주변에 밀착해 이권을 챙기려는 온갖 아첨꾼들이 몰리지만, 힘이 빠지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으로 바뀐다는 뜻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근무한 전 행정관은 “대통령의 말발이 먹히는 임기 초ㆍ중반에는 친인척을 향한 굵직한 로비공세가 치열해도 적절히 관리가 되지만, 임기 후반부터는 사실상 통제가 어렵다. 집권 후기로 갈수록 인사청탁이나 뇌물 사고 등이 많이 터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주로 임기 후반에 친인척 비리가 터지면서 민심 이반과 함께 ‘레임덕’(권력누수)이 가속화하는 패턴이 계속돼 왔다.

이명박 전 대통령(MB)의 친형으로 ‘만사형통’(형님을 통하면 모든 일이 해결된다는 의미)으로 통했던 이상득(80) 전 의원은 17대 대선 직전인 2007년 말 저축은행에서 거액의 금품을 수수했다. 그러나 이 전 의원이 비리가 세상에 드러난 시점은 MB 정부 마지막 해인 2012년이다. 6선 의원에 국회부의장까지 지낸 이 전 의원은 이 사건으로 1년 2개월 동안 수감되는 치욕을 겪었으며, 최근엔 이 전 대통령 재임 시절 포스코 비리 사건으로 다시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

도덕성을 생명처럼 여겼던 노무현 정부도 노 전 대통령의 친형 건평(73)씨의 대담한 범죄행각이 드러나면서 커다란 흠집을 남겼다. ‘봉하대군’으로 불리며 각종 이권에 개입했던 노씨는 노 전 대통령이 물러난 직후인 2008년 12월 과거 세종증권 매각을 도와준 대가로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됐다. 노씨는 2012년 매립사업 인허가 과정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됐으며, 올 들어서도 성완종 전 의원의 특별사면 대가로 금품을 수수한 의혹으로 또 다시 수사를 받았다. 노씨가 연루된 사건은 모두 노 전 대통령의 임기 중에 발생했지만 수면 위로 나온 시기는 모두 퇴임 후였다.

막후에서 국정을 좌지우지해 ‘소(小)통령’으로 불렸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도 결국 정권 마지막 해인 1997년 구속됐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세 아들도 정권 말과 퇴임 후에 차례로 비리가 드러나 법정에 서는 등 대통령 친인척 ‘잔혹사’는 정권마다 되풀이됐다. 특수부 출신의 변호사는 “권력의 힘이 떨어지면 그 동안 눈치 보느라 입 닫고 있던 사건 당사자들이 이해관계에 따져 친인척 비리 제보를 쏟아낸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측근인 정윤회씨 국정농단 의혹 등을 담은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이 벌어진 올 1월 신년기자회견에서 “역대 정부에서 친인척이나 측근의 권력남용 문제가 얼마나 많았나. 저렇게 돼서는 안 되지 않느냐”며 다시 한번 각오를 다졌다. 박지만 회장 부부를 청와대에 얼씬도 못하게 하고 있다고도 했다. ‘게이트’급 비리가 없으니 이 정부가 잘하고 있지 않느냐는 평가도 없지 않지만, 권력형 비리와 관련한 친인척 관리의 성패는 임기 후반기로 접어든 지금부터라고 할 수 있다.

사촌, 5촌도 비리 줄줄이

권력의 곁불에 있지 않은 친인척이 대통령 이름을 팔아 사익을 챙기는 비리 행각은 이 정부에서도 여전하다. 20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징역 6년을 선고 받은 박 대통령 5촌 조카 김모(54)씨나 사건무마 대가로 금품을 챙긴 박 대통령의 사촌형부 윤모(77)씨 비리가 대표적이다. 사회가 투명해지고는 있지만 의식구조가 여전히 후진적이고, 권력지향적이라는 방증이다. 대통령과 거리가 있는 친인척들의 개인 비리가 정권마다 꾸준히 이어지며 처벌을 받고 있지만, 잡초만큼 끈질기게 생기고 있다.

전(前) 정권만 해도 김윤옥 여사의 사촌오빠인 김재홍(76) 전 KT&G 복지재단 이사장이 수사무마 청탁과 함께 저축은행에서 3억9,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로 철창신세를 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먼 친인척인 황모(68)씨도 MB와 특수관계임을 내세워 4대강 사업 하도급공사 수주 등의 명목으로 금품을 챙겼다가 법정에 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조카인 전모(50)씨와 양모(52)씨가 업체 선정을 미끼로 금품을 챙겼다가 지난해 사법처리 됐으며, 투자를 빙자해 술집 마담에게 1억원을 가로챈 노 전 대통령의 5촌 조카가 기소된 적도 있다.

대통령 친인척 비리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정상적 절차를 통한 문제해결보다는 권력과 인맥을 동원하는 게 훨씬 잘 먹힌다는 믿음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비정상 시스템의 정점에는 대통령 친인척들이 자리잡고 있으며 이는 원칙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후진성의 단면”이라고 진단했다. 대통령학회 부소장인 임동욱 한국교통대 교수도 “대통령을 평가할 때 제도로서의 대통령과 개인적 측면을 함께 보는데, 개인이 갖춰야 할 덕목 중에 가장 중요한 척도가 친인척 관리이며 이는 국가수준과도 직결된다”고 지적했다.

강철원기자 strong@hankookilbo.com

채지은기자 cj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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