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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뼘이 아쉬운 2평 거주자, 디지털 기술로 공간 제약 극복

입력
2015.09.06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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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축하고: 저소득층 양식 집약된 '큐브'

TV·PC 등 자리차지하는 장치들 모조리 스마트폰 속으로

확장하고: 증강현실 장치 홀로렌즈

3차원 생활환경 저체가 인터페이스… 실제 세상 물체와 동기화

디지털라이프의 미래

더불어 행복해지는 시공간 아닌 디지털장치에 중독되는 삶 경계

2000년대와 2010년대 청춘의 방 '큐브'의 전형이다. 현실에 존재하는 설국열차 꼬리칸이 이곳이다. 지하철 노선을 따라 이 큐브에서 저 큐브로 흘러다닐 수밖에 없는 이삼십대 1인 가구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 ⓒ박해천 동양대 교수 트위터 @ecri11
2000년대와 2010년대 청춘의 방 '큐브'의 전형이다. 현실에 존재하는 설국열차 꼬리칸이 이곳이다. 지하철 노선을 따라 이 큐브에서 저 큐브로 흘러다닐 수밖에 없는 이삼십대 1인 가구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 ⓒ박해천 동양대 교수 트위터 @ecri11

미디어 테크놀로지가 장차 어떻게 변하게 될지 알고 싶다면 최신 기술 동향을 좇는 일 이상으로 ‘인구’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 장기 불황이 맞물리면서 대한민국 은 저성장 사회로 변하고 있다. 이런 추세 속에서 1인 가구의 급증을 주목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1인 가구는 지금 506만 가구다. 지난 2000년과 비교해 무려 280만 가구나 늘었다. 통계청의 ‘장래가구추계’에 따르면 1인 가구의 수는 연평균 3.5%씩 증가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2035년에는 763만 가구다. 전체 가구 대비 34.3%에 해당하는 수치다. 더 심각한 문제는 1인 가구가 저소득층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10년을 기준으로 1인 가구의 저소득층 비중은 45.1%다. 같은 항목에서 2인 이상 가구는 10.9%에 불과했다. 10가구 가운데 두 곳이 1인 가구인 셈이다. 그 중 하나는 불안정한 소득 때문에 생활고를 겪고 있다. 당사자는 60대 이상 노인일 확률이 가장 높다. 20대에서 50대까지의 1인 가구에서 중소득층 비중은 55%대를 기록하고 있지만, 60대 이상 1인 가구의 저소득층 비율은 66.7%에 달하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최악의 노인 빈곤율이라고 한다.

저성장 사회의 1인 공간 ‘큐브’

갈수록 악화되는 고용 환경에서 필사적으로 진로를 찾는 젊은이들에게도 무관한 일이 아니다. 청년에게 가혹한 고용 환경이 노인들에게 관대할 리 없다. 나이가 들수록 일자리를 얻기 어렵고 사회 양극화는 극단적으로 심화되는 중이다. 결혼과 취직 등을 포기해 3포, 5포 세대로 불리는 이 나라의 이삼십 대들에게 ‘미래’는 희망적인 단어일 수 없게 된 지 오래되었다. 대한민국의 기술 문화는 이러한 사회적 맥락과 분리해서 이해할 수 없다.

1인 가구의 생활환경에는 격차사회에 살아남기 위한 생존 양식이 집대성되어 있다. 그들의 살림살이 풍경을 들여다보면 이 사회에서 어떤 기술이 각광받고 있는지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머지않아 퇴출될 수밖에 없는 기술도 확인할 수 있다. 월세 의존도가 높고 주거 불안이 심각한 이삼십 대 1인 가구에선 주거 공간의 경제적 운영과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편중된 생활이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디자인 연구자이자 아파트 사회학자인 박해천은 이들을 ‘큐브 거주자’라 이름 붙였다. ‘큐브’는 방을 매개로 한 임대료의 다단계적 이동 경로를 의미하는데, 큐브 거주자들은 방에서 방으로의 이동만이 무한 반복되는 폐쇄계에 갇혀 있다. 2000년대 초중반에 걸친 부동산 시장 폭등 이후 이 나라의 이삼십 대 젊은이들은 ‘내 집 마련’의 사다리를 잃어버린 세대가 됐다. 지하철 노선을 따라 고시원과 원룸 오피스텔, 카페와 프랜차이즈 상점으로 짜인 장소 임대업의 큐브 생태계가 조성되고 있다. 아파트는 한물간 사업이 되었다. 계급 상승의 에스컬레이터는커녕 중산층 붕괴의 원흉으로 지적 받고 있는 형편이다. 기존의 거주용 방과 집의 기능을 외부화한 방, 즉 주거 공간과 상업 공간이 이원화된 방향으로 큐브는 꾸준히 증식될 것이며, 1인 가구의 비중이 늘어날수록 큐브의 바깥을 찾기 어려운 사회가 될 것이다.

큐브는 디지털 친화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고시원 2평(약 6.6㎡) 공간을 예로 들어보자. 이곳은 옷과 침구류에 할당할 자리와 책을 쌓아둘 곳을 동시에 갖기 어려울 만큼 협소하다. 하지만 여기서도 수천 권의 책을 보유하는 ‘장서(藏書)’가 가능하다. 전자책은 텍스트를 종이책의 물성 밖으로 뽑아내는 비물질화 기술이다. 전용 리더기에 내장된 4GB 메모리 용량이면 약 3,000권의 ePub(전자책의 일종) 파일을 저장할 수 있다. 높이 2m, 너비 80㎠ 크기의 책장 15개에 해당하는 공간을 노트 한 권 크기 이하로 줄일 수 있는 것이다. 한 뼘의 자리가 아쉬운 고시원 1인 가구 생활자에게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간단하고 편리한 공간 압축 기술의 보고다. 무엇보다도 스마트폰이 가장 대중적인 공간 압축 장치로 활용되고 있다. 손바닥 크기의 플라스틱 바에 라디오, TV, PC, 카메라, 내비게이션, 집전화 등을 모조리 집어넣었다. 애플리케이션을 추가하면 더 많은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예전 같으면 각각의 기능을 수행할 독립된 장치를 구입하고 점유 공간을 할애해야 했다.

좁은 주거공간과 가상현실의 확대

중산층의 소비 욕망을 부추기는 거실의 미디어스케이프 역시 구체적인 물성을 갖춘 제품과 함께 현대적 감각과 감수성의 강도가 충전되는 장소였다. 2평 큐브에 살면서도 그런 일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기대할 순 없다. 노트북과 스마트폰 화면은 너무 작고, 비물질화된 형태로 기능만 끌어온다고 해서 온갖 동선을 잇는 관계망을 내포한 사물의 사회성까지 온전히 대체될 리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공간은 곧 자본이며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계급 표상이다.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이 문제를 해소하기는커녕 노골화한다. 다만 자기 계급에 맞춰 살 수밖에 없다는 체념에 익숙해질 수 있다면 자족적인 감각과 감수성의 조달은 융통성 있게 모색할 수 있다.

미국 샌프란시코에서 2015년 4월 29일부터 삼일 간 열린 마이크로소프트의 개발자 컨퍼런스 '빌드 2015'에서 증강현실을 제공하는 안경형 웨어러블 장치인 홀로렌즈가 공개됐다. ⓒ마이크로소프트
미국 샌프란시코에서 2015년 4월 29일부터 삼일 간 열린 마이크로소프트의 개발자 컨퍼런스 '빌드 2015'에서 증강현실을 제공하는 안경형 웨어러블 장치인 홀로렌즈가 공개됐다. ⓒ마이크로소프트
‘홀로렌즈(HoloLens)’
‘홀로렌즈(HoloLens)’

마이크로소프트(MS)의 연례행사인 ‘빌드2015’에서 공개된 ‘홀로렌즈(HoloLens)’도 거주 공간의 제약을 디지털 기술로 극복하길 바라는 1인 가구 생활자들이 반길 만한 장치다. 안경형 웨어러블 컴퓨터이자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장치인 홀로렌즈는 디스플레이 화면의 사각 틀 밖으로 정보 환경을 확장시킬 수 있다. 고시원 방에서도 그래픽 오브젝트를 눈앞에 나타나게 하고 가상공간의 겹(layer)을 원하는 만큼 덧씌울 수 있는 장치다. 모니터 화면의 평면을 넘어 3차원 생활환경 전체가 디지털 유저 인터페이스로 증강되는 것이다. 프로젝터 형식으로 안구에 빔을 쏘는 구글 글래스는 홀로렌즈처럼 3D 기반 형상을 띄울 수 없었다. 고작해야 간단한 레이어 팝업을 눈앞에 내미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홀로렌즈는 위치 파악과 물체 인식이 가능해서 손을 움직여 그래픽 오브젝트를 직접 제어할 수 있다. 모터사이클의 3D 그래픽을 피규어처럼 이리저리 돌리고 뒤집어 볼 수도 있다. 실제 세상의 물체와 동기화되어 움직이기 때문에 비현실적인 몰입 환경을 조성하는 가상현실(Virtual Reality) 장치와는 확연히 다른 체험을 제공한다. 의자에 앉아 퍼즐게임을 입체로 즐길 수도 있고, 각종 전자제품의 상태를 홀로그램으로 띄워 사용할 수 있다. 담배 연기보다 얇은 대형 TV 화면을 백과사전 페이지처럼 두껍게 겹쳐 올리는 일도 가능하다.

물론 이 모든 것은 홀로렌즈를 착용한 사람에게만 보이는 세계다. 그러고 보니 스마트폰을 들고 혼잣말하며 걷는 사람을 새삼스럽지 않게 보게 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 음성 및 시선, 손가락 제스처 인식을 통해 작동되는 홀로렌즈의 인터페이스 역시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본다면 환영을 좇아 허우적거리는 모습처럼 보일 것이다.

우울한 디지털 시대 무엇을 할 것인가

홀로렌즈는 아직까진 시제품이 공개되지 않은 기술이다. 고시원에 사는 가난한 젊은이가 만만하게 구입할 수 있는 가격이 되려면 시간이 적잖이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 운영체제가 그랬던 것처럼 홀로렌즈의 대중적 보급에 대단한 야심을 품고 있다. 구글, 삼성, 애플도 증강현실(AR)과 가상현실(VR)에 기초한 신규 사업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2008년 이후 10년도 걸리지 않아 전 세계인의 생활에 스마트폰이 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것처럼 새로운 정보 환경의 개발과 확산은 무섭도록 빠르게 전개될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이 어떤 사회에서 구성되고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미래는 낙천적인 광고 영상에서 보는 것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나쁜 사회는 더러운 진창 같아서 탁월한 기술조차 비루한 일상의 부속품이 되게 한다. 부조리한 사회의 가장 비참한 생활의 한복판에서도 최신 스마트폰은 멀쩡히 작동된다. 최첨단 테크놀로지가 집약된 제품을 사용한다고 사회가 더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홀로렌즈에 비친 증강현실도 현실 도피의 수단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필립 K. 딕(Philip K. Dick)의 공상과학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1968)에도 비슷한 전망을 볼 수 있다. 때는 최종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다. 방사능으로 황폐해진 지구는 종의 멸종이 차례로 이어지고 있다. 인간도 절멸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느린 죽음을 견디기 위해 ‘기분 조절 오르간(mood organ)’에 중독된다. 딕이 1960년대에 구상한 이 장치는 스마트폰과 홀로렌즈의 미래를 예견하고 있다. 기분 조절 오르간에 중독된 사람들은 문학과 영화, 음악, 여행, 사교에 시간을 소비할 필요가 없다. 장치의 다이얼을 맞추기만 하면 문화체험의 순간에 경험할 수 있는 감각과 감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서사는커녕 언어조차 필요 없다. 신경에 직접 작용하는 전기적 자극만으로 강렬한 정동을 일으킬 수 있다. 예술과 철학, 역사, 문학 그리고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온 진중한 시간의 형식들이 시냅스(synapseㆍ전기 또는 화학적 신호를 다른 세포에 전하는 신경세포 접합부분)에서 종말을 맞이한 것이다. 그러나 몸은 기분 조절 오르간과 신경망만 남은 생활을 견뎌내지 못한다. 이 장치에 중독된 사람들 대부분이 정신분열증에 시달리고 있다.

삶은 신경망에서 번쩍거리는 전기 화학적 작용이 아니다. 나와 타인이 함께하는 공공의 장소를 사회 곳곳에 구성하고, 이곳으로부터 더불어 행복해질 수 있는 시공간을 생산해내야 한다. 이 단순 명료하고 자연스럽기 그지없는 상식에 반하는 문화가 디지털 라이프의 실상이자 발전 방향이라면,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반세기 전에 발표된 SF소설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현실이 묻는 질문이다.

임태훈 인문학협동조합 미디어기획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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