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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는 인종차별주의자… 흑인과 우체국 출입문 같이 쓰는 것도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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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는 인종차별주의자… 흑인과 우체국 출입문 같이 쓰는 것도 거부"

입력
2015.09.04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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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체류 당시 기록 책 발간

비폭력·무저항주의로 인도의 독립을 이끈 ‘위대한 영혼’ 마하트마 간디가 실제로는 흑인을 멸시한 인종차별주의자였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대학의 애쉰 데사이 교수와 쿠아줄루 나탈 대학의 굴람 바헤드 교수가 공동 집필한 책 ‘남아공사람 간디 : 제국의 들것 드는 사람’을 통해 이같은 간디의 숨겨진 면모를 밝혀냈다. 이 책은 간디가 남아공에 체류했던 1893년부터 1914년 사이에 있었던 그의 언행과 정부 문서 기록을 토대로 간디에 대한 세상의 평가가 그의 실제 삶과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준다.

저자들은 “간디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교묘한 재포장의 결과”라고 결론 짓고 있다. 간디는 평소 흑인들을 ‘깜둥이’(kaffirs)라 낮춰 불렀을 뿐 아니라 미개하고 상스러우며, 나태하고 벌거벗은 삶을 사는 열등한 존재로 취급하면서 무시하는 발언을 일삼았다는 것이다.

또 간디는 식민지배국 영국에 남아공 내 인도인들이 흑인들에 비해 얼마나 더 우수한지를 입증해 보이고자 부단히 노력했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간디는 남아공 더반 우체국의 출입문이 백인과 흑인용으로 나뉘어 있는 상태에서 인도인이 흑인과 같은 출입문을 쓰게 돼 있는 것을 거부하면서 인도인용 출입문을 별도로 만들어 줄 것을 요구했다. 이 요구가 관철된 후 간디는 “우리는 너무나 큰 모욕을 느꼈고 당국에 청원해 결국 토착인(흑인), 아시아인, 유럽인을 위한 3개의 다른 출입문이 생겼다”고 만족해 했다.

1895년 작성한 청원서를 보면 간디는 남아공 내 인도인의 낮은 위상이 결국 인도인의 문명화된 생활습관을 원주민이나 토착민과 같은 낮은 상태로 끌어내릴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1893년 나탈 주(州) 의회에 보낸 공개서한에도 간디는 영국과 인도인이 ‘인도아리아’라는 같은 인종적 뿌리를 두고 있는데도 인도인이 마치 미개인이나 아프리카 원주민보다 나을 게 없다는 인식이 퍼져 있고 그렇게 교육되고 있는데 이는 인도인이 미개한 흑인의 위치로 떨어지는 결과를 야기할 것이라는 우려를 표한 것으로 기술돼 있다.

1869년 태어난 간디는 18세 때 영국 런던 유학을 통해 변호사 자격증을 땄으며 1893년 소송 사건을 의뢰 받아 남아공으로 건너갔다가 부당한 처우를 받는 인도인들의 인권 투쟁을 위해 ‘사티아그라하’ 운동을 전개해 승리로 이끈 뒤 인도로 돌아왔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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