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3년 8월 26일 크라카토아 화산이 폭발했다. 인도네시아 자바섬 과 수마트라 섬 사이 순다해협의 작은 섬. 엄청난 양의 마그마를 뿜어낸 뒤 해발 800m의 원추화산 라카타를 비롯해 섬의 2/3가 가라앉았고, 지진과 쓰나미로 근처를 항해하던 배 6,500척이 수장됐다. 해협 양쪽 마을 165개가 폐허가 됐고, 3만6,000여 명이 순식간에 숨졌다. 근대 역사상 최대의, 최악의 화산 폭발이었다.
폭발은 사흘 동안 이어졌다. 가장 거대한 마그마가 분출한 27일 오전 10시 02분 폭발 소리는 태평양 너머 호주 퍼스에서 관측됐고, 4,7780km 떨어진 모리셔스의 로드리게스 섬 경찰은 포성을 들었다며 해군에 보고하기도 했다. 화산재는 지상 80km 너머의 성층권까지 치솟았고, 기압파가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을 돌고서야 사라졌다는, 실감나지 않는 이야기도 있다. 당시 인근 공해상의 물 벽이 15m 높이로 치솟았고 쓰나미의 최대 피해지 가운데 하나인 자바섬 메라크 마을을 덮칠 무렵에는 40m에 달했다.
인도네시아 일대가 지질학적으로 이 행성의 가장 취약한 표면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이 알려진 건 1960년대 이후였다. ‘판구조론’에 따르면 그 일대는 차갑고 무거운 대양판과 따뜻하고 가벼운 대륙판이 포개지는 지점이다. 인류 1만년 역사상 최대 규모의 화산 폭발로 알려진 탐보라 화산 폭발(1815년 4월)도 발리 인근 숨바와 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탐보라 폭발과 달리 70년 뒤의 크라카토아 폭발이 “근대 최대ㆍ최악의 화산 재난”인 이유는, 지질학적 증거로만 확인되는 ‘탐보라’와 달리 ‘크라카토아’의 인류에게는 해저 통신케이블과 전신 기술이 있었기 때문이다. 크라카토아는 그러니까 문명적으로 앞선 지역, 예컨대 보스턴과 브리즈번 뉴델리의 시민들이 화산 폭발의 원인과 과정과 여파를 거의 실시간으로, 공포에 떨며 지켜본 최초ㆍ최대의 재난이었다.
크라카토아 폭발 이후 전지구적 저온현상이 3년 동안 이어졌다. 인근 바타비아(Batavia)의 경우 연 평균 기온은 8도나 떨어졌다. 하늘과 태양 빛도 달라졌다. 그리스 아테네 공대와 아테네 학술원은 2014년 프랑스 화가 에드가 드가의 그림 ‘승마(1885년 작)’ 속 하늘이 유난히 붉은 이유가 저 화산폭발의 영향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작가 겸 저널리스트 사이먼 윈체스터의 ‘크라카토아’(임재서 옮김, 사이언스북스ㆍ사진)는 저 화산 폭발의 전모와 전후를 실감나게, 정밀하게 기술한 책이다. 사는 게 너무 권태로워 죽겠거나 너무 재미있어 죽겠을 때, 그냥 식욕이 없을 때에도 읽어볼 만한 책이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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