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수 85% 지하수 의존, 서민들 대부분은 오염된 물 마셔
물탱크 마피아, 식수 60% 가로채… 공무원과 결탁해 검거도 어려워
의류산업 육성 값비싼 대가, 염색공장 80%는 폐수 정화 않고 불법 방출
인도가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로 지하수 고갈과 오염 등으로 심각한 수자원 재앙에 직면하고 있다. 인도 국민들은 식수의 약 85%를 지하수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인데, 도시 인구 증가에 비해 지하수 양이 턱없이 부족한 데다 이를 공급해야 할 상수도 시설도 제대로 정비돼 있지 않아 도시 주민들이 식수 대란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이를 틈타 ‘물탱크 마피아’라는 신종 범죄집단들이 지하수를 몰래 시추, 갈취해 팔면서 수자원 고갈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북부 대도시 델리에 필요한 전체 식수량의 약 60%를 물탱크 마피아가 중간에서 가로채 팔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식수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인도 시민들은 불소나 비소 등 독성물질이 포함된 지하수까지 이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남부 타밀나두 주의 경우는 인도 정부가 티루푸르 등을 전세계 섬유산업의 중심지로 키우면서 그나마 남아있는 수자원도 심각한 오염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옷을 염색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폐수가 정화되지 않은 채 그대로 강과 지하수로 흘러 들어가고 있는데, 하루에 쏟아지는 폐수가 1억ℓ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글로벌 의류브랜드 갭(GAP)이나 타미힐피거(TOMMY HILFIGER), 미국 유통업체 월마트 등이 섬유산업이 유발하는 환경오염은 외면한 채 값싼 인건비만 노리고 이 곳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어 문제가 더 악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인도의 수자원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면 총 인구가 약 12억명에 달하는 인도는 먹을 물의 대부분을 전세계에서 수입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비관적 전망마저 나온다.
인도, 물탱크 마피아 극성
지난 13일 자정 델리 동부 지역에 있는 들판에 물탱크를 뒤에 실은 트럭 20대가 헤드라이트를 끈 채 줄을 지어 도착했다. 트럭에서 내린 인부들이 땅에 펼쳐져 있는 파란색 방수 시트를 걷어 내자 그 아래로 땅속으로 깊게 파인 거대한 우물이 3곳 나타났다. 우물에 설치된 시추공의 발전기를 돌리자 거대한 굉음과 함께 지하로부터 물이 관을 타고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땅 속 깊숙한 곳에서 지하수 1만ℓ를 퍼올 리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단 1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트럭들이 기다렸다는 듯 차례로 탱크에 물을 받았고, 가득 채운 뒤에는 재빠르게 도로를 달려 사라졌다. 탱크에 담긴 물은 다음날 아침 델리에 있는 공장과 병원, 쇼핑센터, 호텔, 아파트 등에 남김없이 팔렸다. 하지만 이는 모두 불법이다.
물탱크 마피아들이 벌이는 이 같은 지하수 갈취 행위는 인도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다. 도시에 공급되는 식수의 공급량이 현저히 부족해지자 더 이상 정부만 믿을 수 없는 시민들이 지하수를 몰래 퍼내 파는 암시장에 의존하고 있다. 인도 정부는 물 부족을 이유로 시간차를 두고 식수를 공급하고 있는데 델리의 말비아나가르 지역의 경우에는 새벽 3시와 오후 3시에 한 번씩만 공급된다. 하지만 하룻동안 식수로 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다. 또한 일부 가정들은 이마저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델리 같은 대도시에서도 정부가 공급하는 물을 받을 수 있는 상수도 시설을 갖춘 가정은 전체 가구 중 25%에 불과하다. 결국 75% 주민들은 수질이 검증 안 된 우물이나 강물을 마셔야 한다. 다른 지방 도시들은 더욱 처참한 상황이다. 시민들은 값이 비싸더라도 물탱크 마피아로부터 식수를 구입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물탱크 마피아에게 시민들이 의존하는 현상은 수자원 부족 문제를 더욱 빠르게 악화시키고 있다. 인도 정부가 2013년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델리 주변 지역에서만 지하수를 불법 시추한 장소가 20만 곳이 발견됐다. 물탱크 마피아가 활개치면 정부의 수자원 보호 대책도 쓸모 없게 될 뿐만 아니라 시민들은 암시장에서 비싼 값에 물을 구입해야 하기 때문에 가난한 서민들로서는 안전한 식수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인도에서는 식수에 대해서도 빈부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인도에서 인구 1억명 이상의 대도시들은 적절한 양의 수자원 확보에 실패하면서 주민 대다수가 오염된 물을 식수로 쓰고 있다. 인도 정부의 2014년 수자원보고서에 따르면 델리에 식수를 공급하는 대수층의 약 75%가 과잉 개발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부족한 지하수를 메우기 위해 대수층의 깊은 밑바닥까지 시추 작업을 진행하면서 독소와 비소 등이 포함된 물까지 식수로 이용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인도 수자원 보호를 위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표층으로부터 약 5m 지하에서 나오던 지하수가 이제는 약 30~60m까지 뚫어야 확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인도 정부는 물탱크 마피아를 검거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이들을 소탕하기에 사실상 불가능하다. 물탱크 마피아라는 이름과 달리 이들은 거대 조직이 아닌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좀도둑처럼 나서는 형태인데다 뇌물을 주고 지역 공무원들과 결탁해 검거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수자원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상수도 설비의 증축 등을 통한 광범위한 기반시설을 확보해 수자원 통제의 주도권을 되찾아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정부가 상수도 시설 정비조차 주로 부유층이 머무는 지역을 중심으로 집중 개발하고, 서민들의 주거지는 막대한 비용 문제 등으로 외면되고 있어 상황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급격한 산업화로 인한 수자원 오염도 심각
이처럼 수자원 확보가 절실한 상황이지만 그나마 남아있는 수자원도 무분별한 산업화로 중금속 등에 오염되고 있다. 국제 환경단체들은 수질 오염의 최대 원인으로 의류산업을 지목하고 있다. 청바지 1벌을 만드는데 약 7,000ℓ의 물이 필요할 정도로 의류 사업은 막대한 물을 필요로 해 급격하게 수자원을 고갈시키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인도 정부는 2000년대 초부터 의류산업을 국가의 핵심 성장동력으로 지정해 육성하고 있다. 우려했던 대로 의류공장들이 옷을 염색하고 나온 폐수를 정화하지 않고 몰래 버리면서 강과 지하수 등이 수십 년 동안 전혀 이용할 수 없는 죽음의 물로 변하고 있는 실정이다.
타밀나두 주를 흐르는 노이얄 강 인근은 한때 쌀과 바나나, 코코넛 등이 풍족하게 생산되던 농업 지역이었다. 하지만 지금 노이얄 강을 막고 있는 오라투팔라얌 댐 근방에서 식물 한 포기도 찾아볼 수 없다. 붉고 거친 황무지만 펼쳐져 뿐이다. 녹색 빛깔로 변한 노이얄 강에서는 하얀 거품이 떠다니며 썩은 냄새가 진동을 한다. 이곳이 불모의 땅으로 변한 것은 노이얄 강에서 서쪽으로 약 30㎞ 떨어진 티루푸르 지역의 의류공장에서 나오는 폐수 때문이다. 인도 정부는 티루푸르를 세계 최대의 의류산업 중심지로 육성하고 있는데 티루푸르에서 의류 관련 종사자만 약 50만명으로, ‘메이드 인 인디아’라고 적혀있는 전세계 유명 브랜드인 갭이나 타미힐피거 등의 의류는 사실상 티루푸르에서 생산됐다고 보면 될 정도다.
티루푸르에서 공장이 가동되기 시작한 2000년대 초부터 오라투팔라얌 댐에는 독성물질이 있는 화학약품과 중금속 등이 흘러 들기 시작했고, 2007년 실시된 조사에서 티루푸르의 염색공장 729곳이 하루에 약 8,706만ℓ의 폐수를 정화하지 않고 노이얄 강으로 그대로 흘려 보냈다는 게 확인됐다. 2000년대 중반 악취가 진동하는 오라투팔라야 댐의 물을 모두 방류하자 바닥에서 죽은 물고기들이 약 400톤이 발견되기도 했다. 타밀나두 주의원을 지낸 비디얄 세카르는 “염색공장의 80%는 폐수를 불법 방출한다”면서 “타밀나두의 오염통제위원회 같은 오염규제 관리들은 뇌물을 받고 영업을 묵인하고 있다”고 뉴스위크에 비판했다.
티루푸르 의류공장들의 불법 폐수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지만 이곳을 통해 이득을 얻고 있는 전세계 업체들은 주문량을 줄이지 않고 있다. 가격 경쟁을 위해 의류 제조공장의 태반을 인도와 방글라데시, 캄보디아 등 아시아로 이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거대 공장을 보유하고 있는 인도를 대체할 만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폐수로 인한 환경오염이 문제가 돼도 의류업체들의 ‘나 몰라라’투자가 인도의 수자원 문제 해결의 거대한 장벽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티루푸르의 농민단체는 2007년에 미국 의류업체들에 납품하기 위해 오염방지법을 위반하고 있는 염색공장들을 폐쇄하라는 인도 대법원의 판결을 받아냈다. 하지만 미국의 수출입 거래 조사 업체인 데이터마인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1년 법원의 폐쇄명령을 어긴 티루푸르 염색공장에 대한 미국 유통업체인 월마트의 주문량은 오히려 증가했다. 갭이나 타미힐피거 등도 염색공장들의 불법 여부와 상관없이 주문량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 의류업체의 투자가 이어지면서 호황을 맞은 불법 염색공장은 티루푸르 지역을 넘어 인도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인도의 환경운동가인 시나탐비 프리트비라지는 “강이나 해안 지역 등 물이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염색공장이 들어서고 있다”면서 “티루푸르에서 동쪽으로 약 320㎞ 떨어진 항구도시 쿠달로어에서는 화학물질 오염으로 주민이 암에 걸릴 확률이 일반인에 비해 2,000배나 된다”고 지적했다.
이대로 방치한다면 인도의 물 부족 문제는 장차 지진이나 가뭄 등과 같은 자연재해와 맞먹는 재앙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인도 인구는 2050년까지 약 17억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중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인구 대국이 되지만 이를 뒷받침할 수자원은 물론 물 관리 시스템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고 우려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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