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10명 중 4명, 중학생은 5명, 고교생은 6명꼴로 스스로를‘수포자’(수학포기자)로 인식하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전국의 초ㆍ중ㆍ고교생과 수학교사 등 9,022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다. 전국 단위의 첫 대규모 실태조사라는 점에서 의미가 가볍지 않다.
학교 수학이 어렵다는 비율은 초등 27.2%에서 중학교 50.5%, 고교 73.5%로 급증했다. 학교 급이 올라갈수록 수학에 흥미를 잃고 진도를 못 따라가는 학생이 급격히 늘었다. ‘잠자는 고3 수학교실’이란 말이 근거 없는 소문이 아니었다. 수학과 멀어진 이유로 학생들은 ‘내용이 어렵고’, ‘배울 양이 많고’, ‘진도가 빨라서’라고 답했다. 실제 ‘사교육걱정없는세상’미국, 일본, 영국, 독일, 핀란드, 싱가포르 등 6개국과 한국의 수학 교육과정을 비교했더니, 우리나라가 초등은 27%, 중학교는 29%, 고교는 30%가 더 많았다. 주요 단원의 학습시기도 1~2년 더 빨랐다.
이런데도 한국의 수학분야 국제경쟁력은 선진국과 큰 격차를 보이는 게 현실이다. 흥미와 호기심을 갖게 하지 않고 오직 입시를 겨냥한 줄 세우기식 교육만 하다 보니 수학은 학생들에게 골치 아픈 과목이 됐다.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2012’에서 한국 학생의 수학 불안감이 34개국 중 4위로 높았던 것도 이를 보여준다. 한 문제만 틀려도 바로 입시와 성적에 치명적인 교육체계 안에서 수학은 학생들에게 불안과 공포의 대상일 뿐이다.
여기다 지나친 사교육과 선행학습으로 학교 수업은 엉망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사교육을 받을 때 선행학습을 한 학생은 73.7%로 나타났다. 하지만 학생들은 선행학습 사교육에서 배운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교사들도 수업 파행의 가장 큰 이유로 선행학습 후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다는 점(63.6%)을 지목했다. 선행학습이 학생들에게 일찌감치 수학 과목에 대한 부담과 중압감을 심어주는 주범인 셈이다.
교육당국은 학생들이 수학을 포기하지 않고 의미 있게 배울 수 있도록 전면적이고 혁신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교육부는 9월에 고시되는 2015 개정교육과정에서 수학 학습량을 20% 줄이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지난 5월 공청회에서는 오히려 학습량을 일부 늘린 시안을 내놓았다. 이와 함께 대학수능시험에서 수학의 출제 범위를 줄이고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일각에서는 입시 변별력을 우려하지만 일부 상위권 학생 선발을 위해 절대 다수를 수포자로 만드는 것은 훨씬 큰 손실이다. 새로운 수학교육 체계 수립을 고심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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