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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악 범죄, 영구미제로 끝나선 안돼" 국민적 공분 주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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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악 범죄, 영구미제로 끝나선 안돼" 국민적 공분 주효

입력
2015.07.2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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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효 안 끝난 범죄에 적용되지만

태완이 사건 소급적용은 불가능

법조계선 환영ㆍ우려 엇갈려

“아빠가 태완이 아프게 한 나쁜 사람 잡아서 꼭 혼내줄게.”

16년 전, 한 아빠는 화상으로 온몸에 붕대를 감고 고통에 신음하는 여섯 살 아들을 보며 약속했다. 내 아이에게 황산을 끼얹은 범인을 반드시 찾아 죗값을 치르게 하겠다는 다짐이었다. 그 다짐 속에 1999년 5월 골목길에서 아무 이유 없이 공격 당한 태완이는 49일 만에 부모 품을 떠났다. 하지만 부모 심정과 달리 살인죄에 공소시효(당시 15년)가 있어 그 안에 범인을 잡지 못하면 죄를 물을 수가 없다. 공소시효가 완성되면 실체적인 심판 없이 면소 판결을 하기 때문이다. 2014년 7월, 태완이 부모는 법원에 재정신청(검사의 불기소 처분에 불복해 법원에 직접 사건을 재판에 넘겨달라고 신청)을 냈다. 공소시효를 3일 남겨둔 시점이었다. 살인범에게 면죄부를 주지 않으려는 마지막 안간힘이었지만 이마저 현행법을 넘어서진 못했다.

이처럼 제2의 태완이를 막기 위해 살인죄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했다. 이번 개정안의 소위 통과는 태완이 부모의 심정처럼 흉악범죄 사건이 공소시효 만료로 영구미제에 빠지는 상황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반영됐다. 앞서 법무부도 2012년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 법안을 내놨고, 법원도 찬성하며 힘을 실었다.

세계적으로도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는 폐지되는 추세다. 대표적으로 미국과 독일이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두지 않고 있고, 일본은 2010년 살인과 강도살인 등 법정 최고형이 사형인 12개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없앴다. 법조계에서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한 것에 대해 환영과 회의의 시각이 교차하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 관계자는 “살인죄 등 강력 범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것이 세계적 흐름”이라며 “과학수사의 발달로 장기간 증거 보전이 가능해진데다, 흉악범은 끝까지 벌하는 것이 정의의 관념에도 부합한다”며 찬성했다. 김웅 변호사는 “오랜 시간이 지나면 사건 관계자 진술이 부정확하고 물증 소실 등 증거의 구체성이 흐려져 공소시효가 있는 것인데, 선진국이 한다고 오랜 논의 없이 도입하는 게 과연 맞는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 논의의 계기가 된 태완이 황산테러 사건은 대법원이 지난달 말 부모의 재항고를 기각하면서 공소시효가 지나 결국 영구미제가 됐다. 대법원은 “피해자의 진술만으로는 이웃주민 A씨를 범인이라고 단정하기 어렵고, A씨가 사건 당시 태완군을 병원으로 옮겼으며 거짓말 탐지기 조사에서도 진실 반응이 나왔다”는 점 등을 이유로 재정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태완이 사건 외에도 대표적 영구미제 사건은 진범이 잡혀도 처벌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경기 화성에서 여성 10명이 성폭행ㆍ살해당한 ‘화성 연쇄살인 사건’(1986~1991년), “개구리를 잡으러 간다”며 나간 대구의 소년 5명이 실종된 ‘대구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1991년), 이형호(사망 당시 9세)군이 납치됐다가 숨진 채 발견된 ‘이형호 유괴살해 사건’(1991년)의 경우 2006년 공소시효가 끝나 묻혀버렸다. 당시 살인죄의 공소시효는 15년이었다. 2007년 12월 형소법 개정으로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10년 더 늘어 현재 25년이 됐지만 이들 사건들까지 소급 적용되진 않았다.

한편 이번 형소법 개정안에서 상해ㆍ폭행치사ㆍ강간치사ㆍ유기치사 등 모든 살인죄에 공소시효를 없애는 내용은 개별법 별로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제외됐다. 살인 이외에 ‘5년 이상’ 형에 해당하는 중범죄의 경우 DNA 등 과학적 증거가 확보되면 범죄자를 특정할 수 없더라도 공소시효를 10년간 중단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심의 과정에서 빠졌다. 오욱환 변호사는 “물론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 영원히 추적해 처벌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동의하지만, 유독 살인죄에 대해서만 공소시효를 폐지한다면 다른 흉악범죄와의 균형이 무너질 수 있어 형법학자들의 검토를 거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손현성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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