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개인청구권 막으려 이중삼중 잠금장치… 전쟁범죄에 구멍 뚫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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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개인청구권 막으려 이중삼중 잠금장치… 전쟁범죄에 구멍 뚫려

입력
2015.07.20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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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국민 간 재산·권리·이익과 청구권 문제 완전·최종 해결" 조항

불법 행위 인정 땐 개정론 힘 받아, 세계문화유산 강제노동 애써 부인

위안부·원폭 피해자·사할린 동포… '對日 8항목 요구'에 미포함 피해도

1990년대 이후 속속 드러나

“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 1965년의 한일 청구권협정 제2조 1항이다. 일본측이 위안부나 강제동원 피해에 대한 보상을 부인할 때마다 상투적으로 흔들어대는 국제법적 근거이다. 50년 전 국교를 맺으면서 양국 간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청구권을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하기로 약속해놓고선 이제 와서 딴소리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일까. 한일 양국의 외교기록을 통해 그 실체를 되짚어본다.

공항 창고에서 서명된 청구권 합의의사록

1965년 4월3일 도쿄에서 이동원 당시 외무부장관과 시이나 에쓰사부로(椎名悅三郞) 일본 외상은 앞서 언급한 청구권협정에 가조인했다. 하지만 이때 일본 정부, 특히 대장성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의 의미가 너무 추상적이라면서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못 박아두지 않으면 나중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이렇게 일본측이 별도로 준비하고 한국측이 서명한 부속 합의의사록은 당초 외부에 공표되지 않았기에 사실상 밀약의 형식을 취했다.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한일 양국 및 양 국민의 재산 및 양국 및 양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에는 한일회담에서 한국측이 제출한 ‘한국의 대일 청구 요강’(이른바 8항목)의 범위에 속한 모든 청구권이 포함되어 있고, 따라서 관련 협정의 발효에 의해 이 대일 청구권 요강에 관해서는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요컨대 청구권협정에서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되는 것은 이승만 정권이 1951년 2월 제1차 한일회담 때 일본측에 제출한 ‘한국의 대일 청구 요강’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8개 항목으로 구성된 ‘한국의 대일 청구 요강’(별칭 ‘대일 8항목 요구’)은 식민지 피해에 대한 배상 요구를 제외한 반면, 한국의 분리ㆍ독립에 따라 청산해야 할 채권채무 관계를 망라했다. 특히 제5항은 한국 법인 및 개인의 일본국 및 일본 국민에 대한 청구권의 변제를 요구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일제의 태평양전쟁 중에 강제동원된 징용 피해자 등에 대한 미수금, 위자료 등이 포함됐다. 다시 말하면 청구권협정의 부속합의를 통해 한국 정부는 오늘날 논란이 되고 있는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도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하기로 약속한 셈이다.

다만, 당시 박정희 정부도 포기할 청구권을 구체적으로 적시하는 데는 어느 정도 부담을 느꼈던 것 같다. 일본 외교문서에 따르면 이동원 장관을 포함한 한국 대표단은 1965년 4월23일 청구권협정에는 가조인했지만 추가적으로 일본측이 합의의사록을 들이대자 서명하지 않은 채 공항으로 떠나버렸다. “한국측은 도망치려는 마음이었던 것 같았지만 우시로쿠 도라오(後宮虎郞) 외무성 아시아국장이 공항까지 쫓아가 연하구 외무부 아주국장을 창고와 같은 승무원 대기실로 불러내 결국 서명을 받아냈다.” 마쓰나가 노부오(松永信雄) 당시 일본 외무성 조약과장은 이렇게 회고하며 “이로써 사라지는 한국측 청구권이 무엇인지 분명해졌다”고 말했다.

‘개 죽이기’ 논쟁이 된 개인청구권 문제

“숲으로 도망친 개는 밖으로 나오면 죽이면 된다”(한국측). “아니다. 아예 숲을 불살라버려야 한다”(일본측). 한일 양측은 청구권협정의 가조인 후인 1965년 6월11일부터 시작된 막판 조문 작업에서 또다시 맞섰다. 여기서 ‘개’는 다름 아닌 한국측의 개인청구권을 의미했다. 일본측은 미래의 특별한 상황에 만에 하나 튀어나올지도 모를 개인청구권의 싹마저 원천적으로 잘라버리길 원했다. 결국 한국 정부는 일본의 이런 희망사항을 받아들였고, 그 결과가 청구권협정 제2조 3항에 규정된 “타방 체약국의 관할 하에 있는 것에 대한 조치에 관해서는 ……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는 문구였다.

개인청구권을 ‘숲으로 도망친 개’ 취급해온 한국 정부가 지금껏 강제징용 피해에 대한 어떠한 보상도 부인해온 일본측에 군말조차 못하는 이유이다. 이 조항으로 인해 한국 정부는 일본 당국이 일본 내에 남아있는 강제징용자의 미수금 등 한국인의 채권을 어떻게 처분하든 이에 대해 어떤 주장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일본 정부가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의 후생연금 탈퇴수당으로 99엔을 지불하든, 안하든 이는 어디까지나 일본측 소관사항인 것이다.

그러나 일본측이 ‘도망친 개를 잡기 위해 숲을 불태우듯이’ 이중삼중으로 개인청구권을 소멸시키려 했지만 모든 것을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완결 짓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첫째, 1965년 청구권협정은 한국이 한일회담에서 제기한 8개 항목의 대일 청구권의 포기를 규정했을 뿐 전쟁범죄에 의한 피해는 전혀 반영하지 못했다. 청구권협정은 그야말로 재정적, 민사적 채권채무 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지 일제가 전쟁 중에 저지른 강제와 폭력, 이로 인한 피해에 대해선 일절 따지지 않은 것이다.

근본적 결함은 식민지배의 합법성

판결 앞둔 대법원 소송서 부정되면

양국 외교 전면전 번질 가능성도

한일조약의 국회비준에 앞서 박정희 정부와 민주공화당은 전국을 순회하며 한일회담 대국민설명회를 열었다. 여기서는 일본에서 들어올 정체불명의 유상·무상 자금이 “우리의 ‘청구권’에 의한 정당한 권리 행사”로 포장됐고, 과거사를 팔아버렸다는 씻을 수 없는 과오를 반성하기는커녕 산업화와 경제 성장이라는 ‘장밋빛’ 희망만이 강조됐다. 출처: 국가기록원

일본이 ‘강제’ 노동을 부인하는 이유

최근 아베 신조(安倍晉三) 총리 등 일본측이 한국과 일본의 합의하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산업시설들에서 조선인 강제노동이 있었다는 사실을 잇달아 부인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명백한 역사 왜곡임에도 일본측이 ‘강제’라는 말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은 무엇보다 한일 청구권협정에 언급되지 않은 전쟁범죄 문제가 부각되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국가폭력이 가미된 ‘강제노동’이나 위안부 문제처럼 인도에 반하는 불법행위를 인정하게 되면 한일 청구권협정의 개정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

둘째, 한일 양국이 청구권협정에서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하기로 했던 이른바 ‘대일 8항목 요구’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피해가 1990년대 이후 속속 드러났다. 위안부 문제, 원폭 피해자, 사할린 동포 등 3가지가 대표적이다. 2005년 노무현 정부가 한일 국교정상화 관련 외교문서를 공개하면서 ‘민관공동위원회’를 통해 강제징용 문제는 추가 배상의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렵다면서도 이 3가지 피해에 대해선 ‘해결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론지은 것은 무엇보다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되는 ‘대일 8항목 요구’에 이들 문제가 빠져 있는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일본측은 청구권협정을 통해 모든 청구권이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청구권협정이 내재한 보다 근본적인 결함은 셋째, 일제 식민지 지배가 사실상 합법적이었다고 전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대일 8항목 요구’의 내용과도 밀접한 관계를 갖는데, 여기서 한국 정부는 일제의 식민지 지배로 인한 인적ㆍ물적ㆍ정신적 배상 요구는 배제한 채 일제의 전쟁기간 중에 발생한 피해의 보상과 국가의 분리에 따른 채권채무 관계의 청산만을 요구했다. 다시 말하면 한국은 일제 식민지기의 법체계를 토대로 한 재산 및 청구권만을 문제 삼았다.

당연히 일본은 이러한 한국측의 법적 인식을 얼씨구나 하고 받아들였다. 이는 일본측이 공개한 공문서 가운데 노동성, 대장성, 후생성 등 관련 부처가 청구권협정에 관한 한국측의 개인청구권을 소멸시키기 위한 법적 근거를 정리해 놓은 자료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여기서는 한결같이 과거 일제가 만든 노동법, 은급법 등이 적용되었다. 일본 법원이 위안부, 강제징용 등 한국인 피해자의 소송에서 패소 결정을 내린 주요한 이유 중 하나도 과거 일제의 헌법에는 국가배상의 의무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최근 아베 총리가 ‘강제노동’이 없었다고 주장하면서 내세운 근거도 다름 아닌 일제가 전시동원 및 통제를 위해 만든 국가총동원법(1938년)과 국민징용령(1939년)이다. 식민지 지배가 합법적이었다는 일본의 눈으로 보면 강제노역도 어디까지나 일제의 법체계 하에서 이뤄진 만큼 어떤 강제성도 있을 수 없게 된다. 이런 황당한 주장을 한국 정부도 1965년 청구권협정을 통해 실질적으로 묵인한 것이다.

한일 양국 정부가 이렇게 식민지 지배와 개인청구권 문제에 대해 사실상 ‘공범’ 관계를 구축해온 가운데 현재 이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대법원의 최종심(재상고심)이 진행 중이다. 앞서 2012년 대법원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청구권협정 협상 과정에서) 한일 정부는 일제의 한반도 지배의 성격에 관해 합의에 이르지 못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나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 사건을 파기 환송한 바 있다. 대법원에서 판결이 확정되고 손해배상 단계로 들어가면 일본 기업과 개인 간의 민사소송을 넘어 한일 양국 간 전면적 외교 충돌로 번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청구권협정 3조 1항은 “본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양 체약국 간의 분쟁은 우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여 해결한다”고 되어 있다. 청구권협정 50주년을 맞은 올해 한일 정부가 어긋난 역사 인식과 권리의무 관계의 괴리를 좁히는 외교력을 어떻게든 발휘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이동준 기타큐슈대 국제관계학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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