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메일 첨부파일, 작성자가 법정서 진정함 밝혀야 증거"
대법원은 16일 원세훈(64) 전 국정원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를 직접 판단하지 않고 원심이 확정한 사실관계에 오류가 있다며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검찰이 핵심 증거로 제출한 국정원 직원의 이메일 첨부파일의 증거능력을 원심이 인정한 것은 형사소송법에 대한 법리를 오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 검찰이 제시한 핵심 증거 '국정원 직원의 이메일 첨부파일'
문제가 된 파일은 '425지논'과 '씨큐리티'라는 이름이 달린 텍스트 형식의 문서다. 검찰은 국정원 직원들의 이메일을 압수수색하던 중 직원 김모씨가 한 포털사이트에 있는 자신의 이메일 계정의 '내게 쓴 편지함'에 첨부파일로 보관하던 이 두 파일을 발견했다.
씨큐리티 파일에는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이 사이버 활동에 사용한 트위터 계정으로 보이는 269개 계정과 비밀번호, 심리전단 직원들의 이름 앞 두 글자로 보이는 명단 등이 담겨 있었고, '425지논' 파일에는 이들이 위에서 매일의 업무 방향에 대한 지시를 받은 것으로 보이는 '이슈와 논지' 등 내용이 담겨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파일이 형사소송법상 '전문(傳聞)증거'에 해당해 그 작성자가 법정에 나와서 그 진정함을 밝혀야만 증거로 인정할 수 있다는 이유로 그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 1심과 2심 판단 어떻게 달랐나
형사소송법상 이메일 첨부파일은 디지털 저장매체에 입력된 문자정보를 출력한 것이어서 누군가가 진술한 내용을 기재한 서류와 다를 바 없으므로 가감이나 조작 가능성이 있는 '전문증거'로 분류된다. 형소법 313조 1항은 진술서 등 전문증거에 대해 그 작성자가 직접 법정에 나와 자신이 작성한 것임을 인정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국정원 직원 김씨는 검찰 조사에서는 이 파일이 자신이 작성한 것이 맞다고 진술했다가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서는 착각이었다며 그 파일을 자신이 작성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파일 작성자로 의심되는 당사자가 이를 부인함에 따라 1심은 이 첨부파일이 진정성이 없다며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2심은 김씨가 법정에서 자신이 작성했다고 인정하지 않았어도 이 파일의 진실성을 인정할 법적 근거가 있다고 봤다.
형소법 315조 2호는 '당연히 증거능력이 있는 서류'로 '상업장부, 항해일지 기타 업무상 필요로 작성한 통상문서'를, 315조 3호는 '기타 특히 신용할 만한 정황에 의해 작성된 문서'를 증거로 인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2심은 문제의 첨부파일이 국정원 직원 김씨의 심리전단 업무를 하기 위한 필요에 따라 매일 작성한 통상문서에 해당한다고 봤다. 또 김씨가 이 이메일 계정을 자신 외에는 쓴 적이 없다고 진술했고 이 파일 내용에 국정원 직원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조직 명단과 업무상 기밀 등이 담겨 있는 점을 들어 김씨 본인이 작성했다고 믿을 만한 정황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 대법원, 형사소송법에 엄격한 해석
그러나 대법원은 2심의 이런 판단이 틀린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형소법 315조가 규정한 '업무상 필요로 작성한 통상문서'에 대해 "작성자에게 맡겨진 사무처리 내역을 그때 끄때 계속적·기계적·반복적으로 기재하는 것으로 허위가 개입될 여지가 없고 고도의 신용성이 있기 때문에 작성자를 불러봐도 문서를 제출한 것이랑 다름이 없어서 당연히 증거능력을 부여한다는 것이 형소법의 취지"라고 판시했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425지논' 파일의 상당 부분이 출처를 명확히 밝히기 어려운 단편적이고 조악한 언론기사 일부와 트윗글이며, '시큐리티' 파일 내 심리전단의 트윗 계정은 근원이 불분명한 데다 작성자가 기계적으로 반복해 작성한 건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업무상 작성된 통상 문서로 볼 수 없다고 해석했다.
대법원은 사실관계를 다시 심리하라며 유·무죄 판단을 하지 않았지만, 선거법 위반 혐의의 핵심 증거를 부정하는 판시를 내림에 따라 파기환송심에서 선거법 위반이 유죄로 판단될 가능성은 희박해지게 됐다.
앞서 1심은 대법원 판단과 같이 두 파일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아 국정원 심리전단의 트위터 계정 규모가 크게 축소되는 바람에 정치 관련 글 11만여건만 증거로 인정돼 국정원법 위반만 유죄로, 선거법 위반은 무죄로 판단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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