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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코딱지들~ 아저씨가 더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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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코딱지들~ 아저씨가 더 고마워요

입력
2015.07.14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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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텔'서 백주부 꺾고 시청률 1위, 공감 댓글과 추억 공유에 눈물 쏟아

"손 떨려 못할 때까지 계속 접겠다"

“어린이 친구들 이제 어른이죠? 어른이 됐으니 이제 잘 할 거에요. 잘 안 되면 어머니께 도와달라고 하세요.” 최근 MBC ‘마이리틀텔레비전’에 출연한 ‘종이접기 아저씨’ 김영만씨의 이 말이 보는 이들을 울컥하게 만들었다. MBC 제공

“아이들이 종이접기를 완성해 나갈 때 짓는 즐거운 표정을 잊을 수 없어요. 그 과정 속 숨소리까지 다 기억합니다. 그걸 보는 즐거움으로 30년 가까이 종이접기를 해 온 거고요. 그런 저를 기억해 줘 고마울 뿐이죠.”

1980년대 말부터 2000년대까지 어린이 프로그램을 보던 20~30대라면 익히 알 만한 ‘종이접기 아저씨’ 김영만(65)씨. 그는 예순이 넘어서도 여전히 ‘동심’을 접고 있었다. 카메라 앞에서 “손이 떨려도 이해해 달라”고 걱정하면서도 “내가 다른 사람과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행운 같은 재능이라 포기하지 못했다”고 그는 말했다.

김씨가 12일 MBC 예능프로그램 ‘마이리틀텔레비전’ 인터넷 생방송에 깜짝 등장해 네티즌들의 열렬한 반응을 끌어내고 결국 ‘쿡방 대세’ 백종원을 제치고 시청률 1위를 차지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14일 만난 김씨는 그저 “꿈만 같다”며 웃었다. “인터넷 방송에서 다들 ‘흑흑’이란 말로 공감해주고 악플 하나 없이 추억을 나눠 즐거웠어요.”

추억의 힘은 강했다. 오랜만에 등장한 김씨의 모습에 네티즌들은 대여섯 살 꼬맹이로 되돌아갔고 온라인은 후끈 달아올랐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 되살아나 눈물이 났다’ ‘도시 매연 속에서 살다 휴양림 간 기분’이라는 글이 굴비 엮듯 이어졌다. 인터넷과 컴퓨터 그리고 스마트폰이 없던 그 시절, TV 어린이 프로그램 속 종이접기를 보며 즐거워했던 이들이, 김씨가 주름진 손으로 색종이를 접어 피운 향수에 빠져들었다.

결국 김씨는 인터넷 생방송 종료 직전 중간점검에서 1위를 차지하고 눈물까지 보였다. 그는 “나이 예순 넘어 얼마나 창피한 줄 모른다”고 쑥스러워하더니 “기분이 참 묘하더라”고 했다. “녹화 전 순위는 생각하지도 않았어요. 내가 감히 백 주부를 상대할 수 있겠나 싶었으니까요. 그냥 종이접기 교육자로 추억을 주자는 생각, 옛날에 내 종이접기를 즐겼던 ‘꼬딱지 만한 친구들’이 얼마나 컸을까라는 호기심에 출연했는데 갑자기 1위라니 속에서 뭔가 확 올라오더라고요. 주위를 보니 스태프들도 울고요. 그래서 참지 못하고 눈물을 쏟았네요.”

김영만과 신세경

김씨를 반긴 이들 중에는 배우 신세경도 있었다. 신세경은 인스타그램에 ‘아저씨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라는 글과 함께 김씨와 찍은 옛 방송 사진을 올렸다. 신세경이 초등학생 때이던 2000년대 초반 KBS2 ‘TV유치원 하나둘셋’에 출연해 김씨와 종이접기 코너를 진행하던 모습이었다. 김씨는 “세경이가 그 때 정말 예쁜 꼬마였다. 예전에도 예의가 굉장히 발랐고 순발력이 좋아 방송을 함께 하기 굉장히 편했던 친구”라고 말했다. 또 “이젠 스타가 됐지만 보고 싶다”는 말도 보탰다.

김씨는 1988년 ‘TV유치원 하나둘셋’에 출연하며 본격적으로 종이접기에 뛰어들었다. 종이접기를 처음 시작한 건 그보다 5~6년 전 일이다. 홍익대 미대를 나와 대기업 디자인파트에서 일을 하다 사표를 낸 후 새 일을 찾을 때다. 김씨는 “회사에서 독립해 사업을 준비하다 실패해 친구의 일본 집에 머무르던 때였다. 친구 딸을 유치원에 데려다 줬는데 유치원에서 하는 종이접기 수업을 보고 이 일을 시작했다”고 옛 일을 들췄다. 일본 유아 교육 현장을 둘러보고 우리나라 만들기 교육이 아이들의 창의성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이 때부터 김씨가 색종이로 접어 만든 조형물은 1만여개가 넘는다. 그럼에도 특허 출원은 하지 않았다. “아이들을 위해 시작한 일인만큼 많은 사람들이 내 종이접기를 따라하는 게 즐거움”이라고 그는 종이접기 철학을 밝혔다.

2000년대 중반 KBS2 ‘혼자서도 잘해요’에서 하차한 김씨는 TV 밖에서 종이접기 지도를 계속했다. 종이문화재단 평생교육원 이사로 필리핀 등 개발도상국 교사들에 종이접기를 알려주고, 수원여대 아동미술학과 교수로 강단에 섰다.

“외환위기 터지고 수입이 반으로 줄었을 때도 포기하지 않은 게 종이접기예요. 내 삶의 의미이자 즐거움이거든요. 손이 떨려 더는 종이를 접지 못할 때까지 계속 할 겁니다, 하하하.”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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