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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철거민 마을 이끌던 의사 설득해 담은 활동기록, 책 내고 마을 잔치도 벌여

입력
2015.07.0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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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변두리에 위치한 반송은 1968~1975년 부산시가 도심의 판잣집들을 철거하면서 실시한 집단이주정책으로 조성된 마을이다. 철거민들의 마을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반송은 2005년 10월 진주에서 열린 제5회 전국 주민자치센터 박람회에서 당당하게 최우수상을 차지하였는데, 그 뒤에는 ‘반송을 사랑하는 사람들’(현 희망세상)이라는 지역 활동 단체, 그리고 그 단체를 설립한 고창권씨가 있었다.

내가 고씨를 안 것은 출판사를 시작하기 훨씬 전부터다. 출판사를 하기 전 나는 창원에서 직장생활을 했고 아내는 부산의 병원에서 일을 했는데, 고씨가 그 병원의 의사였다. 회사 나들이 모임에서 만난 고씨는 1997년부터 ‘반송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들고 이끌면서 주민들과 함께 문화공동체, 자치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일들을 자세히 들려주었다.

마을신문을 발간하고 벽화를 그리고 어린이날 놀이 한마당, 좋은 아버지 모임 등을 개최하는 일에 고씨는 10여년 간 헌신적으로 매진하고 있었다. 그는 주민이 지역의 주인으로서 지역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으며, 특히 반송처럼 작은 지역이 모범적인 선례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이런 일들이야말로 책으로 기록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역의 소소한 움직임들까지 포착해주는 출판사는 없었다.

2005년 출판사를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고씨를 찾아갔다. 부산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작지만 소중한 일들을 책을 통해 전국의 독자와 나누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고씨야 말로 첫 저자로 적임자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을 내자는 말에 그는 선뜻 확답을 주지 않았다. “내가 무슨 책을….” 그는 자기 이름으로 책을 펴낸다는 사실을 부담스러워했다. 애가 탔던 나는 재차 찾아가 이 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를 역으로 설득했고, 그는 그제서야 “한 번 정리해보겠다”는 답변을 주었다.

책을 만드는 일에 있어서 나도 고씨도 순전히 ‘초짜’였으나, 내용에 대한 확신이 있어서인지 출간 작업은 순조로웠다. 저자는 무더운 여름을 보내면서 정해진 시간 내에 땀의 결과물을 보내왔다. 원고 교정을 보고 편집을 거쳐 그 해 10월 31일 드디어 첫 책이 출판되었다.

책이 나온 뒤 주민자치센터에서 출간기념회 겸 마을잔치를 열었다. 반송 주민들은 자신들과 고씨가 함께 만든 10년의 역사를 보며 뿌듯해했다. 이 책은 이후 산지니 출판사의 방향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단지 지방이라는 이유로 묻혀 버리고 마는, 소소하지만 중요한 움직임들을 가장 먼저 포착하는 게 우리의 할 일이라는 암묵적 약속이 이루어진 것이다.

올해는 산지니 출판사가 설립된 지 10년째 되는 해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변방에서 활동하는 이들에게 다가가 “당신의 활동이 책이 될 수 있다”고 말을 건네는 출판사가 되고자 노력할 것이다.

강수걸ㆍ산지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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