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바라, 모히토, 시가, 헤밍웨이,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사회주의, 피델 카스트로, 아바나 해변의 말레콘 방파제…. 카리브해의 섬나라 쿠바는 많은 여행자들이 가보고 싶어하는 낭만의 공간이다. 가난하지만 평화롭고 행복한 나라라는 이미지로 유명하다. 정말 그럴까. 영화 다음으로 쿠바를 좋아한다는 정승구 영화감독(‘펜트하우스 코끼리’)이 지난해 가을 쿠바의 진짜 모습을 담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이 책은 여행기의 형식을 띤 쿠바 종합 소개서다. 외국인의 눈으로 본 쿠바 사람들의 삶을 중심으로 쿠바의 문화와 역사까지 담았다. 어디로 가야 좋은 볼거리가 있고 맛집이 있는지를 귀띔해주진 않지만 쿠바의 일상을 간접 체험할 수 있고 쿠바의 현재를 통해 한국의 현재를 살펴보게도 만든다. 쿠바의 건축물, 집, 거리, 골목, 풍경, 사람들을 찍은 근사한 사진들이 구경할 만하다.
책은 두 가지 성격의 글로 짜여있다. “나의 조국 쿠바는 낙원”이라고 말하는 가이드 하비에, 중년 부인 마그다와 스물두 살의 아들 페페, 페페의 친구 다리아나 등 현지인들과 겪은 이야기가 한 축이라면 다른 축은 쿠바의 문화, 정치, 역사에 대한 저자의 소개다. 앞 부분은 여행 에세이의 성격이 강한데 뒤로 갈수록 진지한 설명문이 많아진다.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도 자세히 소개한다. 미시적 관점에서 거시적 관점으로 쿠바를 볼 수 있도록 돕는 구성이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생동감이 떨어지고 교과서를 읽는 듯 딱딱한 느낌이 든다.
시카고대에서 경제학을, 하버드대에서 정치정책학을 공부한 뒤 영화감독으로 활동하는 독특한 이력답게 저자는 쿠바의 다양한 측면에 관심을 보인다. 그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건 역시 사람 사는 이야기다. 저자의 선입견과 달리 쿠바의 젊은이들은 거의 시가를 피우지 않고 쿠바 재즈를 세계로 알린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듣지도 않는다. 관공서에 가면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건 둘째 치고 “내일 다시 오라”는 말을 듣기 일쑤다. 다혈질인 남미인들과 달리 쿠바 사람들은 낙천적인 평화주의자에 가까운데 그래서인지 쿠바에는 강력범죄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저자가 현지인들과 만나는 이야기는 한 편의 로드무비 같다. 별다른 사건은 없지만 쿠바의 현재를 살아가는 필부필부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육상선수였던 마그다는 전 남편과 이혼하고 30년 전 만난 쿠바계 미국인과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 국가가 지원하는 영재교육을 받을 정도로 전도유망한 발레리나였던 다리아나는 교통사고 후 꿈을 접고 암시장 상인으로 살고 있다. 페페는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엄마 마그다에게 숨기고 있지만 마그다는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 평화로운 삶 속에서도 이들은 미래가 불안하고 불투명한 나라에서 떠나고 싶어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 사회와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해 총체적인 환멸을 느꼈”다는 저자는 쿠바 여행을 통해 받은 가장 큰 선물이 “긍정적인 상상력”이었다고 적었다. 자신이 달라질 수 있다는 상상력, 지금과 다르게 살 수 있다는 상상력,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상상력. 그건 체 게바라가 쿠바인들에게 준 선물이기도 하다.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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