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근심 없는 아기고릴라, 아장아장 걸어간다. 통통 뛰어간다. 문득 엄마코끼리가 아기를 안고 있는 장면을 목도한다. “안았네.” 그러고 보니 카멜레온도, 커다란 뱀도 모자가 서로를 꼭 안고 있다. “안았네.” “안았네.” “….” 목소리는 잦아들고 표정은 점점 시무룩해진다. 자기를 안아 줄 엄마가 곁에 없는 탓이다. “안아 줘.” 아기고릴라는 엄마코끼리에게 매달리고, 코끼리는 묵묵히 너른 이마를 내어준다. 이마에 올라타고 집으로 가는데 꼬마 사자도, 어린 기린도, 아기하마도 엄마 품에 안겨 놀고 있다. “안았네.” “안았네.” “안았네….” 더 이상 부러움을 견딜 수 없다. 아기고릴라는 엄마코끼리의 코끝을 딛고 서서 소리친다. “안아 줘!” 쪼그려 앉아 훌쩍인다. “안아 줘.”
모든 동물들이 아기를 둘러싸고 어쩔 줄 몰라할 때, 엄마가 나타난다. “보보야!” 아! 아기고릴라의 이름이 보보였구나. “엄마아-!” 정황을 보아하니 엄마는 잠시 외출했다 돌아왔을 뿐인 듯한데 둘의 만남은 거의 이산가족 상봉이다. 모여 있던 동물들이 일제히 소리친다. “안아 줘!” “안아 줘!” “안아 줘!” 드디어 엄마 품에 폭 안긴 보보, 세상을 다 얻은 얼굴이다. “안았어.” 만족스러운 목소리가 책 속에서 들려온다. 여기서 이야기가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아직 남아 있는 피날레. “안아 줘!” 모든 동물들이 소리치며 서로서로 얼싸안는다. 고릴라가 사자를, 사자가 기린을, 기린이 하마를, 하마가 다시 코끼리를. 카멜레온이 뱀의 허리를 끌어안고, 뱀과 사자가 꼬리를 이었다. 사자와 하마가 어깨를 걸었다. 가히 종을 초월한 포옹 잔치다. 보보는 기린의 뿔을 딛고 만세를 부른다. 세상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나 몰라라 하는 인간 세상이다. 이웃의 아이가 아비에게 맞아 죽은들, 움직이지 못하는 장애인이 화마를 피치 못해 숨을 거둔들, 가난한 예술가가 굶어 죽은들, 벼랑 끝에 몰린 어느 집 가장들이 목숨 걸고 굴뚝에 오른들, 막 피어나던 어린 생명들이 국가의 방관 앞에 떼로 수장을 당한들 내 자식, 내 형제, 내 가장이 아니면 고개를 돌려 버리는 삭막한 세상이다. 아니, 그도 모자라 그 가족들의 절규를 시끄럽다고, 길 막힌다고, 돈 바라고 저런다고 욕하고 손가락질하고 잡아가는 모진 세상이다. 잠시 엄마와 떨어진 남의 아기를 위해 제 품을 내어주고 지켜봐 주고 안쓰러워해 주는 동물들의 이야기를 보며, 그 배려와 응원과 연대의 잔치를 보며, 아기고릴라 보보의 한없이 행복한 표정을 보며 자꾸 목이 메는 까닭이다.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까닭이다.
김장성·출판인 겸 그림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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