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다시보기]
[편집자주] 방송계를 넘어 일상까지 물들인 먹방·쿡방. 왜 유독 우리나라에서 더 화제가 되는걸까요? '대한민국, 식탐에 빠지다'에서는 먹는 문화에 열광하는 사람들과 이를 보는 시선을 조명합니다.
TV 쿡방 열풍으로 덩달아 수혜를 입은 이들이 있다. 바로 인터넷 쿡방 1인 제작자들이다. 어느 때보다 인기가 뜨겁다. 1인 방송 제작이 인정받고 정보 제공형 콘텐츠가 늘면서 외부의 거부감도 줄어든 모양새다. MBC는 1인 인터넷 방송 콘셉트의 '마이 리틀 텔레비전'까지 제작하며 기존의 격식을 깨뜨렸다.
하지만 여전히 '별풍선'으로 돈을 쓰면서까지 인터넷 쿡방을 보는 현상에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서 기자가 직접 나섰다. 민망함은 사무실에 내려놓고 지난 3일 아프리카TV 쿡방의 게스트로 출연했다.
1. [D-14] 섭외: ‘떡류탄’의 주인공을 만나다
아프리카TV 홍보팀과의 연계로 BJ 요리왕 비룡 최지환(27)씨를 섭외했다. 최씨는 과거 떡을 튀기다 폭발한 '떡류탄' 영상으로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른 유명 BJ다. BJ 등급은 일반, 베스트, 파트너로 나눠지는데 일반은 별풍선의 약 40%, 베스트는 약 30%, 파트너는 약 20% 수수료를 뗀 수입을 벌어들인다. 최씨는 '베스트 BJ'에 속한다.
2. [D-7] 기획: 여기자에게 ‘군대 짬밥’ 보여주기
족발 갖다놓고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될 것 같지만, 인터넷 방송에도 나름의 기획력이 필요하다. 최씨는 그동안 예비군에게 군대음식을 배달하는 코너 등을 기획해왔다. 요즘엔 영역을 확장해 TV쿡방의 레시피를 따라하는 코너도 진행 중이다.
아이템 회의를 열었다. 최씨가 '취사병 쿡방'을 표방하니 군대 음식에 초점을 맞추기로 하고 군대 레시피 목록을 꾸렸다. 한 메뉴는 그가, 다른 메뉴는 기자가 만들어 시식하기로 했다. 최씨와 의견을 나눠 구체적인 메뉴와 콘셉트까지 확정했다.
3. [D-DAY] 생방송: 컵라면 먹고 ‘별풍선’ 번다?
경기 구리에서 최씨를 만났다. 군대 막사처럼 꾸며놓은 텐트가 그의 스튜디오. 내부에는 컴퓨터와 캠, 마이크, 주방 기기 등이 구비돼 있었다. 최씨는 "컴퓨터만 좋으면 마이크와 캠은 그렇게 비싸지 않다. 모두 다 해서 100만원 정도면 누구나 인터넷 방송을 시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저녁 5시 30분, 드디어 생방송이 시작됐다. 3년 2개월 경력의 최씨는 노련하게 기자를 소개했다. 하지만 기자는 리허설 때와 달리 안면근육이 굳기 시작했다. 다수의 시청자가 제각각 다른 얘기를 하니 혼이 쏙 빠졌다. “진짜 기자냐”는 얘기부터 “남자친구 있느냐”는 등 개인적인 질문도 쏟아졌다. 부정적인 댓글도 간혹 올라오긴 했지만 생각보다 악성댓글이 많지는 않았다.
최씨는 "요즘엔 엽기 성향을 벗어나서 깔끔하고 건강한 콘텐츠로 승부하는 BJ들이 늘었다. 그만큼 시청자의 의식도 향상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10분쯤 지나자 긴장이 풀리고 시청자의 댓글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컵라면으로 ‘맛다시 비빔국수’를 만들 쯤에는 댓글에 더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시청자가 조언을 하면 요리에 반영하거나 군대 관련 질문에 대답하는 식이었다.
“어? 이게 뭐야. 지금 3번 보내신 거에요?”
별풍선이 채팅창에 뜨자 최씨의 얼굴에 웃음꽃이 폈다. 한 시청자가 300여개의 별풍선을 연달아 3번 보낸 것. 최씨는 연신 감사인사를 전하며 춤을 췄다. 별풍선은 1개당 100원이므로 환전하면 약 90,000원이다. 여기에 약 30%를 뗀 나머지가 최씨에게 돌아간다.
4. 후기: ‘쿡방’의 이해
방송 말미 시청자에게 인터넷 쿡방을 왜 보는지 물었다. ‘대리만족’이라는 댓글이 채팅창을 가득 채웠다. “다이어트 할 때 먹방·쿡방을 보면서 식욕을 누른다” “혼자 밥 먹을 때 인터넷 쿡방을 보면서 외로움을 달랜다”“BJ와 함께 밥을 먹는 기분이 든다”는 의견이 있었다. 혼자 밥 먹기를 싫어하는 한국인에게 인터넷 먹방·쿡방은 쉽게 만났다 헤어질 수 있는 ‘편하면서 즐거운 친구’였던 것. 한편으론 요즘 젊은 세대의 헛헛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단면 같다는 씁쓸한 생각도 스쳐 지나갔다.
소통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니 시청자와 출연자 간 거리감이 좁혀졌다. 1시간 30분의 방송이 끝나자 700여명의 시청자와 정이 쌓인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특히 제작자가 참여를 끌어내며 시청자와 함께 방송을 만들어나가는 부분이 신선했다. 시청자가 수용자 입장에서 벗어나 공급자의 역할까지 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경쟁력을 갖췄다고도 볼 수 있다.
최근 인터넷 쿡방을 위한 화상카메라 구입이 증가하는 추세다. 온라인 마켓 11번가에서는 지난달 1일부터 이달 14일까지 화상카메라 매출이 동기간 대비 109% 증가했다. (▶관련기사 보기) 인터넷 방송이 쿡방 흐름을 타고 건강한 문화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은 장려할 만하다. 무분별한 양산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올바른 공급 문화를 구축하는 것은 1인 제작자의 몫이다.
이소라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최주호 인턴기자 (서강대 정치외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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