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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고 싶은 책] 천적 혹은 먹잇감과 친구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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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고 싶은 책] 천적 혹은 먹잇감과 친구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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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24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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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와 메이 시리즈 6권 (‘폭풍우 치는 밤에’ ‘나들이’ ‘살랑살랑 고개의 약속’ ‘염소 사냥’ ‘다북쑥 언덕의 위험’ ‘안녕 가부’) 기무라 유이치 글ㆍ아베 히로시 그림
가부와 메이 시리즈 6권 (‘폭풍우 치는 밤에’ ‘나들이’ ‘살랑살랑 고개의 약속’ ‘염소 사냥’ ‘다북쑥 언덕의 위험’ ‘안녕 가부’) 기무라 유이치 글ㆍ아베 히로시 그림

한밤중 숲속, 폭풍우를 피해 오두막에 들어온 염소 한 마리와 늑대 한 마리. 어둠 속에서 이야기하다 친해진다. 지레짐작, 선의의 오해, 감기로 마비된 후각 때문에 서로 비슷한 동물인 줄 안다. 번개가 어둠을 밝히자 눈을 질끈 감고 바싹 붙어 무서움을 쫓는다. 상대가 한 이야기를 정반대의 상황으로 해석하고 “우리는 정말 닮은 구석이 많아요”라며 감탄한다. 둘은 ‘폭풍우 치는 밤에’를 암호로 정하고 다음날 점심 약속을 한다.

이미 친구가 돼버린 늑대 가부와 염소 메이는 서로의 정체를 알고 놀라지만 금방 유쾌하게 웃는다. 가부는 통통한 메이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입맛을 다실 때마다 “친구를 맛있겠다고 생각하다니”라며 자기 머리를 때리고, 메이도 가부의 번득이는 눈을 볼 때마다 “친구를 의심하다니”라며 자기 머리를 때린다. 이 기이한 우정을 지키려 둘은 몰래 만난다. 하지만 동족에게 들킬 뻔 한 사건들을 맞닥뜨리며 각자 먹이사슬의 반대편에 있는 동물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내가 늑대라도?” “내가 할 말이야. 내가 염소라도 괜찮아?”

결국 늑대와 염소들에게 들킨 가부와 메이는 함께 탈출하기로 한다. 늑대 떼에 쫓기며 강을 건너고 산을 넘으며 갈등도 겪지만 더 가까워진다. “내 마음을 믿지 못하니까 그런 뻔한 연극이나 하는 거잖아” “먹이한테 혼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 했는걸. 앗. 정말 미안해” “호호호, 우리는 정말 이상해”. 눈보라 속에서 며칠을 굶은 끝에 메이는 가부에게 자신을 먹고 살아남으라고 한다. 가부는 메이를 뒤로 하고 추격자 늑대들을 보며 최후의 결심을 한다.

배꼽 빠지게 시작한 이야기는 가슴 저리게 끝난다. 웃음과 눈물 사이는 스릴이 메운다. 독자는 모든 상황을 아는데 가부와 메이만 몰라서 손에 땀을 쥐게도 하고, 독자에게 오해할 만한 상황을 서술하고 반전으로 안심시키기도 한다. 연극처럼 실감난다. 실제로 이 책의 작가 기무라 유이치는 ‘폭풍우 치는 밤에’를 극본으로 썼고 연극도 성공했다.

아베 히로시의 단순하면서도 힘찬 그림이 신선하다 (애니메이션 ‘폭풍우 치는 밤에’와 비교해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의인화된 만화체 그림의 애니메이션은 이 그림책이 품은 삶과 인간관계에 대한 성찰을 예쁘장하게 축소시킨다). 아베 히로시는 그림작가가 되기 전에 25년간 동물원 사육사로 일했다. 그의 그림에선 인간의 친구로 묘사되는 귀여운 동물이 아닌, 그 자체로 독자적인 존재인 동물의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 가부는 늑대답고 메이는 염소답다.

가부를 남성, 메이를 여성이라고 본다면 이 이야기는 진부하게 느껴진다. 동물 버전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나 할까(그래서인지 TV 멜로드라마 ‘주군의 태양’에서 줄거리를 암시하는 모티브로 이 그림책을 등장시켰다). 그러나 좀 더 넓은 시야로 보면 모든 사적인 친밀한 인간관계가 싹트고 자라 열매 맺는 과정을 알 수 있다. 서로 남이었던 존재가 탐색과 매혹, 의심을 거쳐 소중한 존재가 되는 것에 대한 묘사가 정교하다.

천적 혹은 먹잇감과 친구가 된다는 것. 웃음과 스릴, 눈물을 유발하는 설정을 통해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 아니였을까. 강자가 힘을 휘두르는 것을 절제해야 관계가 지속될 수 있다고. 염소고기보다 염소를 좋아하게 돼 즐거움과 고난을 동시에 직면해야 했던 늑대 가부가 그 사실을 온몸으로 증명한다. 강자가 약자를 밟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이 사회에선 아득하고 낡은 문구처럼 느껴진다는 걸 안다. 하지만 어쩌랴. 강자는 약자를 배려해야 한다. 자신이 좀 힘들어질지라도.

PS. 일본 어린이들은 ‘가부와 메이’ 시리즈에 열광했지만 슬픈 결말에 낙담했다. 작가 기무라 유이치는 “모두들 가부가 죽었다고 해요. 그러나 나는 눈 덮인 산에서 가부가 내려올 것을 믿고 있어요”라는 한 꼬마의 간절한 편지를 받고, ‘가부와 메이’ 시리즈 여섯 권을 쓴 지 10년 만에 뒷이야기 ‘보름달 뜨는 밤에’를 썼다. ‘보름달 뜨는 밤에’는 해피엔딩을 향해 맹목적으로 달려간다. 어린이들을 위한 작가의 팬서비스에 가깝다. ‘가부와 메이’ 시리즈는 여섯 권으로 완결됐다고 생각한다.

김소연기자 au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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