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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정부, 외신기사 단어 하나하나 트집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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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정부, 외신기사 단어 하나하나 트집 잡아"

입력
2015.04.14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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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기사에 해명보다 경고… 역사세탁 표현 쓰자 외무성 불러"

카르스텐 게르미스가 2012년 독도 방문 때 찍은 기념 사진. 이번 칼럼 '나의 시선(On My Watch)'에 관련 사진으로 같이 실렸다.
카르스텐 게르미스가 2012년 독도 방문 때 찍은 기념 사진. 이번 칼럼 '나의 시선(On My Watch)'에 관련 사진으로 같이 실렸다.

독일 유력 일간지 도쿄 특파원이 5년 일본 근무를 마치고 떠나면서 아베 정부를 향해 “불통” “언론 압박” “역사수정주의자” 등의 쓴 소리를 던져 화제가 되고 있다.

프랑크프루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의 카르스텐 게르미스(56) 기자는 도쿄 특파원 생활을 마감하며 그간 자신의 경험을 들어 아베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칼럼을 지난 2일 일본외국특파원협회(FCCJ)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게르미스는 2010년 1월부터 지난 2월까지 5년간 도쿄에 머물며 일본의 정치, 사회, 경제를 두루 취재해 온 일본 전문가다.

게르미스는 아베 정부가 그 동안 외신에 대해 지독한 ‘불통’의 태도로 일관했다고 지적했다. 아베노믹스와 수정주의 헌법, 청년 실업 문제 등 일본 내 산적한 이슈에 대해 일본 정부가 외신 기자들을 상대로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전 정부와 비교해도 아베 정부의 언론 대응 태도가 형편없었다”고 꼬집었다. 민주당 정부가 외신 기자를 공관으로 수시로 불러 모아 정부 정책을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던 데 반해 아베 정부는 정부 관계자가 외신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게르미스는 아베 정부가 불통일 뿐만 아니라 일본 정부에 비판적인 외신 기사를 대놓고 공격했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로 꼽았다. 그 예로 자신이 아베 정부의 역사수정주의를 비판하는 기사를 쓴 뒤 있었던 일을 소개했다. 이 기사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에 게재되고 얼마 뒤 주프랑크프루트 일본 총영사가 본사의 외교정책 담당 편집자를 항의 방문한 적이 있다.

일본 총영사는 당시 편집자에게 “중국이 이 기사를 연일 반일 선전에 이용하고 있다. 중국 현지 취재를 위해 비자가 필요한 기자가 중국과 모종의 거래를 한 것 같다”며 다짜고짜 모욕적인 언사를 퍼부었다고 한다. 총영사는 기사에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고 주장해 그를 증명할 자료를 내보라고 했으나 결국 아무 자료는 내보이지 못했다. 게르미스는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일본 정부에 항의했지만 ‘오해로 벌어진 해프닝’이라는 짤막한 대답만 돌아왔을 뿐”이었다고 덧붙였다.

게르미스에 따르면 아베 정부의 외국 기자들에 대한 고압적인 태도는 지난해부터 심각해졌다. 기자가 쓰는 단어 하나 하나를 트집잡는 일까지 벌어졌다. “일본의 국가주의적 행보는 일본을 동아시아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고립시킬 것”이라는 게르미스 기사에 잔뜩 화가 나 있던 일본 외무성은 그가 아베 정권의 역사수정주의를 ‘역사 세탁’이라고 표현하자 외무성으로 불렀다.

당시 외무성 당국자는 그에게 일본 정부의 생각을 이해시키거나 설득하려는 태도가 전혀 아니라 경고성 발언을 쏟아 부었다. 게르미스는 “일본 정부 당국자 가운데 그 누구도 독일 매체가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에 유독 민감한 이유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게르미스는 일본 정부의 이 같은 폐쇄성은 2012년 민주당 정권 때와 대비된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민주당 정권 때도 그는 일본 정부가 불편하게 여길 기사를 쓴 적이 있었다. 그가 한국을 방문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을 인터뷰하고 한국 정부에서 주최하는 독도 방문 프로그램에 참가할 계획이라는 걸 안 당시 일본 외무성은 장관이 직접 그를 점심식사에 초대해 독도가 왜 일본 땅인지 설명하는 자료를 한 꾸러미 안겼다. 게르미스는 “정부 당국자는 한국 방문 전 한일 현안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시키려고 했다”고 말했다.

아베 정부는 반대 여론을 억누르려고 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를 비판하는 외신 매체는 그 전보다 더 늘어났다고 게르미스는 말했다. 일본 정치인들과 정부 지도자들이 꾸준히 ‘모르쇠 정책’을 펴고 있지만 정부 외에도 정보를 얻을 창구는 수 없이 많기 때문이다. 게르미스는 다만 “언론 자유 국가에서 정부가 외신 기자들에게, 그리고 자신의 국민들에게 이토록 폐쇄적일 수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덧붙였다.

게르미스는 도쿄에서 지낸 지난 5년이 더 없이 행복했다고 말하며 자신을 일본과 일본인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일본은 여전히 가장 잘 살고 열려 있는 국가이며 특파원이 살거나 취재활동을 하기 좋은 국가 중 하나”라며 “다만 일본이 건강하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지향하길 소망할 뿐”이라며 칼럼을 마무리 지었다.

김민정기자 fac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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