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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 난동이 심심찮게 벌어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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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 난동이 심심찮게 벌어지곤 했다"

입력
2015.03.27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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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장서 울분 토하던 80년대

승부 집착ㆍ지역 갈등 극심, 심판 구타ㆍ500명 패싸움까지

90년대 에티켓ㆍ이성의 시대로

'아저씨'들의 전유물서 변화, 여성팬 등 늘며 즐기는 문화 형성

92년 6월18일 벌인 롯데ㆍ빙그레 부산경기서 그라운드에 난입했다가 쫓겨난 관중들이 되레 경찰에 항의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92년 6월18일 벌인 롯데ㆍ빙그레 부산경기서 그라운드에 난입했다가 쫓겨난 관중들이 되레 경찰에 항의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90년 8월26일 LG와 해태간 잠실경기에서 벌어진 관중 패싸움. 한국일보 자료사진
90년 8월26일 LG와 해태간 잠실경기에서 벌어진 관중 패싸움. 한국일보 자료사진

시즌 개막을 앞두고 최근 프로야구 LG 트윈스 팬 게시판에 두 가지만 지키자는 글이 올라왔다. “경기장에 아이들도 오는 만큼 흡연은 흡연실에서만 하자” “외야석에 가방으로 자리를 많이 차지하는 얌체 짓을 하지 말자”는 야구장 에티켓에 관한 내용이다. LG 팬 진모씨가 올린 글이다. 여기에 “캠페인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등의 찬성 댓글이 16개나 붙었다. 덕아웃 뒤 내야석에서 수시로 터져 나오는 욕설은 요즘 어느 구장에서든 찾아볼 수 없다. 간혹 몰상식한 광 팬이 선수 욕을 하기라도 하면 주위의 눈총을 받는다. 롯데 팬들의 쓰레기 치우기 문화는 정착된 지 오래다.

외야 스탠드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던 프로야구 출범 초기를 돌아보면 지난 30여년간 관람ㆍ응원문화의 변화양상은 민주주의 정착 과정과 다를 게 없다. 무질서와 혼란, 광란과 폭도의 시대에서 이성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할만하다. 격세지감이다.

92년 10월9일 빙그레 팬들이 무기력한 패배에 반발, 구단 버스를 박살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92년 10월9일 빙그레 팬들이 무기력한 패배에 반발, 구단 버스를 박살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80년대 관중 폭력 극심… 지역감정 구장에 파고들어

1986년 10월22일 한국시리즈 3차전이 벌어진 대구구장. 해태 타이거즈 선수들은 삼성을 6대5로 눌렀지만 두려움이 컸다. 구장 밖에서 45인승 버스가 불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태의 연장 역전에 격분한 삼성 팬들이 불을 지른 것이다. 삼성 팬들은 출입구까지 봉쇄해 선수단은 옴짝달싹 못한 채 1시간 이상 갇혀 있어야 했다. 삼성 관중의 난동은 사흘 전 광주 1차전에서 중간계투로 호투한 삼성의 진동한이 7회말을 잘 막은 뒤 덕아웃 앞에서 관중이 던진 소주병을 맞은 데 대한 보복 성격이 짙었다. 당시 해태 주치의였던 임채준 목포우리요양병원장은 “당시 영호남 지역감정 분위기가 경기장에 고스란히 파고들어 선수뿐만 아니라 팬들까지 몹시 흥분된 상태였다”고 회상했다.

관람문화가 정립되지 않은 출범 초기 과도한 승부 집착과 지역연고제로 인한 지역갈등 구도가 야구판에 그대로 투영돼 관중 난동이 비일비재했다. 1980년대 후반 OB 베어스(현 두산) 선수로 뛰었던 H씨는 “지역색이 강했던 광주나 부산, 대구의 관중석에서 다른 팀을 응원했다간 몰매를 맞는 분위기였다”며 “원정팀 선수들은 홈 팬들이 그라운드로 던진 빈 병 세례에 주눅 들기 일쑤였다”고 말했다.

88년 5월19일 해태와 빙그레 대전 경기에선 판정에 불만을 품은 팬 200여명이 그라운드로 난입, 주심 등 심판들을 구타했다. 관중 난동에 의한 몰수게임 규정이 생긴 계기다. 프로야구 사상 최대 관중 난투극은 90년 8월26일 LGㆍ해태 잠실경기에서 빚어졌다. 7회 LG의 10대0 리드에 불만을 품은 해태 팬들이 그라운드에 난입했고, LG 팬이 맞대응하면서 500여명이 패싸움을 벌였다. 하일성 전 KBO 사무총장은 “90년대 초까지는 세상에 대한 울분이 야구장에서 다 터져 나왔던 시기”라면서 “지역 라이벌 구도가 굳어지면서 이성을 잊은 팬 난동이 자주 벌어졌다”고 말했다.

90년대 다양한 팬층 유입으로 아저씨 문화 변화

관람 문화에 변화가 일어난 건 잘 생긴 실력파 선수들이 대거 활약한 90년대 중반부터다. 93년 야구천재 해태 이종범, 94년 김재현 서용빈 유지현 등 LG 신인 3인방, 95년 삼성 이승엽 등 귀공자 풍의 스타 플레이어를 보기 위해 수많은 여성 팬들이 야구장으로 몰려들었다. ‘아저씨’들의 전유물로써 프로야구의 광적인 분위기가 유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박찬호의 미국 메이저리그 성공과 2000년대 월드베이스볼클래식, 올림픽, 아시안게임 등 해외무대에서의 선전으로 프로야구 위상이 높아지면서 어린이, 가족까지 열기가 확산됐다. 프로구단들도 인터넷 발권 예약 시스템 도입, 경기장 시설 개선 등으로 팬층 저변 확대에 일조했다. 허구연 야구 해설가는 “다양한 팬층 유입으로 자연스레 구장 폭력 등 불미스런 사고도 사라졌다”며 “야구를 즐기는 문화 형성과 함께 전문가 수준의 팬들도 무척 늘었다”고 말했다.

프랜차이즈 스타에 대한 팬들의 애정도 각별해졌다. 삼성 팬들이 지난 시즌 FA협상 결렬로 한화로 떠난 배영수에게 지역신문 광고에 “모든 순간 함께 할 수 있어 늘 감사했다”는 뜻을 전한 게 대표적이다. 이전에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그러나 홈 게시판 등을 통해 팬과 소통하지 않을 수 없는 구단, 선수들의 고민도 크다. 특히 경기에 대한 일부 팬들의 무책임하고 악의적인 악플에 상처를 받는 선수, 감독이 많다. 한 구단 관계자는 “과도한 비난을 받으면 추후 경기에서 선수가 의기소침할 수밖에 없다”며 “욕설 등에 대해서는 팬 스스로의 자정운동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원년구단의 한 프런트는 “선수의 가족까지 비난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구단 홈페이지 게시판부터, 포털 카페 등 커뮤니티, SNS 등에서 여론 형성과 조직화가 쉬워진 지금 권력화 우려도 없지 않다. 감독을 상대로 한 팬들의 위압적인 청문회가 팬심을 과시하는 방편이 되고 있지만 경기운영의 개선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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