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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야근만 120시간… "급여 줄까봐 병가 낼 엄두도 못내"

입력
2015.03.23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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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ㆍ환자들 수발ㆍ치료보조 / 3, 4명 보호사가 30여명 돌봐

한달 240시간을 병원서 보내고 손에 쥐는 돈은 월 160만원

"재취업이나 이직은 헛꿈, 아이 돌볼 시간 조차 없어"

요양보호사 이경애씨가 15시간 야간근무를 하기 위해 출근하고 있다. 그는 "급여 인상 등 처우 개선은 둘째 치고 오늘도 사고 없이 근무를 마칠 수만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요양보호사 이경애씨가 15시간 야간근무를 하기 위해 출근하고 있다. 그는 "급여 인상 등 처우 개선은 둘째 치고 오늘도 사고 없이 근무를 마칠 수만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어떻게 뼈가 깨져나가는 것도 모르고 일을 할 수 있어요?”

황당한 표정으로 의사가 물었다. 요양보호사 이경애(40ㆍ가명)씨는 말문이 턱 막혔다. 수개월째 다리가 끊어질 듯 아팠지만 고된 업무와 집안일, 육아 덕에 달고 산 만성근육통이 심해진 것이려니 했다. ‘치료비도 시간도 없는데 아파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있었다. 이씨는 ‘허리디스크가 심하고, 깨진 골반 뼈가 오래 방치돼 굳었다’는 의사의 진단에 쓴웃음만 지었다.

이씨는 지방의 한 중소도시에서 2011년부터 요양보호사로 일했다. 병원에서 하루 8~15시간씩 주ㆍ야간으로 주말 없이 일한다. 지난달만 해도 한 달간 야간 근무 120시간을 포함해 총 240여 시간을 병원에서 보냈다. 하루 8시간씩 30일을 쉬지 않고 일해야 가능한 근무시간이다.

▲병실 및 화장실 청소 ▲환자들의 대소변 수발 및 목욕 ▲식사수발 ▲물리치료보조 등 온갖 허드렛일을 하지만 손에 쥐는 돈은 월 160만원 남짓. 수년째 최저임금 수준에 머무는 월급뿐이다.

월급이 적다 보니 몸이 아파도 쉬기 힘들다. 그는 “병가를 내면 급여가 줄어, 쉬는 날 틈틈이 물리치료를 받는다”며 “매일 환자를 업고 부축하는 일의 특성상 어차피 통증과 만성피로는 달고 산다”고 했다.

이혼 후 친정 부모, 딸(5)과 살고 있는 이씨의 네 가족 생활비는 식료품비, 관리비, 교통통신비, 양육비와 보험료 등 꼭 필요한 것만 해도 월 200만원 수준이다. 그런데 수입은 이씨의 월급과 일용직으로 일하는 친정 어머니의 급여 수십 만원이 전부다.

이씨는 “야간근무 때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해 아버지는 일을 포기한 상태”라며 “매달 30만~40만원은 꼭 저축하려고 마음먹지만, 병원비 등 큰돈 드는 사고라도 한번 나면 적금도 깨기 일쑤”라고 했다.

2012년 국가인권위원회 권고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요양보호사들에게 처우개선비로 10만원씩 지급하고 있지만, 처우개선비가 생긴만큼 병원이 기본급을 10만원 줄여 이씨의 월급 총액은 그대로였다.

특히 야간근무는 요양보호사들이 “전쟁을 치르듯 두렵다”고 입을 모을 정도로 업무 강도가 세지만, 근로계약서에는 3~6시간이 휴게 및 수면시간으로 정해져 수년간 수당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이씨는 “한 층 13~14개 병실의 치매어르신 30여명을 요양보호사 3~4명이 돌보는 야간근무는 극도의 중노동”이라며 “정해진 수면시간이 있지만 실제 잠을 잘 수 있는 경우는 드물다”고 했다.

몇 년 전에는 이씨가 한 환자를 돌보는 사이 다른 환자가 화장실에서 주저앉아 골절상을 입는 바람에 경위서를 써야 했다. 이씨는 “억울한 생각도 들었지만, 고령 환자에게 골절상을 입혔다는 죄책감에 당시 몸무게가 10㎏이나 줄었다”며 “밤새 환자들과 씨름하는 것 보다 제 값어치의 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 더욱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한다”고 말했다.

야간근무가 없는 날도 편히 쉴 수는 없다. 아침마다 바짓가랑이를 잡고 우는 딸을 떼어놓고 출근하고, 퇴근 후에는 자정까지 칭얼대는 아이를 돌보다 집안일을 해야 한다.

낮에만 근무하는 ‘방문 요양보호사’로도 일해봤지만 오래 버티지 못했다. 월 160시간 일하는 동안 월급이 100만원으로 크게 깎여 생활비조차 마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가사도우미나 하인 취급을 받았고, 남자 환자 혼자 있는 집에서는 성추행도 당했다”며 고개를 저였다.

저임금 노동자를 괴롭히는 것은 얄팍한 월급만이 아니다. 이들은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가사, 보육 등 가정을 돌볼 최소한의 시간도 부족하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지난해 3~5월 의료기관 종사자 1만8,26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주당 52시간 근로(주 5일 기준 하루 10.4시간 근무)한 비율이 19.6%에 달했다. 직장생활이 불만족스러운 가장 큰 이유 역시 노동시간(35.8점)이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2013년 3~12월 실시한 ‘소득과 시간 빈곤 계층을 위한 고용복지정책 수립 방안’ 연구에 따르면 한국 전체 노동인구의 42%(930만명)가 ‘시간빈곤’상태에 놓인 것으로 나타났다. 시간빈곤이란 주 168시간 중 근로시간이 가사, 보육 시간보다 많은 상태를 말한다.

권태희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은 “빈곤층 근로자들이 장시간 근로하면서도 낮은 임금을 받고 있는 점이 소득과 시간빈곤 현상의 근본적 원인”이라며 “근로와 보육 문제에 대한 현 수준의 지원으로는 이중 빈곤상태를 벗어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씨는 “일을 하며 한계에 부딪힐 때 마다 재취업이나 이직을 위한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지만 잠 잘 시간조차 부족한 상황에서는 헛된 희망일 뿐”이라며 “총체적으로 궁지에 몰린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글ㆍ사진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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