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계급사회의 그늘] (1) 심화하는 임금 양극화

상위 10%가 버는 돈 대부분이 임금

한국은 이미 '높은 불평등 상태'

외환위기 직전부터 소득 격차 커져

'임금 상승없는 성장' 현상 가속화

홈플러스 영등포점에서 수산물 가공 포장 업무를 담당하는 정미화(오른쪽)씨가 수산물 가격을 확인하고 있다. 민주노총 제공

입사 초기 2.5배 수준에서 7~8년 만에 8배 이상으로 벌어진 마트 점원 정미화씨와 회계사 박은우씨의 소득 격차는 향후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정씨 부부의 한달 수입은 180만원 가량. 정씨의 월급과 지방의 친척 농장에서 일하는 남편의 수입을 합한 것이다. 아파트 임대료와 관리비, 식비 등을 쓰고 부부가 매월 저축하는 비용은 주택청약금 2만원이 전부다.

정씨의 정년은 60세. 5년 후 은퇴를 대비해 노후준비를 해야 하지만, 현실은 남편이 운영하던 횟집을 3년 전 정리하면서 진 빚 2,000만원을 갚기도 빠듯하다. 정씨는 “한 달에 30만원씩 빚을 갚고 있는데, 다 갚으려면 2년 정도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30여년 간 맞벌이 생활을 해온 정씨 부부의 전 재산은 20평 남짓한 임대아파트 한 채뿐이다.

회계사 박은우씨는 3년 전 결혼해 갓 돌을 지난 아들 하나가 있다. 세 식구는 박씨 월급만으로 생활하는데, 월급의 3분의 1은 부동산에 투자하고 있다. 박씨 가족은 신혼집으로 마련했던 빌라(전세 1억5,000만원)에 살고 있지만 최근 2억원대 단독 주택 한 채와 1억원 대 오피스텔을 구입했다. 박씨는 “8년간 성과급을 포함해 매년 1,000만원 이상 연봉이 꾸준히 올랐다”며 “앞으로도 몇 년 간은 연봉이 더 오를 것으로 예상돼 주택 구입 때 받은 은행대출을 갚고 나면 한달에 300만원정도 저축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 고객(오른쪽)이 시중은행의 VIP라운지에서 자산운용 방법에 대해 상담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상위 10%의 임금 소득은 꾸준히 오른 반면 나머지 90%의 임금은 제자리걸음이었다. 고영권기자 youngkoh@hk.co.kr

● 한국은 ‘매우 높은 불평등 상태’

소득상위 10%의 소득비중을 기준으로 사회의 불평등 정도를 분류한 토마 피케티 파리정경대 교수에 따르면 한국은 이미 2000년 ‘높은 불평등 상태’에 진입했다. 피케티는 상위 10%가 벌어들이는 소득 비중이 전체 국민 소득의 20% 이상인 국가를 ‘낮은 불평등 상태’, 25%이상이면 ‘중간 정도의 불평등 상태’, 35%이상 이면 ‘높은 불평등’ 상태로 봤다. 45% 이상이면 ‘매우 높은 불평등’ 상태다.

김낙년 동국대 교수(낙성대경제연구소 소장)가 국세청 소득세 자료와 국민계정 등을 통합해 분석한 ‘한국의 개인소득분포’ 자료에 따르면 상위 10%의 소득이 전체 국민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995년 29.2%에서 지속적으로 올라 2000년 35.4%, 2012년 44.9%를 기록했다.

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의 소득 최상위 0.1% 계층의 경우 소득 중 자본소득(60.5%)이 임금소득(39.5%)보다 훨씬 많다. 자본소득을 구성하는 것은 사업 및 임대소득(36.8%), 이자(4.8%), 배당(18.8%) 등이다. 결국 최상위계층은 임금보다 재산에 의해 소득이 늘어난다는 의미다.

그런데 소득 상위 1%로 범위를 늘리면 2012년 기준 임금소득이 59.9%로 자본소득(40.1%)보다 많다. 상위 10%의 소득에선 임금소득이 82.6%로 자본소득을 압도한다. 금융소득의 경우 4,000만원 이상에만 과세돼 국세청 자료를 토대로 산출한 이 연구가 금융소득의 비중을 과소평가했다는 한계를 감안해도 상위 2~10%가 버는 돈의 대부분은 임금소득에서 비롯됐다는 뜻이다.

문제는 저소득 근로자들의 소득이 지난 10여년간 정체됐다는 사실이다. 김 교수가 가계조사와 소득세 자료를 결합해 추계한 논문 ‘한국의 소득불평등, 1963~2010’에 따르면 1996년부터 2010년까지 상위 20%인 임금 근로자의 연소득은 3,144만원에서 6,856만원으로 두 배 이상 올랐지만 하위 20%의 연소득은 420만원에서 492만원으로 17% 오르는 데 그쳤다.

김 교수는 “하위 20%의 연소득이 400만원대에 불과하다는 것은 이들이 일용직 등 열악한 일자리와 실업 상태를 오가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시간제일자리 같은 정책으로 고용률을 몇 퍼센트 더 올린다고 해서, 저소득층 소득 증가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고 지적했다.

국내 소득불평등의 대부분이 임금소득 격차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다른 연구에서도 나타난다. 홍민기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원이 국세청 원천 소득세 신고자료를 이용해 임금집중도를 분석한 ‘임금불평등의 장기 추세(1958~2010)’ 보고서에서도 국내 상위 10%의 임금 비중은 1995년 23.9%에서 2012년 34.8%로 커졌다.

● 세계화로 저임금 시장 임금 정체

전문가들은 임금소득 불평등의 이유로 세계화로 인한 기술변화, 오프쇼어링(일자리의 해외이전), 탈산업화, 노동력 구성의 변화 등을 꼽는다.

김낙년 교수는 “1992년 중국과의 교류가 시작되며 저가 제품의 수입이 급증해 미숙련 산업의 일자리가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국내 산업구조가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기술집약적 산업으로 고도화되는 1990년대 초반 중국 등 저임금 국가와의 교역이 확대됨에 따라 산업구조 재편 압박이 커졌고, 근로자간 임금격차도 커지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홍민기 연구원 역시 “(임금불평등이 시작된) 국면전환의 시점은 외환위기 이전인 1995년부터”라고 설명했다. 기술경쟁력을 갖춘 대기업은 중국과의 교역으로 시장이 확대돼 고성장을 누린 반면, 저숙련 업종ㆍ기업은 중국과의 경쟁에서 도태되거나 해외로 생산기지를 이전해 저임금 일자리가 줄고, 임금 수준도 정체됐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1985년 이전까지는 한국의 최상위 임금근로자와 하위 90%가 비슷한 속도로 평균소득이 상승했지만 1995년 이후엔 임금 상위 10% 그룹은 여전히 높은 임금상승률을 유지한 반면 하위 90% 그룹은 평균 임금이 정체하는 현상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저임금 문제는 기업의 생산성이나 매출이 늘어나도 정작 임금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진단도 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외환위기 이후 임금상승률과 생산성 증가율 간에 격차가 크게 벌어지기 시작했다”며 “특히 이명박 정부 때는 (기업의) 생산성이 증가해도 실질임금은 상승하지 않는 ‘임금상승 없는 성장’이라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국내 전체 산업의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은 1991년 14.5%를 정점으로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 12.5%로 하락했다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9.6%로 뚝 떨어졌다. 노무현 정부 때 10.9%로 조금 높아진 인건비 비중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11년 9.9%로 다시 떨어졌다. 제조업의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은 더욱 떨어져 1998년 외환위기 직후 9.8%까지 하락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3년 10.3%까지 올랐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외환위기 때보다 더 악화해 2011년 8.2%를 기록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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