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스피드업 규정의 시행 첫 날인 17일, 현장 관계자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각 팀 감독들은 타협점을 찾았다고 대체로 수긍한 반면 당사자인 선수들은 여전히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지난 16일 스피드업 관련 회의를 열고 ‘타석 이탈 시 스트라이크 선언’ 규정을 스트라이크 대신 벌금 20만원을 물게 하는 것으로 손질했다. 김경언(한화)과 이진영(LG) 등의 삼진 사례를 지켜 본 야구인들이 “투수가 공을 던지지도 않았는데 스트라이크를 선언하는 건 야구가 아니다. 경기 막판 중요한 순간일 경우 큰 논란이 될 수도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고, 결국 현장의 목소리를 수렴하기로 한 것이다. 미국 메이저리그처럼 야구의 본질을 침해하지 않는 벌금 부과로 대체했다. 메이저리그의 벌금은 500달러(약 57만원)이다. 스트라이크 선언이 적용된 16일까지 총 8차례 이 규정을 위반한 사례가 나왔으며 이 가운데 세 차례가 삼진으로 이어졌다.
양상문 LG 감독은 이날 수원 kt전을 앞두고 “벌금이 스트라이크보다는 훨씬 낫다”면서 “경기 진행이 지금보다는 빨라져야 하는 것은 맞지 않은가. 아직 불필요한 동작들이 많다”고 견해를 밝혔다. 김태형 두산 감독도 잠실 NC전에 앞서 “스트라이크를 주는 건 모든 감독들이 안 맞는다고 생각할 것”이라며 “벌금을 물리는 것은 미국에서도 하고 있다. 타자들이 습관처럼 나가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경문 NC 감독은 “감독자 회의를 해봐야겠지만 미국도 벌금을 주고 있지 않은가”라면서 “경기 시간은 줄면 좋다. 10~20분만 줄여도 큰 차이다. 아무리 좋은 경기를 해도 길면 팬들도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타석에 갇힌 선수들은 대부분 제재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 규정의 첫 날 희생양이었던 이진영은 “스피드업을 위해서는 다른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면서 “20만원은 연봉이 낮은 선수들에게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금액”이라고 말했다. 벌금을 감수하고라도 하던 대로 타석을 벗어나겠다고 하는 선수는 아직 없었다. 메이저리그 보스턴의 데이비드 오티스는 “벌금을 내더라도 타석을 벗어나겠다”고 강한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감독과 선수 중에서 다른 의견을 낸 이들도 있었다. 김기태 KIA 감독은 “스트라이크를 선언한다는 논란 때문에 불거진 것인데 벌금으로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도 있지 않겠나”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김용희 SK 감독은 “벌금은 당사자인 선수들의 입장을 듣는 것이 우선이다. 스피드업은 다른 부분으로도 충분히 보완할 수 있으니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선수들의 입장을 옹호했다. 반면 NC 이호준은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에서도 받아들일 것 같다. 이제 타석에서 발이 빠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고 했고, SK 박진만도 “벌금도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지만 결정된 부분은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0만원의 힘 때문일까. 수정 시행 첫 날인 이날 규정을 위반한 선수는 나오지 않았다. 스트라이크냐 벌금이냐, 찬성이냐 반대냐의 논란을 떠나 일단 그라운드 안에서는 모두들 스피드업 규정에 적응해가려는 모습이었다.
수원=성환희기자 hhs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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