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1770km 걷고 또 걸으니… 두 발 디딘 땅 위에 자유가 있었다
알림

1770km 걷고 또 걸으니… 두 발 디딘 땅 위에 자유가 있었다

입력
2015.01.23 18:09
0 0
영화 <와일드>
영화 <와일드>

세상에 걷는 것만큼 좋은 운동은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모든 세포는 두뇌 세포와 연결돼 있어서, 시청각 세포와 온 몸의 근육이 늘 움직이고 있어야 정신과 영혼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니까 건강한 정신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새로운 길을 걷고 또 걷는 것이다.

22일 개봉한 영화 ‘와일드’의 주인공도 피폐해진 영혼을 치유하기 위해 걷고 또 걷는다.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의 장 마크 발레 감독이 연출하고 ‘하이 피델리티’ ‘피버 피치’의 작가 닉 혼비가 시나리오를 쓴 이 영화의 주인공은 동명의 회고록을 쓴 원작자 셰릴 스트레이드다. 셰릴은 사랑했던 어머니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 절망에 빠져 삶을 내팽개쳤다. 인생을 포기한 사람처럼 마약 중독과 방탕한 섹스로 자신을 파괴했고 결국 아버지가 누군지도 확실치 않은 아이를 임신하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절망의 끝에서 그는 홀로 미국 서부를 종단하기로 결심한다. 1995년, 그의 나이 스물여섯이었다.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은 멕시코 국경에서 캐나다 국경까지 4,286㎞에 이르는 도보 코스다. 셰릴은 이 중 로스앤젤레스 북부 모하비 사막 서쪽 경계선에서 오레곤주와 워싱턴주의 경계에 있는 신들의다리까지 1,770㎞를 걸었다. 94일간 자신의 몸집보다 큰 배낭을 등에 지고 물 한 방울 없는 사막을 지나 해발 3,000m의 산을 넘었다. 육체적인 고통과 외로움, 자연과 인간의 위협, 낯선 이들과의 대화, 아름다운 세상과의 만남 등을 통해 셰릴은 그토록 자신을 괴롭히던 상처를 떨쳐낸다.

셰릴 역의 리즈 위더스푼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로 올려 놓은 ‘와일드’는 연기 외에도 인상적인 요소가 많은 작품이다. 그 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게 음악이다. 감독은 셰릴의 삶과 기억, 여정의 한 순간을 관객에게 전해야 할 때만 음악을 사용한다. 폴 매카트니, 샹그리라스, 레너드 코헨, 포티셰드, 스티비 레이 본, 홀리스, 팻 메시니 등의 음악이 곳곳에 스친다. 이 모든 곡을 압도하는 노래가 하나 있는데 영화의 시작과 끝 그리고 영화 곳곳에 쓰인 사이먼 앤 가펑클의 ‘엘 콘도르 파사’다.

☞ 사이먼 앤 가펑클의 ‘엘 콘도르 파사’

현재와 과거가 뒤죽박죽 뒤엉키며 나아가는 이 영화는 도입부부터 ‘엘 콘도르 파사’를 수시로 사용하면서도 셰릴의 과거 방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전까지 “아이드 래더 비 어~”로 시작하는 가창 부분을 들려주지 않는다. 남미 악기인 차랑고의 현을 트레몰로 기법으로 빠르게 튕기는 그 소리가 얼마나 불안하고 혼란스러운지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진 깨닫지 못했다. 셰릴의 영혼이 비바람 속에서 흔들리듯 불안하게 떨리는 10개의 현 사이로 흐르는 긴장감이 “아이드~”가 시작하기 직전 끊길 때의 그 느낌이란.

한국에선 ‘철새는 날아가고’라는 엉뚱한 제목으로 알려져 있지만 페루의 콘도르는 자유를 상징한다고 한다. 스페인의 지배로 오랫동안 핍박 받았던 페루인의 열망이 담긴 곡이라 할 수 있다. 폴 사이먼은 여기에 “달팽이보다는 참새” “못보다는 망치” 등 시적인 표현으로 자유 의지를 담았다. 페루의 작곡가 다니엘 알로미아 로블레스가 1913년 동명의 음악극을 위해 쓴 것이 원곡이다. 폴 사이먼은 1969년 남미 그룹 로스 잉카스의 연주로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 페루 민요로 잘못 알았다고 한다. 로스 잉카스가 완성한 편곡에 폴 사이먼의 가사와 아트 가펑클의 청아한 목소리가 더해진 ‘엘 콘도르 파사’는 1970년 발표돼 세계적인 명곡이 됐다.

영화 '와일드'
영화 '와일드'

영화에선 셰릴이 신들의다리에 도달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처음으로 곡 전체가 온전하게 울려 퍼진다. 콘도르로 변신한 음악이 자유를 되찾은 셰릴을 태우고 하늘 높이 날아가는 듯 관객 주위를 휘감는다. 이 노래는 영화가 끝난 뒤에도 관객을 좀처럼 놓아주지 않는다. 한동안 ‘엘 콘도르 파사’의 차랑고 소리와 마지막 가사가 귓가에 맴돈다. “거리보단 숲이 되고 싶어 / 그럴 수 있으면 꼭 그렇게 할 거야 / 두 발 아래 땅을 느끼고 싶어 / 그럴 수 있으면 꼭 그렇게 할 거야”

고경석기자 kave@hk.co.kr

☞ 영화 ‘와일드’ 영상 보기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