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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가 길 찾을 때까지 기다려라… 아프니까 부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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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가 길 찾을 때까지 기다려라… 아프니까 부모다

입력
2015.01.23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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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차고 '직업선택 십계' 통해

성적지상주의에 매몰된

교육환경에 대한 반성 담아

거창고 아이들의 직업을 찾는 위대한 질문 강현정ㆍ전성은 지음 메디치미디어 발행ㆍ228쪽ㆍ1만2,800원
거창고 아이들의 직업을 찾는 위대한 질문 강현정ㆍ전성은 지음 메디치미디어 발행ㆍ228쪽ㆍ1만2,800원

“어쨌든 나는 세상 모든 곳에서 누군가의 걸림돌이었다.” 대형 마트 직원들의 노동운동을 다룬 최규석의 만화 ‘송곳’의 주인공 이수인 과장의 독백이다. 그는 자신의 양심에 반하는 일을 보고 넘기지 못하는 강직함을 지녔다. 이 강직함으로 자신이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길을 꿋꿋이 걸어간다. 매장 직원들을 해고하라는 점장의 지시에 맞서 노조에 가입하고 직원들을 설득해 노동운동을 이어가려 애쓴다.

김인규(11기) 목사의 “거창고 졸업생들은 소심하지만 강한 사람”이라는 표현에서 어쩐지 이수인 과장을 떠올리게 된다. 실제 책 속에 등장하는 거창고 졸업생들은 대단한 성공을 거둔 이들이 아니라 평범하지만 자신의 신념을 묵묵히 실천하는 이들이다. 거창고는 대도시와 동떨어진 지역에 있음에도 성적이 높은 ‘지역 명문고’로 알려져 있지만 이 학교에서 중요한 것은 성적이 아니라 학생이 스스로 원하는 길을 찾는 것이다.

거창고의 교육 방식을 드러내는 ‘직업선택의 십계’를 한 줄로 요약하면 “남들이 추구하는 성공의 길과 반대로 가라”다. 원치 않는 힘든 길을 억지로 가라는 말이 아니다. 사회ㆍ경제적 성공에 도취해 자신이 진정 원하는 행복을 놓치지 말라는 뜻이다. 물론 졸업생들이 모두 이 원칙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졸업생 장부옥(47기)씨는 직업십계명을 ‘브레이크’라 표현한다. 반드시 지키지는 못하더라도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는 원칙, 세상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라는 충고는 거창고 졸업생들의 ‘걸림돌’ 같은 행동으로 이어진다.

‘직업선택의 십계’는 김난도 교수의 수필집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통해 유명해졌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청년에게 내일의 성공을 위해 오늘을 인내하라는 위로를 던져 베스트셀러가 됐지만 사회 구조적 문제를 외면했다고 비판 받았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학생을 위한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부모를 위한 교육지침서다. 청소년기 자녀를 키우고 있는 저자 강현정씨는 ‘직업십계명’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성적지상주의에 매달렸던 자신의 어두운 모습을 발견하고 내면의 갈등을 겪었다. 그는 책을 마무리할 때까지도 직업십계명을 완전히 실천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자녀와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수 있게 됐다.

전성은 전 거창고 교장이 2011년 서울 강연에서 “아이들은 줄 세우기의 대상이 아니라 각자의 재능과 소질, 관심을 최대화시켜야 할 대상”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전성은 전 거창고 교장이 2011년 서울 강연에서 “아이들은 줄 세우기의 대상이 아니라 각자의 재능과 소질, 관심을 최대화시켜야 할 대상”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저자에 따르면 이상적인 부모는 자녀가 스스로 깨달아 바람직한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묵묵히 기다리는 존재다. 물론 실천하기는 어렵다. 저자조차 때때로 딸의 삶에 개입하고 딸을 원망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자녀의 행복을 바란다면 어쩔 수 없이 아파할 수밖에 없는 것이 부모다. 이 책은 왜 그래야 하는지를 진정한 행복을 찾아 살아가는 거창고 졸업생들의 모습을 통해 보여준다.

물론 이 책을 보고도 진정한 행복은 돈과 지위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사람이 원하는 삶의 모습은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년들이 모든 꿈과 기대를 잃어버리고 “무엇을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이 시대에 정말 필요한 교육은 아이들이 삶의 목표를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기다리고 인내하는 자세다.

인현우기자 inhy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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