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필리핀인이 이고 가는 짐은 인근 식당과 슈퍼마켓들이 내다버린 쓰레기다. 비닐봉지나 나무 젓가락이 있고, 남은 밥도 있고, 닭뼈도 있고, 유통기한 지난 통조림이나 빵이 들었을 수도 있다.
이고 간다고 했지만 온몸에 싣고 온몸으로 끌고 간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또 ‘쓰레기’라고 했지만, 그에게는 식량이다. 그는 저 포대에서 먹을 만한 것들을 골라 그대로 먹거나 끓여 먹고, 닭뼈는 기름에 튀겨 국물을 내기도 한다. 소포장해서 팔기도 한다고 한다. 저 과정이 필리핀어로 ‘팍팍(pagpag)’이다. 저렇게 만들어진 음식을 그리 부르기도 한다. 저 말은 원래 ‘shake off(따돌리다, 뿌리치다)’란 뜻이라고 한다.
팍팍은 미국 영국 등 시민들의 ‘프리건(free+vegan)’운동과 형식은 흡사하지만 본질은 다르다. 프리거니스트가 그 삶을 능동적으로 선택해 의미와 가치를 확산하려는 이들이라면, 팍팍은 ‘따돌려’지고 ‘뿌리쳐’진 이들에게 남겨진 마지막 삶의 형식이다.
교황의 필리핀 방문을 앞둔 13일 한 외신기자가 저 사진을 찍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해달라는 의미일까. 하지만 필요한 건 기도가(만은) 아닐 것이다.
최윤필기자 proose@hk.co.kr 마닐라=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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