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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부끄러운 반성의 역사', 그마저도 없는 2015년

입력
2015.01.02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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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을 무시하고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부정하는 세력과 그 행태에 대해서는 한치의 빈틈없이 검찰권이 행사돼야 하겠습니다. (중략) 어떠한 주장이든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게 하고 그 옳고 그름도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가릴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을미년 새해를 여는 김진태(사진) 검찰총장의 신년사입니다.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 따른 후속 작업으로, 이른바 '종북 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와 집시법 위반자들에 대한 무관용 원칙을 천명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공안 정국의 분위기마저 엿보입니다. 김진태 총장의 신년사는 과거 다른 총장들의 신년사와 한가지 달라진 게 있습니다. 지난 한 해 검찰이 걸어온 길에 대한 반성이나 해명이 없다는 점입니다.

검찰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부침이 심한 조직 중 하나입니다. 검찰총장 임기제가 실시된 1988년 이후 현재까지 19명의 검찰총장 가운데 12명이 임기(2년)를 채우지 못하고 사퇴했습니다. 법무부 장관으로 발탁된 2명을 제외하면 10명이 검찰 안팎의 논란이나 정치적 갈등으로 물러났습니다. 재직 중 한차례 발표할까 말까 한 검찰총장의 신년사는 그래서 우회적으로나마 지난 임기와 앞길을 제시하는 메시지였습니다. 그러나 총장들의 신년사를 뒤집어 보면 검찰의 부끄러운 역사가 드러납니다.

최근 10년의 신년사 가운데 가장 반성이 많았던 이는 한상대 전 총장의 뒤를 이은 김진태 총장 직무대리였습니다. 현 총장이기도 한 김 총장은 2013년 당시 신년사를 "검찰이 처한 상황이 너무나 위중하기에 무거운 말씀부터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로 시작합니다. 이어 "지난해 검찰은 전대미문의 사태들로 인해 국민으로부터 그 어느 때보다 무서운 질책을 받았고, 저를 포함한 검찰구성원들은 그 동안 생명과 같이 여겨왔던 자존과 명예에 지우기 힘든 상처를 입었습니다. 더욱 뼈아픈 것은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훼손되어 웬만한 노력으로는 그것을 되찾기 어렵게 되었다는 것입니다"라고 덧붙입니다.

2012년에는 '벤츠 검사' '떡값 검사' '성추문 검사' 등등의 모욕적 유행어가 넘쳐났습니다. 고소 사건에 대해 자신의 동기 검사에게 청탁을 하고 대가로 고급 외제승용차와 명품백을 받는 가하면, '다단계 사기왕' 조희팔 등에게 약 10억원에 달하는 뇌물을 수수하고, 검사실과 모텔에서 여성 피의자와 성관계를 가진 이까지 모두 당시 현직 검사였습니다. 하지만 한상대 총장이 옷을 벗은 결정적 계기는 부하 검사들의 난(亂)이었습니다. 연이은 검사 스캔들로 책임론이 비등해질 무렵 한 총장이 대검 중수부 폐지에 반대하던 당시 최재경 중수부장에게 감찰을 지시하자 반발한 검찰 간부들이 직을 걸고 총장의 퇴진을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불명예 퇴진하기 전 한상대 총장은 2012년 신년사에서 "민주 발전과 한반도 평화 등 국운을 가를 계기가 될 새해를 맞이하면서 (중략) 다가오는 4월의 국회의원 선거와 12월의 대통령 선거가 역사상 가장 깨끗하고 공정한 선거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여야 하겠습니다"라고 밝힙니다. "선거 분위기와 최근 북한 정세 급변에 편승한 종북세력의 발호 및 각종 불법집단행동에 대해서도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처해 주기 바랍니다"라고도 강조합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 해 연말에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사건이 터졌습니다. 이후 검찰 수사에 따르면 국정원 대북심리전단 요원들은 종북세력들의 사이버상 선전선동 분쇄를 명분으로 일반인으로 가장해 수백만 건의 인터넷 게시판 글과 트윗을 남겼습니다.

신년사 많은 부분을 '부질없는 해명'에 사용한 이도 있습니다. 임채진 총장은 2009년 신년사에서 "검찰은 인권 존중과 정의 실현이라는 본연의 사명에 충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강한 검찰'보다는 '바른 검찰', '원칙과 정도'를 지키고 '절제와 품격'을 갖춘 검찰을 지향했습니다.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고, 준사법기관의 역할과 기능을 다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옳고 바른 결정을 위해 매 순간순간마다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습니다"라고 합니다. 당시 검찰은 이른바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해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 일가에 대한 전방위 수사를 펼치고 있었습니다. 검찰이 미처 입증되지도 않은 혐의 내용을 밝히고 대다수 언론이 대서특필하던 시기였습니다. 임채진 총장의 이 같은 '해명'은 그 해 5월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진정성을 의심받게 됐습니다.

신년사에서 거듭 강조한 검찰 주요 행사가 열린 시점에 사임을 결심하게 된 얄궂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김준규 검찰총장은 2011년 신년사에서 "6월 세계 각국의 검찰총장들이 서울에 모입니다. 이번 UN 세계 검찰총장회의를 계기로 대한민국 검찰이 범죄에 대한 국제적 공조의 중심에 서고, 세계 검찰의 미래를 주도하게 되리라 기대합니다"라고 밝힙니다.

공교롭게도 그 해 6월 2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오랜 난제였던 검ㆍ경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 검찰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정부 합의안을 수정해 의결했습니다. 이 일로 당시 대검 기획조정부장 및 중부부장 등 검사장급 간부들이 잇따라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김준규 총장은 6월 29일 주요 사업으로 꼽은 국제검사협회(IAP) 연례총회 폐막식과 유엔 세계검찰총장회의 환영 리셉션을 마친 후 행사장이었던 서울 삼성동 인터컨티넨탈 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간부들과 퇴임 등 사태 수습 방안을 긴박하게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직 김진태 총장은 한상대 총장의 직무대행 기간까지 3번이나 신년사를 남긴 총장입니다. 혼외자 논란으로 취임 6개월이 채 못돼서 검찰을 떠났던 전임 채동욱 총장(2013년 4월 4일~9월 30일)은 단 한번의 신년사도 남기지 못했습니다.

김진태 총장의 2014년 신년사 중 일부입니다. "지난 한 해 검찰에는 자랑스러운 일도 많았지만, 그러한 성과를 무색케 할 만큼 커다란 심려를 끼쳐드리기도 하였습니다. 올해만큼은 검찰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결연한 각오 아래 업무와 처신, 모든 면에서 한 치의 어긋남이 없이 본분을 다합시다. 부끄러웠던 과거와는 깨끗이 절연하고, 검찰인의 자존과 명예를 회복하여 움츠러들었던 어깨를 활짝 펴는 한 해를 만들어 갑시다." 구체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 과정에서 발생한 수사외압 논란과 담당 수사팀장의 항명 및 전보 조치, 이를 지휘한 채동욱 전 총장의 혼외자 파동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밖에 수사방식과 관련해 '사건 관계인 누구나 승복하는 공정하고 품격있는 수사'를 강조했고, ‘인권보호와 사회적 약자 배려’도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2014년 국정원이 조작한 문서를 검찰이 법원에 증거로 제출한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으로 김진태 총장이 언급한 '공정하고 품격있는 수사'는 민낯을 드러냈습니다. 담당 검사들은 형사처벌 없이 내부징계만 받았고, 연루된 국정원 직원들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는 적용되지 않아 비교적 가벼운 형량을 선고 받았습니다. 김진태 총장의 단골 멘트였던 '메스로 환부를 도려내듯 하는 외과수술식 수사’ 역시 유병언 일가 및 측근에 대한 광범위한 압수수색, 체포, 구속 등으로 무색해졌습니다. 대검찰청의 사이버 명예훼손 엄중 처벌 방침으로 불거진 카카오톡 검열 논란에서 검찰을 '인권옹호기관'으로 인식했던 국민은 몇이나 될까요.

김진태 총장의 2015년 신년사에는 어떤 반성도, 우회적인 해명도 없습니다. 불명예 퇴진을 한 전직 총장들과 달리 자신이 지휘한 검찰의 2014년은 달랐다는 평가일까요. 아니면 2013년 직무대행 시절 밝혔던 것처럼 '웬만한 노력으로는 국민의 신뢰를 되찾기 어렵다'는 깨달음 때문일까요. 그래서 역대 총장들이 연초마다 국민의 신뢰회복을 외치며 반복했던 반성의 몇 마디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이겠다는 의지일까요. 2015년은 후자였으면 좋겠습니다.

사회부 법조팀 조원일기자 callme1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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