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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말말말] "가만 있으라" 세월호 선내 방송에 온 국민이 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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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말말말] "가만 있으라" 세월호 선내 방송에 온 국민이 분개

입력
2014.12.25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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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앞에 중립 없어…" 교황의 리본 빛났다

"우린 아직 다 미생…" 乙의 눈물 짠했다.

"규제는 암덩어리" "통일 대박" 쏟아낸 박 대통령

"만만회" "찌라시" 씁쓰름했던 권력암투설

"정치 관여했으나 선거 개입 안 해" 황당 발언

"숨을 못 쉬겠다" 美의 인종차별 민낯 낱낱이

올해도 수많은 말들이 우리를 울리고 웃겼다.세월호 침몰 당시 “가만히 있으라””움직이면 더 위험하다”라는 선내 방송은 온 국민을 분노하게 했고,반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인간적 고통 앞에서 중립적이 될 수 없었다”며 노란 리본을 방한 내내 달았던 뒷얘기를 들려줘 감동을 주었다.

●정치

박근혜 대통령은 1월 6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라는 말로 새해를 의욕적으로 열었다. “쓸데 없는 규제는 우리가 쳐부술 원수이자 제거해야 할 암 덩어리”(3월 10일 수석비서관 회의)라며 규제 개혁에도 전력을 쏟을 기세였다.

하지만 ‘통일 대박론’이나 ‘규제 개혁’ 등 박 대통령이 역점을 뒀던 국정 구상은 세월호 사고로 한 순간에 뒷전으로 밀렸다. 박 대통령은 5월 19일 대국민담화에서 “고심 끝에 해경을 해체하기로 결론을 내렸다”며 초강수의 수습책을 내고 “우리사회 비정상적인 적폐를 바로잡겠다”(현충일 추념사)며 적폐 척결을 내세웠지만, 정부의 초기 부실 대응을 둘러싼 논란은 그치지 않았다. 특히 안대희 총리 후보자에 이어 문창극 총리 후보자도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고 남한테 신세지고 이게 우리 민족 DNA로 남아 있었던 것” 등 과거 민족비하성 발언이 알려지면서 낙마해 세월호 수습 인사도 난맥상을 드러냈다.

하지만 7ㆍ30 재보궐 선거에서 “호남 지역에 ‘예산 폭탄’을 퍼붓겠다”고 공약한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야당 텃밭에서 당선되는 기염을 토하는 등 여당이 11대 4의 압승을 거뒀다. 이 여파로 손학규 새정치연합 상임고문은 “저녁이 있는 삶을 돌려 드리지 못해 송구스럽다”며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청와대의 잇단 인사 실패와 관련 “청와대 비선라인인 ‘만만회’(박지만ㆍ이재만ㆍ정윤회)에서 했다는 말이 있다” (박지원 새정치연합 의원)며 야권의 공세가 산발적으로 제기되다, 연말 ‘정윤회 문건’이 공개되면서 문고리 권력과 박지만 EG회장 측간의 권력암투설이 본격화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실세는 청와대 진돗개”라며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을 일축하면서 “찌리시에나 나오는 얘기들에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은 대한민국이 부끄러운 일”이라며 선을 그었다. 여권 내에선 유승민 의원이 10월 국정감사에서 “이거 누가 합니까, 청와대 얼라들이 하는 겁니까”라며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을 겨냥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동현기자 nani@hk.co.kr

●사회

“가만히 있으라.” 이 말을 따르면 안전할 줄 알았다. 그러나 “움직이면 더 위험하다”는 선내 안내방송을 따르지 않은 이들만 목숨을 건졌다. 4월 16일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의 총체적 부실을 적나라하게 알렸다. 스스로 뛰쳐나온 172명 외 단 한 명도 구해내지 못한 정부는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들에게도 “가만히 있으라”고 몰아갔다.

세월호 참사는 언론 참사이기도 했다. 침몰하는 세월호의 모습을 비춘 생방송 도중 “승객 전원구조” 소식을 전했으나, 오래지 않아 거짓으로 드러났다. 기자는 ‘기레기’가 됐다.

‘단장지애(斷腸之哀)’의 고통에 잠긴 유가족들에게 비수가 되는 말들은 이어졌다. 울부짖는 유족들을 비하하며 “국민이 미개하니까 국가도 미개한 게 아니냐”(정몽준 새누리당 의원 막내아들)라고 했고, “우리(새누리당)의 기본 입장은 세월호 참사는 교통사고”(주호영 새누리당 정책위의장)라는 엉뚱한 진단을 했다.

사법부의 판결은 숱한 논란을 불렀다. 이범균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는 9월 11일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해 “정치에 관여했으나 선거는 개입하지 않았다”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무죄를 선고했다. 김동진 수원지법 부장판사는 ‘지록위마의 판결’이라며 “법치주의는 죽었다”고 비판했다가 정직 2개월 징계를 받았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 특별수사팀장을 맡은 윤갑근 검사장은 “북에 간 것으로 판단하고 위조했으니 날조는 아니다”는 황당 발언으로 “검찰이 날조죄 정의를 날조했다”는 비판을 자초했다.

팍팍한 삶을 가슴아프게 드러낸 말들도 있었다. 쌍용차 정리해고자 고동민씨는 11월 13일 대법원 패소 판결 후 “아빠가 이겼다고 말하고 싶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집세와 공과금으로 70만원을 놔두고 목숨을 끊은 송파 세모녀가 남긴 메모는 “정말 죄송합니다"였다.

박근혜정부 비선실세로 지목된 정윤회씨는 검찰에 출두하면서 “이런 엄청난 불장난을 누가 했는지 또 불장난에 춤춘 사람들이 누군지 다 밝혀지리라 생각한다”고 말했으나 다 밝혀지리라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의문이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경제.산업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팀의 수장답게 단연코 올 한 해 경제계 말말말의 주연이었다. “한여름 옷을 한겨울에 입고 있는 격이다.” 그는 부총리 내정 직후인 6월 중순 기자들과 만나 당시 부동산 규제에 대해 이런 비유를 내놓았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부동산 대출규제 완화의 신호탄이었다. 취임 직후 첫 경제장관회의에서 “새 경제팀은 아마도 ‘지도에 없는 길’을 걸어가야만 할지도 모른다”던 발언도 화제의 중심이었다. 국정감사에서 야당 의원들은 “지도에 없는 길을 가겠다더니 정말 길을 잃어 버렸다”는 비아냥을 쏟아내기도 했다. 최 부총리는 9월엔 호주 케언즈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에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를 만나 통화정책 협조를 요청했느냐’는 질문에 “척하면 척”이라고 답했다. 이 총재는 “글쎄요, 한번 봅시다”는 애매모호한 응수를 했고, 결국 다음 달 추가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KB금융 사태의 중심에 섰던 임영록 전 KB금융 회장은 금융당국의 제재 결정 후 이건호 전 국민은행장이 즉각 사퇴하자 “(이 전 행장이) 조직을 흔들고 떠났다”고 말했다. 버티던 그도 결국 자리에서 물러났고, 검찰 수사까지 받는 신세가 됐다.

세월호 참사의 현장을 지킨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의 입은 무거웠다. 참사 6개월이 지난 10월 중순 그는 본보 인터뷰에서 “세월호 언급이 아직 조심스럽다. 그게 유족에 대한 도리다”고 말했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 마지막 회의가 열린 11월 18일, 그는 “순간순간 거의 무능함에 절망감이 들기도 했다”고 짧게 고백했다.

‘땅콩 리턴’ 사건과 관련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조현아의 아비로서 저를 나무라 주십시오. 저의 잘못입니다”(12월 12일)고 사과한 다음 날 박창진 사무장이 “나는 개가 아니라 사람이다”고 말해 여론이 들썩이기도 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15일 모스크바 주립대 도서관에서 열린 러시아 지리학회 이사회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15일 모스크바 주립대 도서관에서 열린 러시아 지리학회 이사회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국제

상반기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합병하며 러시아의 야심을 드러냈다가 서방의 경제 제재와 유가 하락으로 곤경에 처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최근 “과거 히틀러도 러시아를 무너뜨리지 못했다”는 말로 깊은 인상을 심었다. 강골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새삼 보여줬다는 평이 따른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거침없는 발언도 화제였다. 시 주석은 지난 3월 프랑스를 방문해 “중국이라는 사자는 이미 깨어났다. 이 사자는 평화적이고 온화하고 문명적이다”고 말해 강대국 중국의 자신감을 나타냈다.

미국사회를 두 동강낸 백인경찰에 의한 비무장 흑인 사망 사건은 가슴 아픈 말들을 유행시켰다. 지난 7월 뉴욕 경찰의 목 조르기에 숨진 흑인 에릭 가너가 마지막 남긴 “숨을 못 쉬겠다”는 말은 인종차별 반대 시위의 구호로 활용됐다. “손들었다, 쏘지 마라”도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만들어낸 구호였다.

애플 최고경영자인 팀 쿡이 깜짝 커밍아웃하며 밝힌 말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분명하게 말하자면 난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우며 이는 신이 내게 준 선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라고 그는 밝혔다.

9월 스코틀랜드 독립 투표 때문에 궁지에 몰렸던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도 간절한 심경이 담긴 말로 올해를 장식했다. 그는 “보수당은 미워도 영국은 지켜달라”며 유권자들에게 스코틀랜드 독립 반대 투표 행사를 호소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문화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 방문을 마치고 8월 19일 바티칸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한국에서 리본을 단 지 반나절쯤 지났을 때 어떤 이가 중립을 위해 떼는 게 낫겠다고 했지만 나는 인간적 고통 앞에서 중립적이 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앞서 8월 15일 세월호 유족에게서 노란 리본을 선물 받아 가슴에 다는 등 방한 기간 내내 유족들을 위로했다. 염수정 추기경은 8월 26일 기자간담회에서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이용해서는 안된다”며 “세월호 참사 유가족도 어느 선에서는 양보를 해야 한다”고 말해 교황과 다른 태도를 보였다.

관람객 1760만명으로 한국 영화 사상 최고 흥행작이 된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은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있사옵니다”고 했다. 이 영화를 계기로 난국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고조됐다.

케이블채널 tvN의 드라마 ‘미생’에서 사원증을 목에 건 주인공 장그래에게 오상식 과장은 “우린 아직 다 미생”이라고 말했다. 완생(完生)이 되지 못한 미생(未生)의 처지를 돌아보게 하는 이 말은 직장 혹은 사회의 차별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며 반향을 일으켰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스포츠

“결과에 만족하지 않으면 어찌 하겠는가.”팬들은 분노했지만 김연아는 웃었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 여자싱글에서 석연찮은 은메달을 걸고 마지막 무대를 마친 피겨여왕은 “내가 말한다고 바뀌는 것은 없다”고 했다..

‘산소 탱크’박지성은 5월14일 현역 유니폼을 벗으며 “내가 경기장에 있었을 때 많은 분들이 믿음 가는 선수라는 느낌을 받았다면 나는 정말 좋은 선수였고, 원하는 선수 생활을 한 것이다”고 했다. 박지성과 함께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쓴 이영표 KBS 해설위원은 6월27일 브라질 월드컵 H조 3차전 벨기에전을 마친 뒤 “월드컵은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다. 증명하는 자리다. 우리는 결국 증명하지 못했다”는 비판으로 주목 받았다.

프로야구에서는 ‘야신’ 김성근 감독이 현장으로 돌아왔다. 김 감독은 만년 꼴찌 한화의 지휘봉을 잡은 10월28일 “이제 주전과 후보는 없다. 서른 두 살 김태균을 이십대로 돌려놓아야 할 것 같다”며 “앞으로 김태균이 반쯤 죽을 것”이라고 강훈련을 예고했다.

박태환은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은 목에 걸지 못했지만 역대 아시안게임 최다 메달(20개)을 수집했다. 그는 10월15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처음보다 끝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싶다. 국민이 웃어주고 환호해 주고 큰 박수를 쳐줄 때 물러나겠다”며 2016년 리우 올림픽 출전을 공식 선언했다.

함태수기자 hts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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