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하계2파출소 소속 박종규 경위
"초등학생 아들이 가출 밥 먹듯 해요" 시각장애인 엄마 전화에 선도나서
일과쓰기 등 관심 갖자 행동 바뀌어 연락 끊겼다 軍휴가 맞아 '감격 재회'

5일 오후 서울 도봉구 도봉1파출소에 한 청년이 찾아왔다. 청년은 파출소 안을 두리번거리다 근무 중이던 박종규(56) 경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느닷없이 박 경위를 끌어 안았다. 어리둥절해 하던 박 경위는 청년의 얼굴을 찬찬히 살피더니 10년 전 자신이 보살펴주던 문제아 유기윤(19ㆍ가명)군이라는 걸 깨달았다. 키 작고 통통하던 초등학생은 그 사이 건장한 성인이 돼 있었다. “아저씨, 건강하셨죠? 짜장면 사드린다는 약속 지키러 왔습니다.”
박 경위와 유군의 인연은 2004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노원구 하계2파출소에 근무하던 박 경위는 한 중년 여성의 상담전화를 받았다. 이혼하고 아들 하나 키우며 사는 1급 시각장애인이라고 소개한 여성은 아들에 대한 하소연을 털어놨다.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이 손버릇이 안 좋은 데다 가출을 밥 먹듯 하고 반항이 심해 감당이 안 돼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평소 청소년 선도에 관심이 많던 박 경위는 유군을 만나기로 결심하고 모자가 사는 하계동의 한 임대아파트를 찾았다. 유군은 그날도 저녁 늦도록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박 경위는 온 동네를 이 잡듯 뒤져 놀이터 구석에서 중학생들과 어울리고 있는 유군을 발견했다. 집에 데려가려는 박 경위에게 유군이 던진 첫마디는, 예상치 못한 것은 아니지만, 당돌했다. “아저씨가 뭔데요?”
유군을 돌보기로 마음 먹은 박 경위는 자신에게 도통 말을 하지 않는 유군에게 하루 일과를 적어내라는 숙제를 냈다. 처음 유군이 써낸 일과는 ‘일어났다’ ‘학교에 갔다’ ‘집에 왔다’가 전부였다. 박 경위는 유군의 마음을 여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근무가 없는 날이면 유군과 외식을 했고, 어린이날에는 책과 옷 등을 선물했다. 시각장애인인 어머니를 돌봐드리려면 바르고 훌륭한 사람이 돼야 한다는 설득도 잊지 않았다.
5개월쯤 지나자 유군의 숙제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단답형 문장이 긴 일기가 됐다. 자신이 잘못한 일을 적고 옆에 물음표를 그려 넣었다.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반성의 의미였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나자 일기장엔 나쁜 행동이 적히지 않았다. 박 경위는 숙제를 그만해도 좋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유군 어머니는 아들의 태도가 완전히 달려졌다며 박 경위에게 몇 번이고 고맙다고 했다.
두 사람은 유군이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연락이 끊겼다. 유군 어머니가 침술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경기 군포에 사는 외할머니에게 유군을 맡겼기 때문이다. 유군은 떠나는 날 박 경위에게 나중에 잘 커서 꼭 짜장면을 사겠다고 약속했다.
유군은 현재 강원 화천에 있는 군부대에서 복무하고 있다. 그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첫 휴가를 나오자마자 박 경위를 찾은 것이다. 유군의 어머니는 얼마 전 “상담할 게 있다”며 10년 전 받은 박 경위의 휴대폰 번호로 연락해 근무처를 물었다. 물론 박 경위를 놀라게 해주려고 일부러 아들이 찾아갈 것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박 경위는 “근무 중이라 같이 짜장면을 먹을 수는 없지만 다음 휴가 때 더 맛있는 음식을 사주겠다”며 유군의 손을 꼭 잡았다.
박 경위는 자신을 잊지 않고 찾아준 유군의 행동에 말할 수 없이 큰 감동을 받았다고 전했다. “기윤이가 아주 듬직하게 잘 자라줘 고마울 따름이죠. 제대 후 청소년 상담사가 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더 뿌듯했습니다.”
한형직기자 hj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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