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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들겨 맞지 않아도 피의자는 허위 자백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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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들겨 맞지 않아도 피의자는 허위 자백을 한다

입력
2014.12.12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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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레오 지음ㆍ조용환 옮김

후마니타스ㆍ588쪽ㆍ2만9,000원

형사법 권위자 리처드 레오 교수

美 피의자 신문 과정의 문제점 지적

최근 검찰이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변호사 7명을 징계해달라고 대한변호사협회에 요구했다. 변호사로서 ‘품위 손상’이 이유다. 하지만 실제로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이 직접적인 계기라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탈북자 출신의 피의자가 무죄로 풀려난 데 따른 보복 성격이 짙다는 것이다. 검찰은 “민변 변호사들이 피의자에게 진술 거부나 묵비권 행사를 강요함으로써 진실 의무를 어겼다”고 주장하지만, 묵비권은 헌법이 보장한 권리이므로 이를 ‘강요’했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검찰과 민변 사이 오랜 갈등의 연장선에서 불거진 이번 소동은 자백의 증거 능력을 의심케 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흔히 ‘자백만큼 명확한 증거는 없다’ ‘두들겨 맞지도 않았는데 허위 자백을 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음을 이 책 ‘허위 자백과 오판’은 분명하고 강력하게 보여준다. 허위 자백은 고문이나 폭력이 없어도 얼마든지 나오고, 경찰의 피의자 신문과 형사사법의 구조가 이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형사법의 세계적 권위자인 리처드 A.레오 샌프란시스코대 교수가 썼다. 미국에서 벌어지는 경찰 피의자 신문의 현실과 문제점을 파헤치고 제도적 개혁안을 제시했다. 원서 제목은 ‘경찰 수사와 미국의 정의(Police Interrogation and American justice)’다.

허위 자백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는 피의자 신문 과정 자체에 있다. 경찰은 피의자가 유죄라는 편견을 가지고 신문을 시작하기 때문에 심리 조종이나 속임수, 억압적인 방법을 써서라도 자백을 받아내려 한다. 그로 인한 허위 자백은 검사의 기소와 법원 판결에 그릇된 영향을 끼쳐 무고한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 뿐 아니라 형사사법 제도의 근간을 위태롭게 한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거짓말탐지기 등을 동원한 ‘과학적’ 방법이란 것도 실은 과학적 근거가 거의 없으며, 오히려 피의자의 심리를 조종하고 억압해 자백을 받아내는 기술로 쓰이고 있다고 비판한다.

11월 5일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 앞에서 열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긴급 기자회견. 검찰은 간첩 혐의를 받은 피의자들에게 묵비권 행사를 강요했다는 이유로 민변 소속 변호사 7명의 징계를 대한변호사협회에 요구했다. 민변 홈페이지
11월 5일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 앞에서 열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긴급 기자회견. 검찰은 간첩 혐의를 받은 피의자들에게 묵비권 행사를 강요했다는 이유로 민변 소속 변호사 7명의 징계를 대한변호사협회에 요구했다. 민변 홈페이지

저자의 목표는 피의자 신문이 민주사회에서 꼭 필요하고 공익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도록 개혁하는 것이다. 출발점은 피의자 신문의 성격을 바꾸는 것이다. 자백이 아니라 범죄에 관한 객관적 정보와 증거 수집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몇 가지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는데, 가장 강조하는 것은 피의자 신문의 모든 과정을 녹화하는 것이다. 녹화를 해야 자백이 어떤 과정으로 나왔고 믿을 만한지 허위인지 검증할 수 있다.

이 책은 미국의 제도와 사례를 갖고 쓴 것이지만 한국 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고문과 폭력으로 자백을 강요한 ‘3급 수사’를 하다가 이른바 전문화와 과학화를 앞세워 ‘심리적 수사’로 바뀌어 온 미국 경찰의 역사가 한국의 그것과 겹치기도 하지만, 가장 강력하게 다가오는 지점은 한국 경찰의 피의자 신문 과정이 미국의 경우보다 더 문제가 많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왜 그런지는 번역자인 조용환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가 옮긴이 후기에서 잘 정리했다. 경찰이 수사하고 검찰이 기소하는 미국과 달리 한국은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한 채 경찰을 직접 지휘 감독하기 때문에 경찰이 저지른 오류를 제대로 검증하고 견제할 가능성이 적다. 수사기관이 피의자를 구속할 수 있는 기간이 30일로 너무 길기 때문에 변호인의 도움을 충분히 받을 수 없는 피의자는 매우 취약한 상황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저자가 소개한 미국의 허위 자백 사례를 보면 취약한 상황에 놓인 피의자들은 불과 몇 시간 내지 이틀 만에 허위 자백을 했다. 물리적 폭력을 당하지 않아도 허위 자백을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낮고 학계의 연구도 거의 없다. 피의자 신문이 외부의 검증을 받지 않은 채 비밀리에 이루어지는 정도 역시 한국이 훨씬 더 심각하다. 사법 종사자뿐 아니라 시민으로서 정당한 권리를 지키려는 모든 이들이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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