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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반테스 말투·문체 살려 작품 속 숨은 의미 드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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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반테스 말투·문체 살려 작품 속 숨은 의미 드러내

입력
2014.11.27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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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소고기 등 단순한 텍스트 안에 당시 정치·종교 비판적 내용 담겨

인간은 자기 생의 창조자란 메시지, 좌절·박탈감 깊은 사회에 녹아 들길

돈키호테 1,2권을 완역한 안영옥 고려대 스페인어문학과 교수. 열린책들 제공
돈키호테 1,2권을 완역한 안영옥 고려대 스페인어문학과 교수. 열린책들 제공

스페인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베드라의 ‘돈키호테’는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소설이자 가장 외로운 작품이다. 죽기 전에 반드시 읽어야 할 책 1001선, 한국 문인이 선호하는 세계 명작 100선 등 명예의 리스트에 단골로 이름을 올리지만 텍스트에 감춰진 메시지를 정확히 이해하고 내면화한 이들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1,2권을 합쳐 1,72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열린책들 제공
1,2권을 합쳐 1,72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열린책들 제공

‘돈키호테’ 1,2권이 안영옥 고려대 스페인어문학과 교수의 번역으로 열린책들에서 출간됐다. ‘돈키호테’는 원본이 두 권으로 구성돼 있는데 두 권 모두를 한글로 옮긴 것은 민용태 고려대 명예교수가 번역해 2005년 창비에서 출간한 이후 두 번째다. 안 교수는 2010년 번역 의뢰를 받은 후 꼬박 5년 간 작업에 매달렸다. ‘풍경이 영혼을 지배한다’는 신념 아래 소설에 등장하는 지역을 찾아 스페인을 세 번이나 방문했다. “돈키호테가 현실의 벽에 부딪친 이상주의자의 이야기로 단순화하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는 그에게 번역과 관련한 이야기를 들었다.

_’돈키호테’ 완역이 오랜 숙원이라고 밝혔다. 기존 번역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뭔가.

“일단 영어나 일어의 중역본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완역판도 세르반테스의 말투나 문체가 그대로 구현되지 않아 아쉬웠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혔듯 ‘돈키호테’의 문체는 명확하고 깔끔한 것이 특징이다. 물론 당시 바로크 문학들과 비교했을 때 그렇다는 얘기다. 현 시점에서 보면 만연체 문장이지만 과도한 수사나 난해한 표현을 쓰지 않았다. 가능하면 저자의 말투와 작품의 분위기, 구현하고자 하는 캐릭터를 100% 살리고 싶었다.”

_원서의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구체적 사례를 들어달라.

“소설 속에는 대구라는 생선이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장면이 나온다. 저자는 이 에피소드를 통해 개인의 자유를 말하려 했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자기 세계 안에서 사물을 볼 수 밖에 없고 그래서 한 가지 사물에 여러 개의 이름이 생겨나는 것은 필연적인데, 당시 종교와 정치가 이를 억압하는 것을 비판하려는 의도였다. 그런데 대구의 여러 이름들을 노가리, 자반 등으로 번역하면 이 같은 메시지가 묻혀 버린다. 그래서 나는 원어 그대로 쓰고 주석을 달았다. ‘돈키호테’는 겉으로 드러난 텍스트 속에 수많은 의미를 감추고 있는 작품이다. 주인공 돈키호테의 식단을 설명할 때 양고기보다 소고기를 더 먹었다는 부분에서 가난을, 베이컨에서는 종교의 탄압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당시 소고기는 양고기보다 쌌고 가난한 자는 기사가 될 수 없었다. 세르반테스는 하급 귀족이자 빈민, 광인인 돈키호테를 기사로 부름으로써 기사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권력층을 비판했다. 어떤 작품보다 ‘돈키호테’에 제대로 된 번역이 필요한 이유다.”

_스페인은 어디어디를 방문했나. 지금 스페인을 찾는 게 수백 년 전 스페인의 문화를 읽는 데 도움이 되던가.

“스페인만큼 변하지 않은 나라도 드물다. 돈키호테가 살았던 라만차 마을부터 푸에르토 라피세의 객줏집, 몬테시노스 동굴, 루이데라 늪, 그리고 세르반테스가 살았던 안달루시아 지역 등을 돌았는데 1980년대 유학 시절 갔을 때와 별 차이 없었다. 답사를 한 이유는 과연 돈키호테 같은 인물을 낳은 지역은 어떤 곳인가를 알고 싶어서였다. 라만차는 예나 지금이나 매우 고적한 지역이다. 구경거리가 없는 것이 구경거리가 되는 곳, 할 일이 없어서 꿈 꾸는 것밖에 할 수 없는 곳이랄까. 역시 몽상가가 나올 수 밖에 없단 생각이 들었다(웃음).”

_’돈키호테’가 당신에게 대단한 작품인 이유는 무엇인가. 현 한국사회에는 어떤 의미를 갖는다고 보나.

“’돈키호테’는 흔히 ‘인류의 바이블’이라고 불린다. 바이블이라는 건 가장 모범적인 삶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준다는 의미다. 내가 생각하는 ‘돈키호테’의 메시지는 ‘인간은 자기 생의 창조자’라는 것이다. 남이 하기 때문에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삶, 육체는 망가져도 정신은 펄펄 나는 삶, 이런 삶을 사는 이에게는 좌절도 경쟁도 상대적 박탈감도 없다. 대기업 취직에 목매는 현실에 저자의 메시지가 살아서 작동하길 바란다. 사회적으로는 완전한 민주주의를 지향한다고 본다. 일자무식인 산초가 한 섬의 통치자가 됐을 때 모두들 비웃지만, 어떤 지식인보다 훌륭하게 통치하는 모습을 통해 정치에 필요한 건 법이나 정치학이 아닌 바르게 통치하고자 하는 마음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평범한 서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이 같은 설정은 당시라면 종교재판에 회부돼 화형에 처해질 수 있을 내용이지만 세르반테스는 이를 웃음으로, 미치광이의 짓거리로 포장했다. 포장을 벗기고 그 안의 텍스트를 흡수하는 게 오늘 우리의 할 일이다.”

안 교수는 내년 10월 탈고를 목표로 ‘돈키호테’ 해설서를 집필 중이다. 해설서가 출간되면 ‘돈키호테’ 완역본과 함께 ‘돈키호테’를 가장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다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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