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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위스키는 어떻게 세계를 석권했나

입력
2014.11.11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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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위스키의 아버지 다케쓰루… 양조장집 아들로 스코틀랜드 유학, 1929년 일본 위스키 1호 개발

산토리 창업주 도리이… 일본인 입맛에 맞는 위스키 고집, 다케쓰루와 결별 뒤 치열한 맛 경쟁

열도에 부는 위스키 열풍… 2007년부터 세계 품평회서 두각, 올해 산토리 제품 세계 1위 선정

올해 세계 최고 위스키에 꼽힌 산토리의 야마자키.
올해 세계 최고 위스키에 꼽힌 산토리의 야마자키.

도리이 신지로 산토리 창업자
도리이 신지로 산토리 창업자

위스키 평론가 짐 머레이는 최근 펴낸 위스키 가이드북 ‘월드 위스키 바이블’2015년판에서 세계 최고의 위스키로 일본 산토리의 싱글몰트 위스키 ‘야마자키(山崎) 2013년산 셰리 캐스크’를 선정했다.

짐 머레이가 2003년부터 매년 발표하는 ‘월드 위스키 바이블’ 순위에서 일본산 위스키가 1위에 오르기는 처음이다. 위스키 종주국인 스코틀랜드산 스카치 위스키가 5위안에 단 한 제품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 가운데 나온 결과여서 더욱 주목 받고 있다.

위스키는 몰팅(보리의 발아)과 메싱(당분 용해), 발효, 증류, 숙성 등 복잡한 과정을 거쳐 생산되기 때문에 완제품 제조가 가능한 나라는 스코틀랜드(영국), 아일랜드, 미국, 캐나다, 일본 5개국에 불과하다. 위스키는 서양의 전유물로 여겨지나 일본은 자국의 위스키 기술이 여타 국가에 빠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일본 위스키가 세계 시장에서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한 것은 2007년이다. 당시 영국에서 열린 세계 위스키 품평회에서 아사히맥주의 자회사 닛카 위스키의 ‘닛카 요이치(余市) 1987’이 싱글몰트 위스키 부문, 산토리홀딩스의 ‘산토리 히비키(響) 30년’이 블렌디드 위스키 부문에서 각각 최우수상을 받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산토리는 올해 국제 주류평가대회인 인터내셔널 스피리츠 챌린지에서도 ‘히비키21년’과 ‘야마자키 18년’, ‘햐쿠슈(白州) 18년’ 등 18개 제품이 금상을 받았다. 닛카 위스키의 ‘다케쓰루(竹鶴)’는 2007년 이후 매년 월드 위스키 어워드, 인터내셔날 스피리츠 챌린지 등에서 최우수상을 거머쥐고 있다.

닛카 위스키와 창업자 다케쓰루 마사타카.
닛카 위스키와 창업자 다케쓰루 마사타카.

일본 위스키 두 대가의 운명적 만남

일본 위스키가 본고장 스코틀랜드에 뒤지지 않는 기술을 지니게 된 역사적 배경을 언급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두 사람이 있다. 닛카 위스키의 창업자 다케쓰루 마사타카(竹鶴正孝1894~1979)와 산토리의 창업자 도리이 신지로(鳥井信治朗). 두 사람은 동반자로서, 때로는 경쟁자로서 일본 위스키를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초석을 마련했다.

다케쓰루는 일본 위스키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이다. 1894년 히로시마의 양조장집에서 태어난 그는 오사카 공업고교(현재 오사카대) 양조과를 나와 셋쓰주조에 취직했다. 조잡한 수준의 위스키를 생산하던 이 회사는 1918년 24살 청년 다케쓰루를 스코틀랜드에 2년간 유학을 보내 본토의 위스키 생산 기술을 익히도록 했다. 원대한 꿈을 갖고 스코틀랜드로 건너간 다케쓰루는 글래스고에 있는 대학에서 응용화학을 공부하고, 롱먼 디스틸러스 양조장 견학 등을 통해 위스키 제조 기술을 익혔다. 가슴에 늘 만년필을 품고 다녔던 그는 증류소의 구조와 위스키 제조기법 등을 꼼꼼히 기록했고, 이는 일본 최고(最古)의 위스키 양조장 야마자키 증류소를 만드는 토대가 됐다. 리차드 버틀러 전 영국부총리가 1962년 일본을 방문해 다케쓰루를 두고 “한 청년이 만년필 한 자루로 우리나라의 기술을 훔쳐갔다”고 농담을 한 일화는 유명하다.

현지에서 만난 스코틀랜드 여성 리타와 결혼한 다케쓰루는 일본 최초의 위스키 생산을 꿈꾸며 일본에 귀국했지만 그를 기다리는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세계는 불황에 빠져들었고, 일본 내 술 소비량이 급격히 감소했다. 셋쓰주조는 위스키 제조의 꿈을 단념했고 다케쓰루도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실의에 찬 다케쓰루에게 손을 내민 사람이 도리이였다. 오사카에서 고토부키야(壽屋)라는 간판을 내걸고 유통업에 종사하던 도리이는 스페인산 와인을 수입, 판매하던 과정에서 와인의 매력에 푹 빠졌고 1907년 아카다마(赤玉)라는 와인을 직접 생산하기에 이른다. 산토리라는 이름은 아카다마가 상징하는 태양의 영어(sun)식 발음과 자신의 성(Tory)를 합친 것이다.

“얏테미나하레(‘해보시오’라는 의미의 오사카 사투리)”라는 말을 입에 담고 살았던 천부적인 장사꾼 도리이는 와인생산으로 큰 돈을 벌었고, 국산 위스키 제조에 눈을 돌렸다. 그는 일반 대졸자 연봉의 10배에 해당하는 4,000엔이라는 파격적인 대우로 다케쓰루를 스카우트했다. 1923년 오사카부 야마자키에 증류소를 건설한 도리이는 다케쓰루를 초대 공장장에 임명해 위스키 생산에 본격적으로 나섰고, 5,6년간의 숙성과정을 통해 1929년 일본산 싱글몰트 위스키 제1호인 ‘산토리 시로후다(白札)’를 세상에 선보였다. 다케쓰루는 후일 자서전 ‘위스키와 나’에서 “도리이 없이 보통사람의 힘으로는 일본의 위스키가 성장할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고 회고했다.

닛카위스키 요이치증류소.
닛카위스키 요이치증류소.

두 대가의 이별과 경쟁

하지만 둘의 만남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두 사람의 첫 합작품인 ‘산토리 시로후다’가 세간의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자 지금까지 마음속에 담고 있던 생각의 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스코틀랜드와 똑같은 제조기법으로 위스키를 만들고 싶어하는 이상주의자 다케쓰루는 마케팅의 귀재 도리이와 사사건건 의견 충돌을 빚었다. 다케쓰루는 당초 스코틀랜드와 자연 환경이 비슷한 홋카이도에 증류소를 만들고 싶었지만 도리이는 제품 출하를 위해서는 오사카 인근에 증류장이 있어야 한다는 논리로 야마자키를 선택했다. 다케쓰루는 정통 위스키를 만들고 싶었으나 도리이는 일본인의 입맛에 맞는 위스키를 만들어야 팔린다는 자신의 철학을 굽히지 않았다.

다케쓰루는 잦은 의견 대립 끝에 결국 도리이의 곁을 떠나 1934년 홋카이도 요이치에 ‘요이치증류소’를 건립해 별도의 위스키 제작에 나섰다. 자본이 부족했던 다케쓰루로서는 위스키 숙성에 필요한 5년 동안의 운영자금을 위해 과즙음료 제조를 병행했다. 닛카 위스키의 전신인 일본과즙주식회사는이 탄생한 배경이다.

다케쓰루는 정통 위스키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제품 개발에 주력했다. 회사 경영상태는 적자를 거듭했지만 품질에 대한 타협은 결코 없었다. 닛카 위스키는 이후 아사히맥주가 인수했지만 지금도 최고의 위스키를 만들기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다케쓰루와 파트너관계를 정리한 도리이는 일본인의 입맛에 맞는 위스키 찾기에 더욱 공을 들였고, 1937년 일본산 위스키의 대명사로 불리는 ‘가쿠빙(角甁)’을 출시했다. 일본 위스키 성공의 발판을 마련한 도리이는 회사 이름을 산토리로 변경, 1964년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조성된 위스키 붐을 타고 비약적인 성장을 했다. ‘야마자키’와 ‘히비키’ 등 프리미엄급 위스키 제조에도 힘을 쏟았다. 일본 위스키가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은 두 거장의 만남과 이별, 그리고 경쟁을 거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산토리 야마자키 증류소.
산토리 야마자키 증류소.

드라마가 다시 일으킨 위스키 붐

고도성장이 한창이던 1983년을 정점으로 내리막을 치닫던 일본 위스키에 대한 관심이 최근 다시 살아나고 있다. 일본 위스키의 아버지 다케쓰루를 소재로 한 NHK 아침드라마 ‘맛상’이 9월말 전파를 타기 시작해 시청률 20%대의 고공 비행을 하며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다.

일본 NHK드라마 맛상
일본 NHK드라마 맛상

맛상은 다케쓰루와 부인 리타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그리는 150부작 드라마로 다케쓰루와 도리이와의 운명적인 만남 등 일본 위스키 역사의 산증인들을 둘러싼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소개하고 있다. 맛상은 리타가 다케쓰루를 부르던 애칭이다. 드라마 인기에 힘입어 일본산 위스키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주간지 아에라는 최근 도쿄 아카사카의 전통바에서 위스키 팬들이 모여 드라마 맛상의 감상평을 나누는 현장기사를 싣는 등 언론의 보도경쟁도 뜨겁다.

위스키 소비량도 급증하고 있다. 일본주류업계에 따르면 일본산 위스키 소비는 드라마가 방영된 지 한달 동안 전년 동기 대비 17%나 늘었다.

드라마가 인기를 얻으며 일본의 양대 위스키 제조회사인 산토리와 닛카 위스키가 ‘위스키 원조’를 둘러싼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기도 하다. 야마자키 증류소가 출시한 일본 최초의 위스키‘산토리 시로후다’는 산토리 제품이지만 실질적인 위스키 제조 기술은 닛카 위스키 창업자 다케쓰루의 손에서 이뤄졌다는 것이다.

닛카 위스키를 인수한 아사히맥주는 드라마 방영을 홍보 마케팅에 활용해 큰 효과를 보고 있다. 특히 닛카 위스키 창업자의 이름을 딴 ‘다케쓰루’는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이 320% 급증했다.

아사히맥주의 마케팅 전략에 산토리는 발끈했다. 일본 위스키 시장 점유율 60%를 차지하는 산토리는 드라마로 인해 시장 점유율을 빼앗길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느끼고 있다. 산토리는 “다케쓰루의 기술보다 산토리 창업자 도리이의 미래를 보는 안목이 일본 위스키 시장을 키우는 원동력”이라며 “다케쓰루는 도리이의 피고용인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하고 있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두 회사의 자존심을 건 마케팅 전쟁이 일본 위스키 시장에 나쁘게만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도리이와 다케쓰루의 이름을 건 두 번째 전쟁이 시작되고 있다”고 전했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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