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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대통령’ 그가 돌아온다] ① 서태지와 아이들, 데뷔부터 은퇴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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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대통령’ 그가 돌아온다] ① 서태지와 아이들, 데뷔부터 은퇴까지

입력
2014.10.15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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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대중문화의 아이콘' 서태지가 오는 20일 컴백한다. 1996년 그룹 해체 후 실험적인 록 음악에 치중하던 이전과 달리, 감성적인 곡도 선보일 예정이라 대중의 기대가 높다. 서태지의 귀환은 자연스럽게 '서태지와 아이들'을 회상케 한다. 그래서 준비했다. 서태지의 데뷔부터 은퇴 후 행보까지 되짚어 보고, 21세기에도 여전히 '문화 대통령'이란 수식어가 적합한지 고민하는 시간도 가져보겠다. 시리즈는 총 3회에 걸쳐 게재한다. -편집자 주-

1992년 4월 11일 MBC '특종 TV연예' 무대. 여백 없는 댄스음악이 흘러나왔다. 비트는 강했지만 담고 있는 가사는 감성미가 넘쳤다. 독특한 의상을 입은 세 청년은 격렬한 춤사위를 이어갔다.

오디오형 음악이 주류였던 당시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은 이질감을 불러왔다. 자리에 있던 심사위원들의 혹평이 쏟아졌다. 작곡가 하광훈은 멜로디 라인이 약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연예평론가 이상벽은 "동작에 너무 관심을 두어서 그런지 노래가 묻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밝혔다. 가수 전영록은 "새롭고 다 좋은데…. 나쁜 이야기는 이 자리에서 안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심사위원단의 평가를 듣고 있던 서태지는 미소를 지으면서도 굳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심사위원 평가 점수는 7.8. 이 점수는 해당 프로그램이 종영할 때까지 최하점이라는 불명예로 기록됐다. 많은 이들이 이 무대를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로 기억하고 있다. (실제 데뷔는 3월 14일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이 방송이 20여 년 후까지 회자될 것이라고는 당시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1. '문화 대통령'의 탄생

1988년 서태지는 록밴드 '시나위'의 무대를 감상하다가 신대철에 의해 캐스팅됐다. 당시 17세이던 그는 시나위에서 베이시스트로 활동하며 미디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 시기에 '난 알아요' '환상 속의 그대' 등 서태지와 아이들 1집에 수록될 곡의 일부를 작곡한다.

이후 1992년 1월 백댄서였던 양현석과 그의 지인 이주노를 만나 서태지와 아이들을 결성한다. 속전속결로 데뷔한 이들은 '특종 TV연예' 출연 이후 상승세를 달려 180만장 앨범 판매라는 기록을 세운다.

2. 나올 때마다 '대박'…서태지와 아이들의 달콤한 시간들

성공의 달콤함을 맛봤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은 새로운 시도를 이어간다. 데뷔 다음해 힙합과 국악을 접목시킨 '하여가'를 발표, 국내 첫 앨범 220만장 판매라는 신기록을 세운다.

1994년 8월에 발표한 3집에는 댄스보다 록의 비중을 늘려 자신의 음악 색을 더욱 짙게 한다. '발해를 꿈꾸며', '교실이데아' 등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한국 교육의 실태를 비판한 '교실이데아'는 10대의 생각을 대변한 곡으로 인기를 모았다. 한편에서는 서태지와 아이들을 둘러싼 유언비어가 횡행하기도 했다. 특히 '교실이데아'를 역방향 재생하면 악마의 메시지가 들린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논란은 뉴스에까지 보도돼 사회적 관심으로 번져나갔다. 이후 서태지와 아이들이 계획보다 빨리 3집 활동을 접으면서 소문은 잠잠해졌다.

1995년 10월 갱스터 랩 형식의 4집 타이틀곡 '컴백홈'을 공개한다. 방황하는 10대들의 마음을 달래는 가사가 큰 공감을 불러왔다. 가출했던 청소년들이 '컴백홈'을 듣고 귀가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일화다. 해당 소식이 뉴스로 보도되면서 서태지와 아이들의 사회적 파급력은 점점 커져 갔다.

3. 정상의 위치에서 '은퇴' …"창작의 고통 심해"

모든 그룹들이 그러하듯, 서태지와 아이들도 은퇴 수순을 밟는다. "새로움에 대한 부담과 이에 따른 창작의 고통을 겪었다"는 것이 표면적 이유다. 1996년 1월 MBC '인기가요베스트'가 이들의 고별 무대가 된다.

'문화 대통령'으로 불릴 정도로 정상의 위치서 발표한 은퇴 소식에 대중은 충격에 빠졌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눈물 기자회견'은 각 방송사 9시 뉴스의 첫 소식으로 다뤄졌다. 은퇴를 반대하는 팬들은 서태지의 집 앞에 장사진을 쳤고, 한편에서는 납치설 등 괴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은퇴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서태지와 아이들의 베스트 음반이 발매된다. 이후 세 사람은 가수로, 제작자로, 각자의 길을 걷는다.

이소라기자 wtnsora21@hk.co.kr

['문화대통령’ 그가 돌아온다] '②서태지와 아이들, 은퇴 후 그들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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