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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업체 유착 비리, '관리비 내역서'론 잡아낼 수 없다?

입력
2014.10.05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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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선 난방비 논란 등 끝없는 잡음

입주민들 무관심과 정보 부족으로

부패한 소수의 비리 알아채기 힘들어

일 많고 대가 없는 입주자대표회의

떡고물 노리는 사람들 나타나기 마련

재활용품 등서 나오는 잡수익은

관리비 내역서에 실려야 정상

부녀회·노인회 등이 쓰면 불법

아파트가 저렇게 대단위로 몰려 있어도 관리비가 어떻게 쓰이는지를 투명하게 밝히지 못하면 단독주택보다 관리비용이 많이 든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아파트가 저렇게 대단위로 몰려 있어도 관리비가 어떻게 쓰이는지를 투명하게 밝히지 못하면 단독주택보다 관리비용이 많이 든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가정용 주택인 아파트. 여러 가구를 한 건물에 붙여놓았기 때문에 난방비도 덜 들고 함께 관리하니까 사는 비용도 덜 들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아파트에 사는 비용이 의외로 싸지 않다. 난방비 자체가 덜 나올 수는 있지만 일반관리비가 꼬박꼬박 붙어 나오기 때문. 난방비도 김부선씨네 아파트처럼 일부가 속이려고 들면 남의 것까지 부담해서 비용이 더 커질 수도 있다.

그래서 아파트의 장점은 생활비가 덜 들어서가 아니라 관리에 신경을 덜 써서라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상식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것은 아파트 자체의 맹점이기보다는 관리를 제대로 못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병폐. 관리만 잘하면 비용을 줄일 수 있지만 주민들이 정확한 절차를 몰라서, 혹은 무관심해서 부패한 소수만 수익을 누리는 경우가 많다.

아파트 관리는 어떻게 해야 잘하는 것일까. 5개동 577세대가 있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있는 M아파트 단지의 관리비 실태를 통해 방법을 알아보자. 이 아파트는 작년에 현재의 입주자대표회의가 들어선 후 이전 년도에 비해 일반관리비가 5.6%(2013년 1월) 7.6%(2014년 1월)씩 떨어졌다.

아파트 관리가 투명하게 제대로 되는가를 살피려면 우선 아파트 관리가 어떤 구조로 이뤄지는가를 알아야 한다. 아파트는 주민들이 다달이 관리비를 내서 자기네 집이 쓴 비용과 공동관리에 드는 비용을 낸다. 관리는 직접 맡기도 하지만 보통 관리사무소를 세워 위탁관리를 시킨다.

입주민들은 동별로 입주자대표를 선발해서 입주자대표들의 모임인 입주자대표회의를 통해 위탁관리업체를 선정하고 감시도 한다. 따라서 모든 단지형 아파트에는 입주자대표회의와 관리사무소가 있다. 이 두 군데가 관리의 주체이다. 가령 5년만에 아파트 외부 페인트를 새로 칠한다면 공사는 어디에 얼마에 맡길지를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정하면 그 원칙에 따라 관리사무소가 실행을 한다. 아파트에서 발생하는 모든 지출은 물론 수입도 관리한다. 수입 지출 관리 내역은 다달이 ‘관리비 부과 내역서’를 통해 입주민들에게 통고하도록 되어 있다. 이 내역서를 꼼꼼히 살피면 입주자대표회의나 관리사무소가 투명하게 일을 하는가를 어느 정도 살필 수 있다.

하지만 이 내역서에 안 나오는 것이 있다. 원래는 나와야 하지만 나오지 않는 경우. 그게 바로 ‘잡수익’으로 불리는 아파트 단지 ‘관리비 외 수입’ 내역이다. 아파트가 단지라는 공동주거공간을 활용해서 만들어내는 수익으로 주택법상 반드시 공개해서 관리비를 절감하는 비용으로 쓰도록 되어 있다. 지출과 마찬가지로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수익방법을 결정하고 관리사무소가 관리를 맡아야 한다.

아파트 단지에서 생기는 수익사업은 다양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알뜰시장과 재활용품 수거에 따른 수익이다. 알뜰시장은 매주 하루를 정해 아파트 단지 안에 상인들이 좌판을 벌이는 경우로 이때 들어오는 상인들에게 입점비를 받는다. 재활용품 수거비는 주민들이 버리는 폐지 등을 파는 데서 생기는 수입이다. 폐지 가격이 싸지만 여러 세대가 모여 살기 때문에 한 달에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까지 수입이 생긴다. 단지 내에 광고지와 전단지를 붙이게 하는 대신 받는 비용도 있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 세차를 맡는 이들,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며 세탁물을 수거하는 업체에도 출입비용을 받는다. 한전으로부터 검침수당을 받고 있기도 하다.

이런 비용이 관리비 부과내역서에 ‘관리비 외 수입’으로 잡혀 있다면 문제가 없다. 이 항목이 제대로 없거나 촘촘하지 않다면 그건 부녀회나 노인회 같은 곳에서 그 수입을 빼돌리는 것이다. 부녀회나 노인회는 자발적으로 만든 친목단체(임의단체)이기 때문에 절대로 아파트의 수익사업에 관여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아파트 단지의 수익사업은 부녀회가 총괄하고 지출은 주민들이 떠맡는 아파트가 굉장히 많다. 부녀회나 노인회가 수익사업에 관여한다면 아파트 관리비를 줄일 수 있는 비용을 떼먹는 것이므로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현직 국회의원의 남편이 아파트 관리비와 관련한 배임혐의로 피소되었다고 한국일보에 보도(2014년 10월 3일자)된 서울 서초구 서초동 H아파트 경우에도 배임여부 자체는 소송중이라 의견이 엇갈리지만 국회의원 당사자인 황인자(새누리당)의원이 2011~2012년 부녀회장을 맡을 당시 재활용품 수입을 부녀회에서 관리한 것이 감사에서 지적을 받았다.

심지어 부녀회가 아파트 입주민이라는 집단을 활용해서 수익사업을 만들어내는 곳도 있다. 아파트 발코니 공사를 집단으로 주도하면서 특정업체에 몰아주기를 하는 대신 리베이트를 받기도 하고 불우이웃 성금을 모은 후 회계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모두 바로 잡아야 할 비리에 속한다.

아파트 관리비 내역서를 항목마다 살피면서 잘못을 잡아내기는 조금 어렵다. 장부상 수치를 맞추는 것은 언제든 가능하기 때문이다. 페인트 공사나 수조 변경, 배관 수리 같은 대형공사가 일어나면 장부상으로는 비싼 가격에 공사계약을 맺고는 실제로는 적은 돈을 주는 대신 차액을 리베이트로 입주자대표회의나 관리사무소가 받는 경우가 있다. 은밀한 거래를 기록하지만 않으면 되니까 겉으로는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심지어는 위탁관리 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부터 입주자대표회의가 뇌물을 받을 수도 있다. 이것 역시 장부상으로는 잡아내기 힘들다.

일단 모든 비용이 입주자대표회의의 결정으로 관리사무소가 실행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입주자대표회의가 정직한가를 살피는 데 주력해야 한다.

관리비로 입주자한테서 은행을 통해 관리사무소로 들어오는 돈은 몇 가지 종류로 나뉜다. 우선 입주자대표회의나 관리사무소가 전혀 건드릴 수 없는 항목으로 난방비 급탕비 전기료 수도료 등 입주자들이 쓴 양만큼 정확히 계량되어 곧바로 업체에게 지출되는 비용이 있다. 두번째로 장기수선충당금처럼 앞으로 쓸 일을 대비해서 만들어두는 돈 역시 입주자대표회의나 관리사무소에서는 건드릴 수 없다. 셋째 입주자대표회의가 업체를 선정하기에 따라서 비용이 달라지는 항목이 있다. 소독비 오물수거비(음식물쓰레기) 청소비 수선유지비 등이다. 넷째, 관리사무소를 운영하는데 들어가는 일반관리비와 경비인력에게 지출하는 경비비는 입주자대표회의가 결정해서 관리사무소가 집행하므로 두 곳이 유착하면 비리가 생길 수도 있는 항목이다. 그래서 입주자대표회의나 관리사무소가 투명하게 회계를 집행하느냐를 보려면 셋째와 넷째 항목이 관건이다. 물론 이것 역시 관리직원이나 경비원의 수를 줄이고 임금만 낮추면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실질적인 내용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입주자대표회의 자체가 얼마나 성실하고 정직한 조직인가는 일반관리비 항목을 주의깊게봐야 한다. 다달이 쓰는 비용을 제대로 기록한 관리비 내역서가 있는가 하면 형식만 맞춘 관리비 내역서도 있다. 여의도 M아파트 경우 이전의 입주자대표회의는 일반관리비의 경우 전년도에 비춰 1년 예산을 잡아놓고 12개월로 나눠서 다달이 똑같이 기재했다가 연말에 최종정산을 했다. 이것은 다달이 관리사무소의 업무를 살피지 않았다는 말과 같다. 그런데도 다달이 회의는 연 것으로 되어 있다. 물론 이것 역시 1년 회의비를 한꺼번에 정산해서 실제로 회의를 열었는가를 살필 여지도 없게 만들어놓았다. 바로 이 회의비 항목도 대단위 단지 경우 부정할 소지가 있는 분야. 입주자대표들은 무보수명예직이기 때문에 임금을 받지 않고 회의 때마다 소액의 회의비 정도만 받는다.(회당 5만~10만원) 타락한 입주자대표회의는 회의비에 회식비용까지 떠넘긴다.

여의도 M아파트는 관리사무소 직원 9명 가운데 관리실 직원을 3명에서 2명으로 줄이면서 2014년에는 일반관리비를 많이 줄일 수 있었다. 이 아파트는 입주자대표회의의 회의 결과를 주민들한테 알리는 공지문을 회장이 직접 쓸 정도로 주민들의 자원봉사가 자리잡힌 곳. 반면 관리소장이 직접 할 수 있는 서류정리를 위해 직원을 따로 고용한 것을 발견하고 계약기간이 지난 후 재고용하지 않았다. 반면 경비비 같은 것은 오히려 늘어났는데 최저임금이 7.2% 인상한 데 따라 용역비를 올려준 것이다. 청소비 역시 같은 이유로 올랐다. 반면 소독비는 업체를 바꾸면서 가격을 63% 낮췄다. 오물수거비 역시 37% 줄였다. 음식물쓰레기에 대한 주민교육을 자주 하면서 주민들 스스로 음식물을 꼭 짜서 내보내면서 비용이 줄었다. 그러나 이런 것으로 줄일 수 있는 비용은 한계가 있다.

정직한 입주자대표회의가 갖는 최고의 장점은 큰 공사에서 뒷돈을 받아 챙기지 않고 정직한 계약을 함으로써 부실공사가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관리비를 감시하려면 정직한 입주자대표회의를 선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제대로 하려면 일은 많고 대가는 없는 입주자대표를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관리비 관리의 떡고물을 노리는 이들이 대거 들어가는 통로가 되기 십상이다. 소수가 특권을 나눠먹기 위해 세입자들은 아예 입주자대표회의 선출이나 정책 결정에 제외시키는 이상한 아파트들도 많다. 이것 역시 불법이다.

아파트 비리를 막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정직한 회계감사. 국토교통부는 내년부터 300세대 이상의 아파트는 반드시 회계감사를 받도록 주택법 시행령을 바꾸었다. 문제는 이 회계감사는 아파트가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다. 건축법상 200평 이상 주택, 150평 이상 건물은 감리를 받도록 되어 있지만 감리비용은 건축주가 내도록 되어 있어서 건축주로부터 독립적인 감리가 나오기 힘들다. 아파트 회계감사 역시 의무화만 시켰을 뿐 비용은 아파트 단지에 전담시킴으로써 결국 비용을 내는 자의 비리를 비용을 받는 자가 바로잡기 애매하게 만들었다. 여의도 M아파트도 다달이 똑 같은 일반관리비를 기재하던 시절에도 회계감사 비용은 90만원을 지출했다. 결국 관건은 여전히 주민들의 감시이다.

서화숙선임기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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