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골품시대…당신의 서열은 어디쯤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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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골품시대…당신의 서열은 어디쯤입니까?

입력
2014.10.0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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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점수로 같은 학교 다녀 화난다" 대학생들 수시·특별전형 입학생을

수시충·지균충·기균충이라 부르고 기업선 지방대 출신 "지잡대" 비하

학교 서열·직업·착용한 브랜드… 자본주의 승자의 척도로 인식

젊은 세대들 겉으론 비판하면서도 서열화·차별에 은연 중 동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대한민국의 사회 구조를 풍자하는 계급도가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이 삽화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계급도를 재구성했다. 삽화=박구원 차장 용어 설명 *9급충: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을 낮춰 부르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은어 *갓수: 'GOD'과 백수의 합성어로 취업을 포기한 채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생활하는 청년들의 자조적인 표현 *피돌이, 편돌이: PC방 알바와 편의점 알바를 낮춰 부르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은어

한 대학의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몇 년 전에 올라온 ‘입학 전형에 따른 골품’이 최근 화제가 됐다. 입학 전형에 따라 학내 신분 계급을 구분해 놓은 건데, 예를 들어 ▦정시ㆍ수시 입학생 등은 신라시대 골품제에 빗대면 ‘성골’이고 ▦교환학생 등은 ‘6두품’ ▦편입생과 특별전형 입학생은 ‘5두품’ 계급에 해당한다는 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를 일부 철없는 학생들의 우스운 장난쯤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의 계급 나누기는 이미 개인들의 의식 속에 뿌리 깊게 박혀 일상 생활 속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20,30대가 자주 가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종종 학교는 물론 직업, 자동차, 핸드백, 사는 지역 등에 따라 계급을 구분해 놓은 ‘짤’(사용자들이 직접 만들어 온라인 게시판 등에 올리는 이미지)들이 올라와 인기를 모은다. 분명 이런 계급표는 20, 30대가 자조하는 ‘웃픈'(‘웃기면서 슬픈’을 온라인에서 줄여서 표현) 우리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치열한 경쟁 속 학교, 친구들을 ‘벌레’로...

몇 년 전만 해도 한 대학 내에서 입학전형에 따라 정시와 수시 입학생을 함께 묶어 ‘성골’이라고 표현했던 것과는 달리 최근에는 이들 사이에서도 차별이 생기고 있다. 정시 입학생들로선 자신보다 수능 점수가 낮은 수시 입학생들과도 차이를 두고 구별 짓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요즘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수시나 특별전형 입학생을 비하하는 말로 ‘수시충(蟲)’ ‘지균충(지역균형선발)’ ‘기균충(기회균형선발)’이라는 표현이 자주 사용된다.

대학생 최모(22)씨는 “정시로 입학한 학생들 사이에서는 수시나 특별전형으로 입학한 학생들을 은근히 무시하고 비하하는 경우가 많다”며 “한 수업 발표시간에 한 학생이 과제 발표를 하다가 맞춤법을 틀리니까 곧바로 ‘쟤는 특별전형으로 들어온 것 티 내냐'는 비아냥이 쏟아졌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학생 김모(23)씨는 “솔직히 수시로 들어온 친구들 수능성적을 보면 그 성적으로 나와 같은 학교에 왔다는 게 은근 화가 나기도 한다”며 “주변에서 수시충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고 솔직히 나도 가끔 쓴다”고 말했다.

사실 교내 계급보다 20, 30대가 더 자주 마주하는 현실은 학벌에 의한 차별이다. 워낙 오랫동안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차별이지만 취업과 승진 등에서 경쟁이 심해지면서 정도가 더 심해졌다.

지방 소재 대학은 ‘지잡대’라고 불리며 무시당하기 일쑤다. 김기만(29ㆍ가명)씨는 대구의 한 대학교를 졸업하고 지난 2012년 대다수 친구들이 선망하는 국내 최상위 대기업에 취직했다. 부푼 꿈을 안고 서울로 왔지만 행복도 잠시. 회사 내에선 공공연하게 출신 대학에 따른 차별이 이루어졌다. 회사 워크숍을 갔는데, 서울 상위권 대학끼리 같은 대학교 점퍼를 입고 세를 과시하거나 회식 자리에서 같은 대학 출신끼리만 모여 앉아 선ㆍ후배 그룹을 만들어 갔다. 김씨는 “단체 카톡방에서 대놓고 의견을 무시하거나 직장 상사마저 지방대학 출신을 무시하는 발언과 차별을 공공연히 했다”고 말했다. 그는 1년을 채우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 뒀다.

물질이 곧 계급

차별은 학교보단 사회에서 더 심해진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곤 하지만 이 말을 신뢰하는 사람은 없다. 사람들은 겉모습과 하는 일에 따라 대우가 달라진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조모(32)씨는 일찍부터 사업에 눈을 떠 20대 초반부터 자영업을 시작했다. 그는 갖은 어려움 끝에 3년여 만에 자신만의 가게를 갖게 됐다. 한창 잘 될 때는 월 매출이 3억~4억원에 달하기도 했다. 그러자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대기업 재벌의 자제부터 유명 병원의 의사, 내로라하는 금융업계 종사자까지 모두 그와 진심을 다해 친분을 나눴다.

그러나 그가 서른 살에 접어들면서 잘나가던 사업은 한 순간에 무너졌다. 함께 사업을 했던 친구의 배신 때문이었다. 순식간에 그는 빚더미에 앉게 됐고, 우여곡절 끝에 그는 지금 배관공이 되었다. 대형 건물의 배수구가 막히면 장비와 약품을 이용해 뚫는 일을 하는데, 대부분이 꺼려하는 고된 일이다. 그는 “사업가로 살 때 친하게 지냈던 지인들은 사업이 망하자 모두 나를 피했다”며 “요즘 가끔 엘리베이터를 타면 아이들이 더럽고 냄새 난다고 피하고 부모들은 ‘너도 저렇게 살기 싫으면 공부 열심히 하라’식으로 타이르는 소리를 들을 때 유독 비참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나라엔 분명 신분 계급이 존재한다. 돈 잘 버는 사업가로도 살아봤고, 밑바닥 배관공으로도 살고 있는데, 사람들의 시선과 대우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르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다시 배관공 용역 업체 사장을 목표로 삼고 있다.

직업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겉모습이다. 어떤 브랜드의 옷과 신발, 자동차, 핸드백을 소유했느냐에 따라 현실 속 대우는 달라진다. 회사원 이모(30)씨는 최근 서울 이태원에 갔다가 황당한 상황을 목격했다. 자신의 국산 승용차를 몰고 한 호텔에 주차를 하려던 이씨는 주차할 자리가 없다는 말에 핸들을 돌려야 했다. 주차요원은 ‘만차’ 표지판도 주차장 입구에 세웠다. 하지만 이씨의 뒤를 따라 포르쉐 스포츠카가 등장하자 주차요원은 서둘러 표지판을 치우고 주차장까지 친절히 안내했다.

대학생 안모(27)씨도 자신이 탄 자동차 때문에 차별을 경험했다. 잠시 용달로 물건을 납품하는 아르바이트를 했던 안씨는 멀쩡하게 빈자리가 있는 주차장에서도 쫓겨나기 일쑤였다. 안씨는 “건물 외관을 망친다며 주차를 못하게 하는 경우도 많았다”며 “심지어 고급 승용차와 접촉사고가 났는데 전혀 과실이 없었는데도 보험회사 직원은 적당히 좋게 합의 보라고 종용하는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내 안의 이중성

계급화는 곧 차별을 의미한다. 어느 사회든 계급화에 따른 차별은 있기 마련이지만, 이를 배척해야 할 젊은 세대까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건 '건강한 사회'와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의 저자 오찬호 박사(사회학)는 “학교 서열, 직업, 브랜드 등이 모두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승자’의 개념으로 보이는데 이는 차별적 보상도 공정한 경쟁을 통해 만들어진 정당한 보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서열화를 하면 누군가는 결국 멸시 받고 조롱 받게 되는데 그에 대한 죄책감도 사라졌다는 것을 반증한다. 학교는 그런 사람에게 부끄러움을 가르쳐야 하는데, 학교조차 서열화에 앞장서는 상황이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20, 30대가 자꾸 계급도를 만드는 현상과 관련해, 젊은 층들이 이를 비판하면서도 한편으론 인정하고 싶어하는 심리적 이중성을 지적했다. 오 박사는 “한국 사회에서는 줄을 세워서 쟤는 어디에 있는지 딱딱 이해하는 게 굉장히 익숙하다”며 “자꾸 세분화되는 세상 속에서 사람들이 자신 또는 친구가 어느 지점에 있는 지를 확인하고 자기보다 뒤쳐진 계급을 보면서 안심하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강희경 기자 kstar@hk.co.kr

현민지 인턴기자(숙명여대 미디어학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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