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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은퇴자에게 가장 부담스러운 지출

입력
2014.09.2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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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청첩장 한 장을 받았다. 청첩장을 받은 것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겠으나, 문제는 주소도 우리 집이 맞고 받는 사람도 내 이름인데 보낸 사람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내 직함을 이름 뒤에 붙인 걸로 봐서는 분명히 아는 사람일 것 같은데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궁리 끝에 포털사이트에 가서 검색을 하고 나서야 청첩장을 보낸 혼주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내가 맡게 된 일로 한 두번쯤 인사를 나눈 적이 있는 분이셨다.

바야흐로 결혼 시즌이다. 그렇지 않아도 결혼하기 좋은 계절인데다 4년 만에 돌아오는 윤달(9월)이 끼어 있어 그 날짜를 피해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 9월과 10월에는 모든 결혼식장이 초만원이라고 한다. 필자도 지난주에 이어 이번 주, 다음 주 줄줄이 주말마다 결혼식에 초대한다는 청첩장을 받아 놓은 상태다. 그나마 다음 주에는 결혼식이 겹쳐 있어 걱정이다. 9월로 들어서면서 세 번의 부고를 받았고 결혼식까지 챙기면 이번 달 월급의 15% 정도가 경조사비로 나갈 판이다.

몇 년 전 연구를 위해 은퇴하신 분들을 심층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은퇴 후 가장 부담스러운 지출이 뭐냐고 여쭤봤더니 이구동성으로 경조사비를 가장 부담스러워 했다. 특히 이들은 대부분 50대 중후반에서 60대가 되는 연령대인지라 비슷한 연령대의 동료나 친지들은 부모님이 돌아가실 연세가 되셨고 자녀들은 혼령기에 접어들어 하루가 멀다 하고 계절이 바뀔 때는 부고를, 그리고 봄과 가을에는 청첩장을 받는다고 하셨다. 우리 사회에서는 거의 반강제적인 성격을 지닌 경조사를 챙기는 돈이 월급을 받고 있는 사람들도 부담스러운데 하물며 지속적인 소득 유입이 없는 상태에서는 얼마나 부담스러울까. 자식을 키우는 입장이고 연로하신 부모님이 계신지라 다음을 생각해서 안 찾아갈 수도 없고, 거리가 좀 있으면 안 가봐도 되겠지만 좀 친분이 있는 관계면 안 가볼 수도 없고, 부조금으로 주위에서 5만원, 10만원씩 하니 버는 돈도 없는 입장에서는 너무 부담스럽고, 그래서 어떨 때는 (부고는 좀 낫지만) 자녀의 결혼소식을 알려오는 옛 직장 동료가 원망스럽기까지 하단다. ‘사실 자기들끼리만 치르고 나중에 알려도 되는 것을 너무 거창하게 하고 멀리까지 알리는 거 같다’고 불만스러워 하면서 ‘내가 혼사를 치를 때는 정말 가까운 사람들만 모셔서 조촐하게 하고 싶다‘고들 하셨다. 과연 그렇게들 하셨을까 혹시 본전 생각에 마음을 바꾸지는 않았을까?

얼마 전 딸을 결혼시킨 친구가 한 말이 생각난다. ‘결혼하고 나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결혼식에서는 아들 가진 집이 갑이야’라고. 평소 1-2시간이면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결혼식 화환은 절대 보내지도 받지 않겠다고 생각을 한 터라 넌지시 신랑 집에 의향을 물어봤단다. 그런데 단칼에 안 된다는 답이 와서 할 수 없이 화환을 받았단다. 좀 더 용기를 내서 솔선수범하지 그랬냐는 핀잔에 ‘나만 그런 생각한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 양측이 모두 뜻이 맞아야지. 너도 애들 결혼 시켜봐’라는 말로 쑥스러움을 대신했다. 그래도 장례식장에 놓여 있는 꽃들은 좀 낫다. 사흘은 가니까. 하지만 결혼식장의 화환은 기껏 1-2시간을 보자고 10만원이 넘는 돈을 쏟아붓는 격이다.

받는 사람은 얼마 안 되는 축의금, 부의금이지만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어떤 이들은 우스개 말로 경조사비를 투자라고들 이야기한다. 언젠가는 이미 낸 축의금 부의금을 돌려 받을 심산으로 낸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제는 손해 보는 세대가 나와야 할 것 같다. 혹시 베이비부머 세대에게 그 몫을 감당해달라고 부탁하면 너무 가혹할까? 제대로 된 노후연금시스템도 구축되지 않은 사회상황에서 은퇴를 경험한 베이비부머 세대들이야 말로 경조사비의 부담이 가장 큰 세대이기 때문에 솔선수범해서 너나 할 것 없이 받지도 주지도 않는데 앞장서주기를 감히 부탁 드린다.

그리고 결혼 청첩장을 받으며 진심으로 축하하며 같이 기뻐해줄 분들만 초대하자. 참석하는 이들로부터 축하는 받지 못할 망정 원망을 듣는 결혼식이 되어서는 안 되지 않겠나.

최현자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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