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는 조금 여리게mezzo piano
벨베데레 궁 연못 위로 늦여름 빗방울의 파문이 잔잔히 퍼진다. 이른 아침 바로크 풍 궁전의 프랑스식 정원을 달리는 시민들의 발걸음 소리는 생기 넘치게con brio, 정원과 박물관을 지나 해변에 이르러 사색을 즐기려는 여행자의 발걸음은 느긋하게 commodo. 이곳은 비 & 나, 빈(Wien)이다.
가난한 마부의 허기를 달래고 몸을 데워준 비엔나 커피
늦여름 소나기가 내린 빈의 중심가. 한 손에는 고삐를 잡고 다른 한 손에는 생크림이 듬뿍 얹힌 커피잔을 든 마부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갑작스런 소나기에 젖은 몸뚱이에 서서히 한기가 퍼질 즈음인데도 생크림 아래 담긴 커피는 여전히 마부의 몸을 녹일 정도로 따듯하다. 300년 전 비 내리는 빈의 모습을 상상한다.
비에 젖은 마부의 몸을 따뜻하게 데워 준 커피의 이름은 아인슈페너(Einspanner)다. ‘한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라는 뜻으로 우리에게는 ‘비엔나 커피’로 더 잘 알려졌다. 아인슈페너의 생크림은 커피의 온기가 빠져나가지 못할 만큼 수북했고 칼로리는 잠시 허기를 달랠 수 있을 정도로 높았다.
마부들은 커피하우스에서 나오는 손님을 기다렸다. 커피 원두를 구하기 어려웠던 시기 커피하우스는 상류층 남성들만 이용할 수 있었다. 이들은 커피하우스에 비치된 신문을 읽고 당구나 체스로 사교활동을 즐겼다. 커피하우스는 그로부터 200년이 더 흘러서야 일반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대중적인 장소가 되었다.
비엔나 뮤즈(MUSE)의 산실, 커피하우스
시간여행자는 다시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오른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할 것 같지 않은 젊은 예술가가 커피하우스에 들어선다. 자리를 잡고 앉아 있으니 주문한 커피와 함께 물 한잔이 나왔다. 커피에 달려 나온 한잔의 물은 가난한 예술가들이 오랜 시간 머무를 수 있게 해주던 커피하우스의 작은 배려다. 물 한잔만 있으면 추가로 커피를 주문하지 않고 자리를 점령하면서도 민망해 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도 빈의 커피하우스에서 커피를 주문하면 물을 같이 내준다. 예전의 그 깊은 배려의 의미 대신 종업원은 커피 맛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 물로 입안을 헹굴 것을 권했다.
커피하우스는 단순히 커피 맛을 탐닉하는 곳만은 아니었다. 카페인의 각성효과에 힘입어 예술적 영감을 얻는 장소였다. 개인 작업실은 꿈도 꾸지 못할 만큼 가난했던 작가나 예술가 지망생들은 커피하우스를 작업실 삼아 글을 썼고 작품을 구상했다. 어떤 이들은 주소지를 아예 커피하우스로 옮겨 놓기도 했다. “빈에서는 커피의 맛보다는 커피 하우스라는 장소에 의미를 두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빈의 3대 커피하우스 중 하나인 ‘카페 첸트랄(Cafe Central)’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수 있었던 것도 단지 150년을 이어 온 커피 맛 때문만은 아니었다. 프로이트와 트로츠키, 화가 지망생이었던 히틀러가 자신들만의 뮤즈를 만났던 커피하우스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앉아 커피 맛을 즐겨 본다.
빈의 커피에도 이탈리아의 에스프레소와 같은 소량의 진한 원액이 쓰인다. 그러나 에스프레소가 2~30초 내에 고온 고압으로 추출하는데 비해 빈 커피의 원액은 추출 시간이 두 배 이상 긴 카페 룽고(Lungo) 스타일이다. 추출 시간이 길다 보니 아로마(향기)와 바디감(혀로 느껴지는 커피의 감도)도 훨씬 부드럽다. 정통 빈 커피는 이탈리안보다 오히려 터키쉬(Turkish)에 가깝다. 만일 빈에서의 커피하우스 순례를 계획하고 있다면 강렬한 커피 맛에 집착하지 않는 편이 정신건강에 이롭다. 빈 커피의 부드러운 바디감이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더욱 풍부하게 했던 것처럼, 은은한 아로마는 여행자들이 이어갈 길 위의 사색을 한층 깊게 해 줄 것이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 커피하우스의 문을 열고 거리로 나섰다. 그리 높지 않은 주변 건물들 사이로 빼꼼히 머리를 내민 성 슈테판 성당(St.Stephansdom)의 첨탑이 눈에 띤다. 성 슈테판 성당은 800년 빈 역사의 상징이다. 벽돌 23만개를 쌓아 지은 성당은 모차르트의 결혼식과 장례식을 모두 치른 곳으로도 유명하다. 낮은 스카이라인 위로 솟은 성당의 뾰족탑은 어딜 가나 눈길을 끈다. 모차르트, 베토벤, 요한 스트라우스 등 예술가들의 흔적을 따라 골목 이곳 저곳을 누비고 다녀도 성 슈테판 성당의 뾰족탑만 볼 수 있다면 길을 잃을 걱정은 않아도 된다.
빈은 말한다.
Now or Never!
지금 아니면 할 수 없다. 당장 비엔나로 달려 오라고…
빈 여행 100배 즐기기
“잠시 후 비엔나 국제 공항에 도착합니다. 아름답고 푸른 다뉴브 강이 있는 비엔나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빈(영어명 비엔나) 국제공항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기내 방송이 나온다.
오스트리아 빈까지의 비행시간은 10시간 30분 시차는 7시간이다. 대한항공이 인천공항에서 빈 공항까지 주3회(수·금·일) 직항편을 운항하고 있다. 비수기인 10월 26일부터 내년 3월 28일까지는 인천~빈, 인천~취리히 노선을 인천~빈~취리히~인천으로 병합 운항한다.
비행기에서 내려 수하물 찾는 곳으로 가는 동안 광고로 사용된 구스타프 클림트의 수 많은 작품을 볼 수 있다. 마치 클림트가 ‘여행 기간 동안 내 작품의 늪에 빠질 준비가 되었는가’라고 말하는 듯하다. 명화를 감상하며 짐을 찾았다면 시내로 이동한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가장 저렴한 방법은 국철(S7)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한화로 5600원정도, 택시로 이동하면 5만원 정도의 요금이 나온다.
일단 숙소에 짐을 풀어놓고 차분히 계획을 세워 움직인다. 대부분의 관광지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30분내로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무거운 짐은 숙소에 보관하고 꼭 필요한 짐만 들고 다니는 것이 편리하다.
숙소(2인기준)는 민박이 70~80유로, 호텔은 100유로 정도가 최저가이며 준 특급 체인인 오스트리 트렌드 호텔은 250유로 정도에 묵을 수 있다. 비싸더라도 특별한 하룻밤을 보내고 싶다면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별장이었던 쇤브룬 궁전이 있다. 이곳의 황제체험 숙박 패키지가 하루 밤 2,700유로다.
빈 교통카드 하나면 트램과 지하철을 정해진 기간 동안 제한 없이 이용할 수 있다. 역이나 정거장에 설치된 자동판매기에서 체류 일정을 고려해 빈 교통카드를 구매하면 된다. 24, 48, 72시간 이용 카드 등 종류가 다양하고 신용카드로 구매가 가능하다.
이제 준비는 끝났다. 가벼운 차림으로 시내로 들어서 뾰족탑을 기준 삼아 성 슈테판 성당 앞 광장을 찾아 가자.
● 사진기자의 사진 제안
빈 시내에는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오래된 건축물들이 늘어서 있다. 아름다운 건축물 전경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으려면 표준렌즈로는 어림도 없다. 카메라의 렌즈는 가능한 광각계열을 추천한다. 개별 여행자라면 셀프 카메라봉도 준비해보자. 이동하면서도 소중한 기념사진을 얻을 수 있다.
● 먹거리는 어떻게 할까
빈의 대표음식이자 가장 흔한 음식은 슈니첼이다. 슈니첼은 어린 송아지 고기에 밀가루를 발라 튀겨서 만든 음식이다. 남산 왕돈까스와 모양은 비슷하지만 식감은 훨씬 부드럽다. 소스 대신 레몬 한 조각이 곁들여 나온다. 식사와 함께 하는 맥주나 와인도 일품이다. 특히 와인 품질이 좋다. 수출보다 내수가 많아 다른 곳에서는 맛보기 힘들다. 빈에서는 꼭 와인을 마셔볼 것을 추천한다. 슈니첼의 느끼함이 싫어졌다면, 식사에 오랜 시간을 투자하고 싶지 않다면 노점에서 파는 겨자소스를 곁들인 구운 소시지로 한끼 해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 추천 여행지, 박물관 말고 어딜 또 가볼까?
박물관, 건축물, 쇼핑 투어 등을 하다 보면 놓치기 쉬운 곳이 있다. 빈 남쪽 외곽의 중앙묘지. 시내에서 트램을 타면 30분 안에 도착할 수 있다. 제2문을 통해 차분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음악가의 묘역이 보인다. 모차르트를 중심으로 베토벤, 슈베르트, 브람스, 요한 스트라우스 등 음악의 대가들이 죽음을 매개로 한 자리에 모였다. 이곳에서는 바스락거리는 마른 잔디소리도 이름 모를 새소리와 어울려 아름다운 음악이 된다.
● 이것은 무엇일까요.
이곳 저곳을 둘러보다 재미있는 표시가 있어서 사진에 담아 보았다. 왼쪽은 투르크 족(지금의 터키)의 침략을 물리친 기념으로 투르크 족 국기의 반달모양을 빗대어 만들었다는 크로와상의 당시 표준 규격 틀. 가운데는 동전을 넣어야만 문이 열리는 유료화장실이다. 공중화장실은 대부분 유료다. 비상시를 대비해 잔돈을 항상 가지고 다니자. 오른쪽은 보행자 전용 도로가 끝남을 표시한다.
오스트리아 빈=류효진기자 jsknigh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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