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세금 인상안을 놓고 논란이 거세다. 정부는 지난주 담뱃값에 개별소비세를 신설하고, 주민세와 자동차세(영업용 승용차ㆍ승합차) 등 지방세를 인상하는 내용의 세금 개편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담뱃값 인상은 국민건강증진 차원에서, 지방세 인상은 복지ㆍ안전비용 확보 차원에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국민의 건강과 안전, 복지를 위해 세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정부의 정책 기조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제대로 된 안전국가, 복지국가를 위해 많은 재원이 확보돼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주로 사치품 등에 매기는 개별소비세를 담뱃값에 포함시키는 정부 정책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또 영업용 택시와 버스에 부과하는 자동차세를 올릴 경우 대중교통 요금 인상은 불가피한데, 서민생활 안정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우려된다.
논란이 되는 개별소비세, 주민세, 자동차세는 모두 간접세이다. 간접세는 소득이 많건 적건 누구나 똑같은 금액을 내야 하는 세금이다. 반면, 직접세는 소득세, 법인세, 상속세 등으로 소득이 많을수록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 직접세는 소득이 많은 국민에게 세금을 많이 거두는 방법으로 소득을 재분배하는 기능이 있다. 이에 비해 간접세는 합리적 소득재분배에 역행하는 역진적(逆進的) 특성을 띤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간접세 인상 정책은 소득재분배를 국가의 역할로 규정한 헌법 규정을 무색하게 만든다. 헌법 제119조 제2항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라며 국가의 역할 중 하나로 경제민주화를 위한 소득재분배를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소득재분배에 역행하고 나아가 빈부격차를 줄이지 못하는 간접세 인상 정책은 국민 간 적정한 소득 분배를 규정한 헌법 취지와는 맞지 않는다.
나아가 정부 정책은 헌법 상 규정된 평등원칙에 반할 소지도 있다. 헌법 제1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조세영역에서도 조세평등원칙이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평등원칙이란 모든 차별 대우를 부정하는 절대적 평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 발전ㆍ통합을 위한 합리적인 차별은 사회적 동의를 얻어 허용된다. 조세영역에서도 합리적 차별이 허용된다. 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동일한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조세부담능력에 따라 합리적인 차별을 시행한다. 소득이 많은 국민은 많은 세금을, 소득이 적은 국민은 적은 세금을. 이것이 바로 조세정의다. 그런데 간접세 인상은 소득과 상관없는 조세부과라는 점에서 조세평등원칙을 해할 수도 있는 것이다.
세금으로 인한 소득 분배의 왜곡 현상을 정부가 모르는 것은 아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발간한 ‘조세의 이해와 쟁점’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기준 우리나라의 세전 기준 소득분배 평등성은 OECD 회원국 중 1위를 차지했다. 스웨덴, 핀란드 등 복지수준이 최고라고 일컬어지는 북유럽 국가보다도 우리의 소득 분배 정도가 더 나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세금을 징수한 후 측정한 세후 소득분배 평등성에서는 최하위권으로 급락했다.
세금을 걷기 전에는 국민 간 소득분배가 잘 되는 나라였으나 세금을 걷은 뒤 오히려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소득 분배가 제대로 되지 않는 이상한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물론 위와 같은 급락 원인으로 소득공제 제도 등 여러 요인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OECD 회원국의 조세체계가 대체로 직접세 비중이 높아 소득이 많은 사람이 많은 세금을 내고 있는 데 비해, 우리의 경우 간접세 비중이 높아 소득과 상관없는 세금이 모든 계층에 부과되고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높은 간접세 비중이 세전ㆍ세후 소득분배 평등성에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도 있다.
1608년 광해군은 국가 세금체계인 공납을 대동법으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공납은 대토지를 소유한 지주와 그 토지를 경작하는 소작인이 동일한 세금을 부담하는 폐단이 있었다. 소득에 상관없는 세금 부담으로 간접세와 유사하다. 광해군은 공납이 백성들의 삶을 힘들게 한다고 판단, 토지 소유에 비례해 세금을 내는 대동법을 도입하고 공납을 폐지하려 한 것이다.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소득재분배, 조세평등이 바로 국민을 위하는 길이다.
허윤 법무법인 예율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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