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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기술의 예술 놀이터는 잊어주세요

입력
2014.09.10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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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잊힌 역사ㆍ냉전의 기억..."인류 희망 키우려는 지성의 현장"

다양한 매체 활용 유연성도 더해, 17개국 42개팀 작가 230여점 출품

양혜규의 '소리 나는 춤'. 방울을 잔뜩 매달아 움직이면 소리가 나는 조각을 행성의 궤도 같은 나선을 따라 설치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r
양혜규의 '소리 나는 춤'. 방울을 잔뜩 매달아 움직이면 소리가 나는 조각을 행성의 궤도 같은 나선을 따라 설치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r

미디어아트 비엔날레인 미디어시티서울은 2000년 처음 출발할 때부터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뉴미디어 예술에 초점에 맞췄다. 그러나 올해는 다르다. 첨단기술의 신기한 예술 놀이터 같던 모습이 사라졌다. 테크놀로지가 아니라 다양한 미디어(매체)를 통한 표현을 강조함으로써 더 진지하고 유연해졌다.

8회째, 11월 23일까지 하는 이번 미디어시티서울의 전시 제목은 ‘귀신 간첩 할머니’, 화두는 아시아다. 귀신은 아시아의 잊혀진 역사와 기억을, 간첩은 냉전의 기억을, 할머니는 여성과 시간을 비유한다. 예술감독 박찬경의 설명에 따르면 올해 행사는 “귀신, 간첩, 할머니가 쓰는 주문, 암호, 방언으로부터 새로운 인류 공동체의 희망을 키우려는 집단지성의 현장”이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의 전시와, 한국영상자료원의 영화 상영으로 진행 중이다. 아시아를 중심으로 17개국 42팀의 작가들이 230여 점을 출품했다. 호기심을 자아내는 전시 제목만큼이나 흥미로운 작품이 많다.

최원준의 ‘만수대 마스터 클래스’는 북한의 만수대창작사가 제작한 체제 선전용 포스터와 책자, 기념품,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 만들어준 대형 동상과 기념비 등에 나타난 주체예술을 비디오와 자료로 보여준다. 올해 베니스건축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한국관 전시에 일부 선보였던 작품이다.

양혜규의 최신작 ‘소리 나는 춤’은 작은 방울을 잔뜩 매달아 소리가 나는 조각이다. 바닥에 행성의 궤도처럼 그려놓은 나선을 따라 작품을 배치했다. 방울들이 서로 부딪혀서 내는 섬세한 소리가 우주의 음악을 상상하게 만든다.

서울시립미술관 건물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고등재판소였다. 다무라 유이치로는 전시장 1층에 법정 세트를 설치하고 1764년 조선통신사 피살 사건을 소재로 한 가부키 영상을 틀어 이 장소의 역사성을 환기시킨다.

홍콩 작가 호신팅의 ‘홍콩 인터-비보스 영화제’는 중국 귀속 후 홍콩의 우울한 현재를 가상의 영화제로 구성했다. 가상의 영화 28편을 소개하는 스틸, 포스터, 시놉시스를 전시하고 예고편 영상을 상영한다. 라틴어 ‘인터-비보스(inter-vivos)’는 ‘삶의 사이에서’라는 뜻이다. ‘삶의 사이에서’ 떠도는 유령 같은 오늘을 은유하는 인상적인 작품이다.

영국에서 활동하는 그리스 작가 미카일 카리키스는 제주 해녀들의 일과 노래를 영상과 사운드로 담아낸 ‘해녀’를 선보였다. 휘익휘익 날카로운 숨비소리(제주 해녀들의 전통적 숨쉬기 기술)와 해녀들의 노동요 ‘이어도사나’가 서라운드 음향으로 깔리는 가운데 컴컴한 방에서 영상이 돌아간다. 거친 바람과 파도 소리가 직접 겪듯 생생하게 육박해온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상영하는 영화는 42편이다. 영매, 냉전극장, 그녀의 시간 등으로 주제를 나누어 진행한다. 11~17일 상영하는 ‘아시아 고딕’ 편에는 ‘엉클 분미’로 2010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태국 감독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단편영화 3편이 포함돼 있다.

미디어시티서울은 올해 행사부터 서울시립미술관이 직접 운영한다. 예전에는 서울시 위탁사업이었다. 전시와 영화 관람은 무료다. 좀 더 잘 즐기려면 홈페이지(mediacityseoul.kr) 방문을 권한다. 도록과 각종 자료부터 작품별 해설을 담은 오디오가이드 파일까지 올려져 있어 감상에 도움이 된다. 스마트폰에서도 이용할 수 있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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