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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 충무로 권력 구도를 뒤흔들다

입력
2014.08.26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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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량'.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명량'.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충무로엔 제왕적 제작자나 감독이 꽤 있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신상옥(1926~2006년) 감독이다. 1961년 ‘성춘향’의 흥행을 발판 삼아 신상옥 제국을 건설했다. 1960년대 서울 용산구 문배동에 위치한 4층 촬영소가 신필름의 심장이었다. 2개의 스튜디오와 녹음실, 영사실, 연기실 등을 갖췄다.

신필름 전속배우만 해도 부인인 최은희를 필두로 신영균, 허장강, 이예춘, 남궁원, 태현실 등이 있었다. 지방에 다섯 개의 지사를 두어 신필름 영화를 직접 개봉하려 했다. 지방 구역별로 따로 있던 흥행사들이 서울에서 만들어진 영화에 미리 투자하거나 개봉 예정작을 사서 자신들의 관할 지역에서 영화를 독점적으로 유통시키던 시절이었다. 신 감독은 현대식 배급 개념을 1960년대 정착시키려 했다.

신 감독이 북한으로 납치된 뒤 소제후의 시대가 열렸다. 정진우 감독 등이 연출과 제작, 극장업을 겸하며 군웅할거의 시대를 열었다. 1990년대 중반 새로운 제왕이 등장했다. 강우석 감독이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에요’와 ‘투캅스’ 등을 연이어 흥행시키며 재력을 키웠다. 시네마서비스를 설립해 영화 제작과 투자, 배급을 겸했고 멀티플렉스 체인 프리머스도 소유했다. 2000년대 초중반까지 시네마서비스는 충무로를 대표하는 토착 세력이자 자본이었다. 2004년 ‘실미도’의 첫 1,000만 영화 등극은 강 감독의 공식적인 대관식 역할을 했다.

2003년 강우석 '실미도' 흥행의 비밀이 궁금하다면

‘실미도’ 이후 10년 만에 등장한 ‘명량’은 영화산업에 있어 여러모로 상징적이다. ‘명량’은 무관의 제왕인 투자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를 명실상부한 충무로 제왕으로 만들었다. CJ엔터테인먼트는 1995년 제일제당 멀티미디어 사업부로 영화에 뛰어든 뒤 충무로를 호령해 왔으나 체면을 구긴 경우가 많았다. ‘실미도’의 시네마서비스에게 첫 1,000만 영화의 영예를 뺏겼다. 두 번째 1,000만 영화의 영광도 라이벌 쇼박스의 ‘태극기 휘날리며’가 가져갔다. 2009년에야 CJ엔터테인먼트는 ‘해운대’로 1,000만 영화를 첫 배출했다. 그 사이 시네마서비스는 ‘왕의 남자’를, 쇼박스는 ‘괴물’을 각각 1,000만 영화로 만들었다.

CJ엔터테인먼트는 2012년 ‘광해, 왕이 된 남자’로 두 번째 1,000만 영화를 가지게 됐으나 지난해 신흥 강자인 투자배급사 뉴(NEW)에 밀려 국내영화 배급순위 2위에 머물렀다. 뉴는 ‘7번방의 선물’과 ‘변호인’을 내놓으며 단숨에 1,000만 영화를 두 편 보유한 강호로 부상했다.

‘명량’이 역대 최고 흥행영화의 자리를 차지하며 CJ엔터테인먼트는 강자의 진면모를 과시하게 됐다. ‘명량’으로 CJ엔터테인먼트는 1,000만 영화 세 편을 보유하며 쇼박스(2012년 세 번째 1,000만 영화 ‘도둑들’을 내놓았다)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흥행전선에서 패배를 모르던 뉴는 이번 여름 ‘해무’로 쓴 잔을 들이켰다.

‘명량’은 한 시대의 황혼과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상징한다는 말이 충무로 일각에서 나온다. ‘명량’의 대흥행으로 충무로 토착 자본의 시대가 확실히 막을 내렸다는 것이다. 조물주의 얄궂은 장난일까. ‘명량’의 김한민 감독은 강우석영화학교 출신이라고 한다. 강우석영화학교는 2004년 시네마서비스가 충무로를 쥐락펴락할 때 개교했다.

‘명량’이 매일 새 흥행기록을 쓰고 있는 최근 강우석 감독이 출국을 했다. 새로운 영화 연출과 사업을 모색하기 위한 재충전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라고 한다. 영화 인생에 대한 모종의 결단을 내린 뒤 충무로로 곧 돌아올 것이라는 다짐도 내비쳤다. 한 시대가 또 이렇게 저물 것인가, 아니면 충무로의 파워맨은 와신상담에 성공할 것인가. ‘명량’은 스크린 뒤에서도 충무로의 이야기를 새롭게 만들어가고 있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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