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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할머니가 건넨 나비 배지 단 교황… 恨의 세월 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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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할머니가 건넨 나비 배지 단 교황… 恨의 세월 녹이다

입력
2014.08.1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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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평화와 화해 위한 미사' 해고노동자·강정마을 주민 함께

"용서 얘기하며 불의에 단호 대응, 깊은 교훈으로 가슴속 깊이"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한반도의 평화"를 언급한 교황은 18일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서 죄지은 형제를 몇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하는지 묻는 베드로의 질문에 예수가 "일흔일곱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고 답한 것을 인용하면서 "잘못한 사람을 용서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면 우리가 어떻게 평화와 화해를 위해 정직한 기도를 할 수 있겠는가"라고 되물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 마지막 날인 18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열린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서 강론을 하고 있다. 미사에는 12개 종단 지도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등 초청을 받은 사람들과 신도 등 1,000여명이 참석했다. 홍인기기자 hongik@hk.co.kr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 마지막 날인 18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열린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서 강론을 하고 있다. 미사에는 12개 종단 지도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등 초청을 받은 사람들과 신도 등 1,000여명이 참석했다. 홍인기기자 hongik@hk.co.kr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89) 할머니가 황금빛 나비 배지를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건넸다. 교황은 배지를 제의 왼편 가슴에 달고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교황은 제대 맨 앞 줄에 앉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손을 꼭 잡았다. 옆에 앉은 시각장애인의 이마에 성호를 그으며 축복했다. 18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마지막 방한 일정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가 집전된 서울 명동성당 안은 축복으로 가득했다.

이날 미사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강정마을 주민, 밀양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과 천주교 신자 1,000여명이 참석했다. 국내 12개 종단 지도자들도 박근혜 대통령과 교황을 맞이했다. 극한의 갈등을 겪었던 참석자들조차 30여분 이어진 교황의 강론을 듣고는 “이 자리에 초청받은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됐다”고 입을 모았다.

천주교 신자인 이용수(87)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는 교황에게 ‘일본 천황이 사죄하라’는 문구가 적힌 명함을 전달했다. 이 할머니는 “망언을 계속하는 일본 아베 정권이 위안부 할머니들이 죽을 때만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데, 다행히 죽기 전에 명함을 드렸다”면서 “받아주셔서 의미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교황께서 위안부 문제에 큰 관심을 갖고 계시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사태가 조만간 평화롭게 해결돼 일본과도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고 덧붙였다. 강정마을 주민 고권일(51)씨는 “교황 방한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차별과 억압, 불평등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갖고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했으면 한다”고 바람을 밝혔다.

참가자들은 정부에 평화와 화해를 위한 노력을 주문하기도 했다. 밀양 주민 한옥순(67ㆍ여)씨는 “죽음의 송전탑을 없애달라고 교황 앞에서 기도했으니 밀양에도 평화가 오지 않겠느냐”면서도 “한국에는 대통령도, 추기경도 있지만 이들이 송전탑 건설 문제에 관심을 갖고 주민들과 소통하려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쌍용차 해고자 문기주(53)씨는 “정치권과 정부 관계자 중에도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는데 그들은 왜 베풀고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종교의 기본 도리조차 잊고 사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미사 전날 밤부터 내린 굵은 빗줄기에도 이날 명동성당 일대는 교황을 환영하는 신자와 시민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전국 16개 교구 신자 700여명은 성당 밖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을 지켜보며 미사를 함께 했다. 시민들은 우비를 입거나 우산을 든 채 이른 오전부터 명동성당 사거리까지 수백여m 줄을 서가며 교황의 모습을 보려고 자리를 지켰다.

경남 밀양에서 온 최민자(59ㆍ여)씨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용서와 화해를 이야기하면서도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말씀에 깊은 교훈을 얻었다”고 말했다. 전날 오후 9시부터 교황을 기다렸다는 윤은경(47ㆍ여)씨는 “바쁜 일정으로 피곤하셨을 텐데도 풍기는 에너지가 매우 강했다”며 “잠깐 스쳐가듯 뵌 것이지만 밤을 지샌 고생이 전혀 아깝지 않을 만큼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장재진기자 blanc@hk.co.kr

김진주기자 pearlkim72@hk.co.kr

김민정기자 mjkim7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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