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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인, 미련을 버리다

입력
2014.08.03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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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은 자유주의자였다. 이력과 일화를 보면 진영 논리에 얽매이는 것을 그는 경계해온 것 같다. 단호해 보이지만 무책임한 말들로 어지러운 정치판에서 세상 이치와 자기 생각을 사례와 근거를 제시하며 길게 설명하던, 드문 합리주의자로 그를 기억하는 사람도 꽤 있다. 그의 정계 은퇴 선언(7월 31일)이 아쉬움을 남기는 건 그래서다.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손학규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은 자유주의자였다. 이력과 일화를 보면 진영 논리에 얽매이는 것을 그는 경계해온 것 같다. 단호해 보이지만 무책임한 말들로 어지러운 정치판에서 세상 이치와 자기 생각을 사례와 근거를 제시하며 길게 설명하던, 드문 합리주의자로 그를 기억하는 사람도 꽤 있다. 그의 정계 은퇴 선언(7월 31일)이 아쉬움을 남기는 건 그래서다.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왜 미련이 없겠나. 권력을 탐했던 정치인이. 미련해지기 싫었을 터. 그는 자주 떠났다. 꿈이 그를 불렀다. 선명한 경계는 늘 불편했다. 옹졸한 우파지도 있다. 금도(襟度)가 아쉽다.

“선거에서 유권자의 냉엄한 심판을 받고도 기회만 있으면 권력을 향해 불나방처럼 달려들고, ‘물구나무를 서서라도’ 금배지를 달려는 탐욕이 이글거리는 곳이 정치판이다. 자신의 깜냥과 비움을 모르고 권력욕으로 무장한 정치인들이 대개 천수를 누린다. 어쩌면 “마약 없이 권력에 중독된 자들”(독일 언론인 라이네만)이라는 정치인에게서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연목구어일지 모른다. (…) 5년의 대통령 임기를 마친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는 국민들이 그토록 남아달라고 부탁했지만 “더 나은 사회, 더 나은 국가를 이룩할 후진을 위해 떠난다”며 표표히 권좌에서 물러났다. (…) 갈채와 아쉬움을 뒤로하고 ‘날 때’를 알아 물러나는 거인들의 퇴장은 장엄하다. ‘여의도 신사’로 불린 손학규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 영광과 곡절이 교차한 21년의 정치인생을 마감했다. 당의 차출로 출마한 수원 팔달 선거에서 패하자, ‘물러날 때’라며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은퇴회견 첫머리에서 “정치인은 들고 날 때가 분명해야 한다”고 했다. (…) 고별사의 갈무리는 뜻밖에, 아니 실로 손학규다웠다. “잘사는 나라를 만들어 ‘저녁이 있는 삶’을 돌려드린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송구스럽습니다. 떳떳하게 일하고 당당하게 누리는 세상, 모두 함께 일하고 일한 만큼 소외 받지 않고 나누는 세상, 그런 대한민국을 만들려 했던 저의 꿈을… 이제 접습니다.” 그가 끝내 이루지 못한 소중한 꿈… 손학규의 ‘아름다운 퇴장’으로 열린 문을 통해 들어설 야권의 신진 리더들이 짊어져야 할 몫이다.”

-굿바이 손학규(경향신문 ‘여적’ㆍ양권모 논설위원) ☞ 전문 보기

“‘정치인 손학규’는 늘 자신이 지금의 여와 야, 어디에도 딱 들어맞지 않는다고 느끼는 듯했다. 이런 태도 때문에 욕도 많이 먹었다. (…) 그는 경기고 3학년 때부터 데모에 앞장섰고 서울대 문리대에 들어가선 골수 운동권이 됐다. 법대 조영래, 상대 김근태와 함께 서울대 운동권 3총사로 불렸다. (…) 그런 그가 민자당에 입당하자 운동권 선·후배들이 등을 돌렸다. 그는 1980년대 7년 동안 영국 유학을 하면서 낡은 보수와 진보의 틀을 넘어서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됐다고 했다. 손학규는 2007년 한나라당을 탈당한 직후 운동권 경력과 중도적 정치 신념 때문에 늘 찬밥 신세였다고 털어놓았다. 새로 둥지를 튼 민주당에선 거꾸로 한나라당 경력이 원죄(原罪)가 됐다. (…) 이번 7ㆍ30 재ㆍ보선에서 패하고 집으로 돌아온 그는 부인에게 “이제 자유인이 됐다”는 말부터 건넸다고 한다. 그러고선 이튿날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한 달 전쯤 만났을 때 그는 다시 정치에 나서는 이유를 “꼭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서”라고 했다. 좌우(左右)의 낡은 틀을 깨는 평생 숙원과 그가 내걸었던 ‘저녁이 있는 삶’을 실천하겠다고 했다. 당성(黨性)만 앞세우는 우리 정치에서 당분간 그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질 것 같다.”

-자유인 손학규(조선일보 ‘만물상’ㆍ박두식 논설위원) ☞ 전문 보기

“야당 대표와 두 번의 대권 도전 관록을 가진 사람이 경기 수원병(팔달) 보궐선거에서 정치 신인에게 패했으니 체면을 구긴 정도를 넘어 충격이 클 것이다. 3년 전 경기 성남 분당을 보궐선거의 승리로 과시했던 존재감을 다시 한 번 멋지게 입증해 보여 재차 대권 도전의 발판을 마련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정치적 무덤’이 되고 말았다. 교수 손학규는 1993년 김영삼 대통령에게 발탁돼 민주자유당 후보로 경기 광명을 보궐선거에서 당선되며 정치에 입문한다. 그는 이 당에서 3선 국회의원, 보건복지부 장관, 경기도지사를 하며 정치적 몸집을 키웠다. 그러나 대통령의 꿈을 이룰 수 없다고 판단되자 미련 없이 다른 둥지로 날아갔다.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도 초지일관해 결국 호남 지역구 국회의원의 뜻을 이룬 이정현과 그를 비교하는 사람이 많다. (…) 새 둥지의 사람들은 아쉬울 땐 그에게 손을 내밀다가도 대권 경쟁이 붙으면 ‘보따리장수’ ‘정체성’ 운운하며 돌팔매질을 했다. ‘13년 과거’는 그에게 씻을 수 없는 낙인이었다. (…) 지금은 그의 은퇴를 아쉬워하는 사람이 많지만 대권의 꿈에 연연한 복귀는 노추(老醜)로 비치지 않을까.”

-아깝다 손학규(동아일보 ‘횡설수설’ㆍ이진녕 논설위원) ☞ 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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