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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 "나는 유희적인 인간, 영화는 날 흥분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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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 "나는 유희적인 인간, 영화는 날 흥분시킨다"

입력
2014.07.0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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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인터뷰] 영화평론가 이동진

서울 합정동 카페 ‘빨간책방’은 ‘이동진’이라는 브랜드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동진씨는 “여기서 들려주는 음악 60곡도 제가 매일 선곡한다”며 “제가 추천하는 책 코너도 따로 있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이달 말부터 이곳에서 심야 라디오 방송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상순기자 ssshin@hk.co.kr
서울 합정동 카페 ‘빨간책방’은 ‘이동진’이라는 브랜드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동진씨는 “여기서 들려주는 음악 60곡도 제가 매일 선곡한다”며 “제가 추천하는 책 코너도 따로 있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이달 말부터 이곳에서 심야 라디오 방송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상순기자 ssshin@hk.co.kr

영화평론이 죽은 시대다. 영화평론가의 긴 글보다 네티즌들의 짧은 평가가 더 영향력을 미치기 일쑤다. 영화사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확성기로 삼은 입 소문에 더 신경을 쓴다. 깊고 넓은 분석보다 얕고 좁은 독설이 더 각광 받는다. 영화계는 대호황인데 영화평론가의 설 자리는 더 좁아졌다는 푸념이 나온다. 그래도 여전히 관객에게 힘을 발휘하는 영화평론가가 몇 있다. 이동진씨가 대표적이다. 그는 연예인 부럽지 않은 꽤 두툼한 열성 팬 층을 형성하고 있다.

일간지 영화담당 기자 때부터 그의 글은 영화 팬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2006년엔 대형 포털사이트와 손잡고 1인 미디어를 실험했다. 자신이 읽은 책을 대중에게 대화하듯 소개하는 팟캐스트 ‘빨간책방’은 출판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언급된 책이 출간 10년 만에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며 ‘이동진’이라는 문화브랜드의 힘을 증명했다.

대형 멀티플렉스 체인의 기획으로 지난해 4월 시작한 ‘라이브 톡’(영화보고 대화 나누기) 행사도 화제다. 매달 한 번 서울에서 진행하는 행사가 전국 11개 극장에 생중계된다. 객석이 80%가량 찬다.

이씨는 지난달 21일엔 또 다른 실험에 들어갔다. 출판사와 제휴해 라디오 방송시설을 갖춘 카페 겸 문화공간 ‘빨간책방’을 열었다. 이씨는 심야 라디오 음악방송도 진행하고 있다. 영화평론가라는 호칭으로 여러 문화 활동을 하며 무시 못할 문화권력이 됐다.

이씨를 최근 서울 합정동의 카페 ‘빨간책방’에서 만났다. 그는 “중고등학교 시절 열심히 읽은 한국일보 덕에 신문에 재미를 붙였다”고 말했다. 그는 “장명수, 김훈 선배의 글을 보면서 ‘와, 이분들은 어떤 분일까’라고 생각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서울 합정동 카페 ‘빨간책방’은 ‘이동진’이라는 브랜드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동진씨는 “여기서 들려주는 음악 60곡도 제가 매일 선곡한다”며 “제가 추천하는 책 코너도 따로 있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이달 말부터 이곳에서 심야 라디오 방송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상순기자 ssshin@hk.co.kr
서울 합정동 카페 ‘빨간책방’은 ‘이동진’이라는 브랜드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동진씨는 “여기서 들려주는 음악 60곡도 제가 매일 선곡한다”며 “제가 추천하는 책 코너도 따로 있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이달 말부터 이곳에서 심야 라디오 방송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상순기자 ssshin@hk.co.kr

-많은 사람이 ‘이동진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 하는 선망의 대상이 됐는데요.

“제게 영화평론가나 신문기자가 되고 싶다고 이메일 보내는 분들이 굉장히 많은데 저는 누구의 역할 모델이 될만한 사람이 아니에요. 김훈 선배처럼 굉장한 사람은 아니고, 다만 미디어 노출로 이름과 얼굴이 좀 알려졌을 뿐입니다. 제가 주체적으로 인생을 개척하지도 않았어요. 시대 변화와 우연히 맞아떨어진 듯합니다. 직장 그만둘 때 1인 미디어시대가 열려 포털사이트와 4년 계약을 했어요. ‘빨간책방’ 팟캐스트도 제안을 받아 하게 된 것입니다. 팟캐스트는 ‘나꼼수’의 노회찬씨 나오는 내용 딱 한번 들어본 적 밖에 없어요. 제가 트렌드를 이끈 것으로 보이지만, 알고 보면 능력에 비해 억세게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개인 블로그 초기화면의 문구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은 되는대로’처럼 산다는 말로 들리는데요.

“6, 7년 전 북콘서트 할 때 즉흥적으로 한 말인데 ‘아, 내가 진짜 그렇게 살아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인생은 변수와 우연이 너무 많습니다. 아무리 철두철미하게 노력해도 자기 인생을 온전히 통제할 수 없잖아요. 확고한 목적을 향해 매진해서 달성하는 게 인생에서 중요한 것 같진 않아요. 하루하루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듯합니다. 인생의 목적이 길 끝에 있는 어떤 종착점이 아니라 길 자체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닌가요.

“사회에서 제게 맡긴 역할이 있고 저는 그 역할로 호구지책을 마련해서 사는 거예요. 전 무엇보다도 직업윤리가 중요하다고 봐요. 소극적으로 얘기하면 글 쓰는 사람으로서 매수되지 않는 것이지요. 아주 옛날엔 기자들이 촌지를 받았잖아요. 적극적인 윤리는 자기가 맡은 일을 제대로 해내는 것이죠. 그러려면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사는 방법 밖에 없어요. 세월호 참사도 결국은 직업윤리의 문제였던 것 같아요.”

-영화평론가로 선구적인 위치에 있는데 후배들에게 해줄 말이 있습니까.

“만약 학생이 조언을 구한다면 영화평론가가 되지 말라고 할 겁니다. 너무 어려운 직업입니다. 한국에 겸직하지 않고 영화평론가로 먹고 사는 사람이 제가 알기로는 다섯 명도 안 되요. 영화제 프로그래머나 기자, 교수 등을 겸해야 살 수 있어요. 프리랜서로서 영화 평론가는 일단 직업으로 성립하지 않아요. 예를 들어 제가 한국일보와 중앙일보, 한겨레에 칼럼을 동시에 연재한다고 가정해보세요. 글쟁이로서는 최고의 경지잖아요. 그렇게 벌어도 대학 나와 평범한 중소기업에 취직한 사람보다 적게 벌 거예요. 전 영화평론가이지만 제 수입의 대부분은 글이 아닌 말(방송)에서 비롯됩니다.”

-일의 중심이 글이 아닌 말이라 아쉬운 점은 없는지요.

“제 정체성은 말하는 사람이 아닌 글 쓰는 사람이에요. 그러나 그 정체성을 고집하진 않아요. 제가 지금 버는 돈의 60%만 글로 벌 수 있다면 저는 방송을 하나도 안 해요. 그런데 글로 버는 돈은 20%도 안 돼요. 그렇다고 방송이 싫지는 않아요. 음악 방송 진행은 할 때마다 즐거워요. 이상적으로 따지면 책만 쓰며 살고 싶어요. 그런데 불가능한 일이죠. 글 쓰는 정도의 만족감은 없으나 방송에서 어떤 영화나 책, 음악을 얘기해서 사람들이 예전에 몰랐던 것을 알 수 있어 좋았다고 하면 그 보람도 커요. 그런 점에서는 방송을 꼭 돈 때문에 하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서울 합정동 카페 ‘빨간책방’은 ‘이동진’이라는 브랜드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동진씨는 “여기서 들려주는 음악 60곡도 제가 매일 선곡한다”며 “제가 추천하는 책 코너도 따로 있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이달 말부터 이곳에서 심야 라디오 방송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상순기자 ssshin@hk.co.kr
서울 합정동 카페 ‘빨간책방’은 ‘이동진’이라는 브랜드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동진씨는 “여기서 들려주는 음악 60곡도 제가 매일 선곡한다”며 “제가 추천하는 책 코너도 따로 있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이달 말부터 이곳에서 심야 라디오 방송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상순기자 ssshin@hk.co.kr

-과거 신문 등에 쓴 글보다 요즘 블로그에 쓴 글이 좀 더 자유분방한 것 같은데요.

“최근 방송으로 저를 알게 된 분들은 ‘이동진은 말은 잘하는데 글은 영…’이라고 평가합니다. 실제로 글을 잘 못 쓰기도 하구요. 굳이 변명하자면 블로그에 쓰는 글을 저는 글이 아닌 말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트랜스포머’를 볼까 고민하는 사람들이 검색하다 블로그에 올라온 제 글을 보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전 ‘미장센’ 같은 전문용어를 블로그에 거의 쓰지 않아요. 대중을 향한 말과 글로 먹고 사는 사람은 대중이 어떤 사람이냐를 고려해야 해요. 블로그 글이나 회사 사보에 쓰는 글이 같다면 굉장히 게으른 거죠.”

-조선일보 다닐 때 수입과 지금 수입을 비교하면요.

“지금이 더 많습니다. 여기까지만(웃음). 10원이라도 지금이 더 많습니다.”

-기자일 때 미국에서 연수하며 영화를 많이 봤다는 소문이 있는데요.

“연수할 때 석사학위를 취득할까 고민했는데 그것을 포기하니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전력을 다해 영화를 봤습니다. 2004년 8월부터 1년 동안 1,017편을 봤어요. 하루 3편 꼴이죠. 여행도 많이 다녔죠. 미국 50개 주중 34개 주를 여행했으니까요. 제가 굉장히 유희적인 인간이에요. 영화 보기 가장 좋은 환경에 있으니 최선을 다해 보자는 생각이었어요. 흥분해서 재미있게 보다 보니 연수 끝날 때쯤 한 900편을 본거예요. 이왕이면 1,000편을 넘겨보자 생각했고 마지막 한달 동안 바짝 챙겨봤죠. 1,001편이면 기획 냄새가 너무 나니 1,017편을 봤어요(웃음).”

-팟캐스트로 소개한 책의 판매부수가 늘 때 스스로의 영향력을 실감하지는 않는지요.

“최소한 제가 길을 잘못 가고 있진 않구나 그런 생각은 해요. 제가 영화가 좋아서라기보다 영화평론을 써야만 해서 쓴다면 그만둬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게 글을 쓰면 누군가를 속이는 거고 제 자신도 속이는 거니까요.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영화가 싫지 않아요. 지금도 좋은 영화를 보면 흥분되고 어쩔 줄 몰라요. 최소한 마음으로는 영화평론가 자격이 있다는 생각을 해요. 제가 평생 산 책이 1만5,000권이에요. 요즘도 책과 음반, DVD 구입에 한 달 평균 100만원 이상을 지출해요. 어떤 사람에게는 월급일 수 있는 액수니 죄책감도 들어요. 팟캐스트나 음악 방송을 진행하면 이런 것을 활용할 수 있잖아요. 스스로 면죄부를 줄 수 있는 거죠. ‘았사! 내 영향력이 이 정도’ 같은 생각은 없어요. 좋은 소설을 사람들이 알게 하면 너무 행복한 일이에요. 다들 힘든 인생의 순례자들인데 제가 가지고 있는 온기를 살짝 나눠 상대가 따뜻해지면 좋은 거잖아요.”

-대중적인 영향력이 있다 보니 영화를 평할 때 더 신중해질 것 같은데요.

“저는 직업적으로 따지면 차가운 사람인 것 같아요. 직업적으로는 좀 차야 한다는 생각도 하고요. 영화 글쟁이로 20년을 살았어요. 이쯤 되면 영화계의 수많은 사람들하고 호형호제해야 해요. 전화 딱 해서 ‘(황)정민아 잘 지내? 여기 너 굉장히 좋아하는 여동생이 있는데 올 수 있냐?’ 이렇게 과시하고 싶어지잖아요. 그런데 저는 굉장히 친한 배우가 없어요. 어느 누구하고도 형 동생을 안 해요. 제가 박찬욱 감독을 인간적으로 굉장히 좋아해요. 그의 영화도 좋아하지만 대한민국에서 그 나이 남자가 그 정도로 멋있기가 어렵거든요. 그쯤 되면 ‘찬욱이 형’ 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박 감독님은 저한테 존댓말을 하고 저도 엉겨 붙지 않아요. 좋아하는 감독의 신작이라고 해서 무조건 별 4개 평점부터 주고 본다면 제 말을 누가 믿겠어요. 제가 어떤 영화를 잘못 평가한다면 능력이 없기 때문이지 누구랑 친하거나 어떤 사람을 맹목적으로 좋아해서는 아니에요. 그건 자신 할 수 있어요.”

-영화를 대체로 긍정적으로 접근한다는 평가가 있는데요.

“‘이 영화는 쓰레기야’라고 확신하는 사람이 전 이상해요. 대중이든 전문가든 자신의 무오류성을 믿고 있다고 봐요. 대중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보는데 평론가 너희들이 지랄해봤자’라고 얘기하고 평론가들도 자신들의 무오류성을 주장해요. 평론가들은 자신에게 굉장히 중요한 어떤 영화에 별 4개 반을 주고 통찰이라고 생각해요. 평론이 통찰을 강조할수록 평론을 예술로 보게 돼요. 그쯤 되면 내 예술과 남의 예술 중에 누가 맞느냐의 논쟁으로 번져요. 저도 평론가로서 영화에 대한 확신이 있죠. 저는 ‘박쥐’(감독 박찬욱)를 걸작이라고 생각해요. ‘이동진 쓰레기야’ ‘영화 볼 줄 몰라’라는 비판을 들었어도 저는 제 의견을 철회할 생각이 없고 지금도 ‘박쥐’는 박찬욱 감독의 최고작이라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저는 칼 포퍼 식으로 얘기하면 검은 백조가 나올 때까지만 백조가 희다라는 정도의 전제는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검은 백조가 나올 수 있다는 전제 자체를 무시하는 사람이 있어요. 저는 그런 입장을 받아들일 수 없어요.”

-책과 음반 등은 어디에 보관합니까.

“집이 아니고 창고예요. 창고에 침대를 집어 넣고 살고 있다고 할까요. 책은 1만5,000권, 음반CD는 1만1,000장, DVD는 5,000개 정도 있어요. 요즘은 집 밖에도 보관하고 있어요. 팟캐스트 녹음실이나 누나 집에요. 엑셀파일로 목록을 정리하는데 이미 산 책들을 다시 구입한 경우도 많아요. 문학평론가 김윤식 선생님은 어떤 책이 집에 있다는 걸 아시면서도 다시 구입한다고 들었어요. 책이 워낙 많아 찾을 수 없으니까요. 그런 말을 들으면 좀 위로가 되고 ‘난 아직 멀었구나’ 생각도 해요.”

-해외 출장 가서 음반을 100장 구입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덕후’ 아닌가요.

“덕후 맞아요. 제가 집착이 있는 편이에요. 미국 로스앤젤레스 출장 가서 대형 중고 음반 매장을 찾은 적이 있어요. 음반을 사고 보니 108장이더군요. ‘아, 이게 다 번뇌구나, 내 업이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관세법이 어찌 되는지 몰라 동행했던 사람들에게 부탁해 나눠서 들여왔죠. 미국에서 연수할 때도 음반을 너무 많이 사서 한국으로 보낼 때 애를 먹었어요. 샤를렌이라는 미국 가수가 있어요. 흑인 전문 음반 레이블인 모타운이 백인 여가수로는 처음으로 샤를렌의 음반을 1980년대에 냈는데 이 음반을 25만원 정도에 산 적도 있고요.”

서울 합정동 카페 ‘빨간책방’은 ‘이동진’이라는 브랜드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동진씨는 “여기서 들려주는 음악 60곡도 제가 매일 선곡한다”며 “제가 추천하는 책 코너도 따로 있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이달 말부터 이곳에서 심야 라디오 방송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상순기자 ssshin@hk.co.kr
서울 합정동 카페 ‘빨간책방’은 ‘이동진’이라는 브랜드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동진씨는 “여기서 들려주는 음악 60곡도 제가 매일 선곡한다”며 “제가 추천하는 책 코너도 따로 있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이달 말부터 이곳에서 심야 라디오 방송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상순기자 ssshin@hk.co.kr

-신문사를 그만 둘 때 두렵지 않았나요.

“두려움이 굉장히 컸어요. 어렸을 때 집이 넉넉하지 않아 경제적으로 궁핍할 때 겪는 안 좋은 일들을 어쩔 수 없이 많이 경험했어요. 저는 생활력이 없어지는 것에 극도의 불안감이 있는 사람이에요. 가족에 대한 책임감도 크고요. 그런데 회사는 충동적으로 그만뒀어요. 여러 이유로 그만두기 전 한 두 달 동안 회사 다니는 게 너무 싫었어요. 사표 낼 때 제 심정은 그냥 ‘망가져도 좋다’ 였어요.”

-‘내가 그만 둬도 나 정도면’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마음은 없었어요. 전혀 없었어요.”

-영화와 책, 음악 외에 관심 있는 분야는.

“제 또래 평균적인 한국 남자와 달리 저는 모르는 게 너무 많아요. 관심이 없는 것도 많고. 예를 들어 저는 음식에 관심이 전혀 없어요. 오전 8시에 보건소 가서 주사 한번 맞고 오늘 안 먹어도 된다면 주사를 맞을 스타일이에요. 매일 먹는 게 귀찮게 여겨지는 쪽입니다. 심지어 축구도 싫어해요. 태어나서 2002년 한일 월드컵 경기를 포함해 두 경기쯤 본거 같아요.”

-TV 영화프로그램(‘접속무비월드)을 진행하며 별점을 매길 때 좀 야박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출연한 감독이 애걸하는데도 별점을 낮게 주는 것 같았는데.

“그럴 때마다 회의가 들었어요. 하지만 그런 순간이 다시 오면 똑같이 할거예요. 인간적으로는 죄송하지만 제 직업윤리가 우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맹자를 보면 갑옷과 창을 만드는 사람이 각자 입장에서 최선을 다하잖아요. 저는 창을 만드는 직업을 가졌기 때문에 야멸참을 가질 수 밖에 없어요. 평론가라면 내가 모르거나 아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일을 할 수 밖에 없어요. 다만 어느 정도 이상으로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사람에 대한 평가를 하지 않고 텍스트에 대한 언급만 하려 해요.”

-그래도 다른 영화평론가보다 선택할 수 있는 일이 많은 것 같은데요. 회의감 느끼며 창을 들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접속무비월드’ 진행을 그만 뒀습니다. 제가 어떤 영화의 별점을 2개 밖에 줄 수 없는데 해당 영화의 감독과 배우가 출연하는 상황이 제일 싫었어요. 인생에서 영화 한 편을 만든다는 게 아주 중요한 일인데 면전에서 창의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는 구조였던 것이지요. 방송에서 제 마음대로 말은 했지만 영화는 제가 정할 수 없었어요. 보람도 컸지만 회의가 계속 있었어요. 물론 저를 제일 많이 알린 프로그램이긴 해요. 지난해 어느 음악축제에서 티켓을 찾는데 일하는 사람이 제 얼굴을 보더니 ‘어! 별점 아저씨!’ 이러는 거예요. 고마운 방송이긴 하지만 회의가 커 결국 그만뒀어요.”

-그래도 창이 되는 일은 계속 할 건가요.

“영화평론가를 그만두지 않는 이상 계속 해야죠. 물론 직업적인 회의가 있고 이런 직업을 버텨낼 만큼 제가 강한 인성을 가진 사람은 아니에요. 직업을 잘못 택한 것일 수도 있어요. 장기적으로는 그만해야겠죠. 언젠가는…”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고경석기자 kave@hk.co.kr

황수현기자 sooh@hk.co.kr

이창목 인턴기자(가톨릭대 생명과학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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