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걸하면서도 걸인 10명 먹여 살려 꽃동네 상징된 故 최귀동 할아버지
맹인 걸인으로 돈 100만원 기부해 요한의 집 시초된 홍승옥 할아버지
전신마비 故 배영희 할머니 돌봐 장애인학교 실현시킨 김인자 할머니
반신불수에도 도와준 이웃에 보답해 꽃동네 원류된 故 강국남 할아버지
거지움막으로 시작한 충북 음성군 ‘꽃동네’가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하는 국내 최대 사회복지시설로 성장하는데 공헌한 영웅은 누굴까.
꽃동네는 8일 회지(會誌) ‘꽃동네회 7월호’를 통해 꽃동네 공헌자 ‘5인의 영웅’을 선정하고 이들의 삶을 소개했다.
꽃동네의 상징인 고(故) 최귀동(1990년 사망) 할아버지는 일본 강점기에 북해도 탄광으로 징용됐다가 고된 강제 노동을 이겨내지 못하고 병든 몸으로 고향인 음성으로 돌아와 무극천 다리 밑에서 동냥으로 연명했다. 그러나 구걸하면서도 같은 움막에 살던 10여명의 걸인들을 먹여 살렸고 누가 죽으면 장례도 해 줬다고 한다. 1976년 9월 무극성당에 부임한 오웅진 신부가 이 광경을 보고 감동해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주님의 은총”이라며 작은 벽돌집을 지어 걸인 18명을 돌보기 시작했다. 이것이 꽃동네의 모태다. 최 할아버지는 1986년 2월 ‘가톨릭 대상’으로 받은 상금 120만원을 “길에서 죽는 사람을 위해 집을 지어 달라”고 꽃동네에 기탁했다. 이 소식을 들은 충북도청과 국회의원 등 전국 각지에서 성금이 답지, 3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노인요양원을 지을 수 있었다.
‘맹인 걸인’ 홍승옥(75) 할아버지는 15년간 구걸해 모은 100만원을 자기보다 더 불쌍한 사람을 돌보는 데 써달라며 꽃동네에 맡겼다. 이 성금은 노숙인 생활관인 ‘요한의 집’ 설립의 씨앗이 됐다. 양 손을 쓰지 못하는 김인자(74) 할머니는 두 발로 밥을 먹고, 발가락으로 십자수를 놓으면서도 같은 방에서 생활하는 전신마비 환자 고 배영희(1999년 사망) 할머니를 5년 동안 돌봤다. “참을 수 없는 것을 참는 게 인내다. 장애인들에게 무관심하지 말라”고 하던 김 할머니의 신념은 이를 설립정신으로 삼은 ‘꽃동네 장애인학교’로 실현됐다. ‘반공 포로’ 출신인 고 강국남(1991년 사망) 할아버지는 중풍으로 반신불수였지만 먹을 것을 주는 주민이 있으면 그 집 앞 청소를 하는 등 이웃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꽃동네 모임의 원류가 됐다.
오웅진 신부는 “지금의 꽃동네가 있기까지 다섯 영웅 외에도 사랑과 믿음, 기적의 영웅님들이 수도 없이 많다”며 “교황님도 꽃동네 영웅들을 만나기 위해 방문하는데 이 기쁨을 모든 영웅님들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음성 꽃동네는 현재 노숙인, 노인, 장애인 등 4,000여명이 생활하는 국내 최대 사회복지시설이다. 우간다 아이티 방글라데시 인도 등 세계 10개 나라에 분원을 두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다음달 16일 꽃동네를 방문한다.
강주형기자 cub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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