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AG 최고령 자원봉사자 이연수옹
선수촌에 배치돼 일본어 통역 맡아
체력 키우려 걷기연습·체조도 시작
"내 능력 인정받은 것 같아 기분 좋아"
“생애 마지막 봉사라 생각하고 조그만 힘이나마 보태겠습니다.”
인천 아시아경기대회를 두 달여 앞둔 4일 인천 부평구 아파트에서 구순의 이연수(90)옹이 일본어 회화 공부에 한창이다. 대회에서 일본어 통역을 맡게 된 이옹은 1만3,500여명의 자원봉사자 중 최고령이다. 1924년 4월 서울생이니까 만 90년 3개월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열린 10여년 동안의 크고 작은 국제대회의 자원봉사자 중에서도 가장 고령이다.
이옹이 일본어를 접한 것은 일제 치하 보통학교 시절부터 경성 공립상업 중학교 졸업 때까지 10여년. 이후 생업에 집중하다 2010년 다시 일본어책을 손에 잡았다. 영어와 중국어에도 도전했지만 늦은 나이다 보니 새로운 것을 배우기가 쉽지 않았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어릴 때부터 입에 익었던 일본어에 집중했다. 이옹은 “초ㆍ중급반은 쉽다는 생각이 들어 일본 원어민 교사가 가르치는 회화반에 갔는데 수준도 맞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었다”고 했다. “당시 적대국의 언어를 잘한다는 게 창피했지만 그땐 의무적으로 다 배워야 했어요. 그게 지금와서 봉사의 기회가 될 줄은 몰랐어요.”
이옹은 3월 원어민 교사의 추천으로 아시아경기대회 자원봉사자에 지원했다. 최종 면접시험에서 일본인 면접관은 ‘자원봉사 경험이 있느냐’ ‘스포츠에 대해 잘 아느냐’ 등을 물었다고 한다. “열정과 회화 능력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자원봉사 경험도 없고 스포츠도 잘 모르는 내게 그런 질문을 하길래 떨어질 거라고 예상했어요.” 여기에 젊은 학생들 위주로 선발한다는 소문까지 들려 의기소침해 하던 차에 5월 합격 전화가 걸려왔다. “주변에서 많이 부러워해요. 무엇보다 내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점이 가장 기분이 좋습니다.”
이옹은 이번 대회에서 구월동 아시아드 선수촌에 배치됐다. 이옹이 사는 부평동과는 다소 멀다. 특히 선수들은 대회기간 보다 먼저 입촌하고 늦게 퇴촌하기 때문에 이옹은 9월 5일부터 10월 7일까지 한 달 넘게 먼 거리를 출퇴근해야 한다. 그래서 체력을 비축하기 위해 요즘은 걷기 연습과 체조도 병행하고 있다.
이렇게 의욕 넘치는 이옹이지만 걱정이 하나 있다. 지독한 애연가라는 점. 외국인에게 통역하다 혹시 담배냄새 때문에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 않을까 신경 쓰인다고 한다. 이옹은 “자원봉사자는 대한민국의 간판인데 외국인들에게 나쁜 인상을 심어줄 수는 없다”며 “대회기간엔 담배를 조금 줄이겠다”며 웃는다.
“살면서 광복, 한국전쟁 등 굵직굵직한 일을 겪다 보니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친구들도 주변에 많아요. 그런데 나만 너무 쉽고 편하게 살아온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번 봉사를 통해 마음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고 싶습니다.”
글ㆍ사진=강주형기자 cub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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